나비, 내가 되어야하는 ‘그것’

▲ 꽃과 나비, 남계우.
 어느 날 문득 바라본 세상은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오르는 산이었죠.너를 부르는 알 수 없는 꿈이또 다른 나를 그곳에서 만나게 했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면서자신이 올라가는 것만 중요했을 뿐삶은 험난하다고 마음을 굳게 닫은 채로가야만 할 것 같았던 그곳엔 텅 빈 하늘 뿐
 
 하늘을 나는 찬란한 날개를 보세요. 꽃망울을 터트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꿈을그 꿈을 위하여 지금은 혼자 힘들어도겨울이 지나면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건지도 모르면서자신이 올라가는 것만 중요했을 뿐삶은 험난하다고 마음을 굳게 닫은 채로가야만 할 것 같았던 그곳엔 텅 빈 하늘 뿐
 하늘을 나는 찬란한 날개를 보세요. 꽃망울을 터트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꿈을그 꿈을 위하여 지금은 혼자 힘들어도겨울이 지나면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겨울이 지나면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 노래공장 ‘꽃들에게 희망을’

나비들, 오딜롱 르동.
 
▲칼리그람마, 2억 년 전의 나비
 
 도시에서 나비를 본지 오래되었다. 학교 담벼락에 기대어있는 옹기종기한 꽃밭위로, 교문 앞에서 문구점을 지나 멀리 신작로로 향하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풀나풀 좌표를 그리던 나비. 이제 도시는 완연한 인간의 장소, 그러나 인간에 의해 개발되고 조성되었을지언정 인간을 향한, 인간을 위한 도시는 아니다. 거대한 딱정벌레를 닮은 자동차들의 느릿한 질주사이로 무겁게 가라앉은 황사. 길을 걸으며 나비의 조상을 생각했다. 인간의 씨앗이라곤 싹도 보이지 않았던 2억 년 전 중생대의 쥐라기에 나비를 닮은 곤충 ‘칼리그람마’가 있었다. 칼리그람마는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오늘 날 나비가 그러하듯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주었다. 나비를 닮았되, 엄밀히 말해 칼리그람마는 나비목이 아니다.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학명을 가진 칼리그람마는 명주잠자리목의 조상으로 겉씨식물인 소철목의 즙과 꽃가루를 먹으면서 살았다. 칼리그람마의 날개에 새겨진 위협적인 눈 무늬는 무시무시한 천적인 익룡과 조류에게 혼란을 주기위한 평화로운 위장(僞裝). 온난하고 습윤했던 쥐라기가 끝나고 백악기가 시작되자, 겉씨식물의 쇠퇴와 더불어 칼리그람마의 시대도 끝이 났다.

 몸통의 길이가 5cm였다는 칼리그람마. 나비가 없는 도시에서는 일용직 근로자가 나비가 된다. 도로주변 화단에 시에서 펼치는 도시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심어지는 키 작고 잎 여린 비올라, 팬지, 데이지. 나비가 없어도 꽃은 인공의 힘으로 피고 또 진다. 도시의 색은 해마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낡고 바란 것들은 헐려 새로 덧칠되는 이곳에서 시간은 역사성을 잃고 언제나 현재, 현재, 현재. 시간이 중첩되지 않고 부유하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아주 오래된 책속에서 생명은 인간 한 종만이 아니었다는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는다. 다시 되돌리고 싶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도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알 수 없는 어지럽고 복잡한 세계. 진실하라고 배우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은 세계. 환경을 위해 천연세제로 머리를 감고 가까운 길은 되도록 걸어서 다니자는 교실에서의 가르침은 눈가림이다. 차라리 진실은 오늘은 없는 나비의 부재. 천날 만날 그리해도 개천의 물고기는 줄고 하늘은 겹겹이 쌀뜨물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도시가 나비를 잊으면서, 인간은 영혼도 잃었다.

양귀비와 나비 방아깨비, 심사정.
 
▲프시케, 영혼 또는 나비

 프시케(Psyche)는 그리스어로 ‘영혼’과 ‘나비’라는 두 뜻을 가졌다. 신화는 고대인들의 세계에 대한 나름의 결론이자 세계 이해, 과학이 그러하듯 신화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짝으로 삼은 인간 여인의 이름은 프시케. 영혼이 깃들지 않는 사랑은 성장하지 못하고 시들거나 자족의 궤를 그린다. 프시케를 만나기 전까지 에로스는 활과 화살통을 매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던 장난꾸러기 철부지였다. 에로스의 궁술능력을 하대하는 형 아폴론에게 금화살을, 지나가던 애꿎은 소녀 다프네에게 납화살을 쏴서 쫓고 쫓기는 애증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깔깔 웃던 에로스 아니던가. 에로스가 지닌 금화살은 애끓는 사랑 납화살은 미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결국 납화살로 인해 아폴론의 손길이 닳는 일이 죽기보다 싫게 된 다프네는 아버지 강의 신에게 빌어 촉각을 느끼지 않는 월계수가 되어버렸다.

 형의 첫사랑을 절딴 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던 에로스가 프시케를 만나자 변한 건 그림에서부터 드러난다. 아장아장 어린이에서 장딴지 굵은 씩씩한 청년으로의 변신. 어린 시절의 사랑은 네가 아닌 내 생존을 위한 것. 어린 아기와 짐승이 무한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천진하고 귀여운 외모를 지니게 된 건 그를 보호하고 지켜줄 대상이 필요해서다. 아이의 미소는 진화의 결과이고 자기보호본능이라고 그러니 무장해제 되지 말자 다짐해도 역시나 어린 것은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런 어린 에로스의 사랑은 영혼성보다는 물질, 즉자성에 가깝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이, 쓸쓸한 등이, 가벼운 미소와 한숨이, 조심히 가라는 인사가 불현듯 한 사랑의 시작 아니던가. 그러니 사랑은 성장하기위해 ‘나비-영혼’으로부터 한 번 더 태어나야 했다. 어리광쟁이 에로스는 ‘프시케-영혼’을 만나 책임지고 아파하며 극복하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와 프시케를 중재하기위해 마음을 다하고 나약함으로 인해 에로스와의 약속을 저버린 프시케를 한 번 다시 두 번, 용서한다. 트리나 폴로스 식으로 번역하면 애벌레의 사랑에서 나비로의 사랑으로의 진화다.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글 반 그림 반인 어른을 위한 우화. 언젠가부터 이 책이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개발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냉소적이 됐을 뿐, 책이 그러하랴. 줄무늬애벌레와 노란애벌레는 기둥을 향해 오르던 일을 그만 두고 에로스와 프시케처럼 사랑을 나누며 포동포동 즐겁다. 그러나 애초에 둘이 눈이 맞은 건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들 내면이 공통적으로 갈구하는 의문, 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줄무늬애벌레와 노란애벌레는 떨어진 공간에서 각자 자문한다. ‘삶에는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질문은 마음으로부터 공명해 눈 마주치게 했고 마침내 다시, 서로를 떠나게 했다.

쥐라기의 나비, 칼리그람마.
 
▲삶에는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줄무늬애벌레는 애벌레기둥을 오른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밟혀서 밑으로 떨어지느냐. 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도 힘겨울 때면 ‘꼭대기에는 뭐가 있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불안과 의혹이 몰려온다. 그러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른 애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가 올라가는 곳은 틀림없이 멋진 곳일 거야.’ 두려움을 다독이며 버텨보는 나날. 애벌레들이 위로 위로 올라가고자 앞뒤를 다투는 애벌레 기둥의 모습은 이렇다.
 
 호랑애벌레는 지금껏 잘해왔지만, 빛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이 높이에서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모두들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습득한 기술을 총동원하여 제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고받는 대화도 없다. 살갗만 서로 맞대고 있을 뿐 그들은 마치 저마다 자신의 고치 속에 틀어박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애벌레는 자기위에 있는 애벌레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저놈들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어.”
- 꽃들에게 희망을 p.90 시공주니어
 
 애벌레가 오르는 기둥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로 오르려는 애벌레들의 집념이 만들어낸 허상, 그야말로 애벌레들이 첩첩이 쌓여 만들어진 애벌레기둥이다. 아수라장속에서 줄무늬애벌레는 듣는다. “모두가 올라오고 싶어 하는 이 자리가 바로 생의 의미 ‘자체’야! 그러니 쉿! 기둥 끝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래 있는 애벌레들이 알게 해서는 안 돼.” “위에 있는 놈들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누르게 둘 수는 없어! 한꺼번에 몸을 틀어 기둥을 힘껏 흔들어보자. 그러면 우리도 위에 오를 수 있어.” 정상에 오른 애벌레들의 공모와 중간에 있는 애벌레들의 궐기. 그리고 본다. 사방에 널린 수천수만의 애벌레 기둥, 기둥, 기둥.

나비, 블라디미르 쿠쉬.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어

 그러나 애벌레들이 필사적으로 위로 올랐던 건 그들의 ‘날고자하는’ 본능, 열망이 정신에 각인되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애벌레에게는 나비의 가능성이 있다. 때가 되면 이갈이를 하고 성장통을 앓고 어른이 되기 위해 몸이 변화하듯, 정신도 자라야하는 시기가 오면 껍질을 벗는다. 애벌레들이 위를 향한 이유는 그들의 정신이 나비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문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나비가 되려면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한다는 것을 날기 위해서는 입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스스로를 가둬야한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해.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죽어야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나를 보렴.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마치 내가 숨어버리는 듯이 보이지만 고치는 결코 도피처가 아니야.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고치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야.” 늙은 애벌레는 마지막 남은 실로 머리를 감싸며 외쳤습니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 꽃들에게 희망을 p.75-82 시공주니어
 
 줄무늬애벌레를 좇아 기둥을 오르는 대신 확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를 선택했던 노란애벌레에게 나비가 되는 일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늙은 애벌레의 말. “노란애벌레야 나비의 사랑과 그저 껴안기만 하는 애벌레의 사랑은 다르단다. 나비가 되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가능해진단다. 나비가 없으면 꽃은 사라지고 말아” 나비는 살아있는 것들을 더욱 생생히 살아있게 하는 사랑의 능력을 위해 애벌레가 거쳐야할 변화, 존재자가 이루어야할 그 무엇이다. 도시는 화폐와 건물과 기술과 지식을 사랑한다. 그것은 죽은 것들이다. 하늘과 공기와 땅과 들판의 나무와 당신은 살아있다. 죽어있는 인공물을 사랑하는 도시에서 살아있는 것, 생명을 가진 것들에로 시선을 돌리라고, 한 마리 애벌레이기를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는 이 책대로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도시에 나비가 없음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나비가 되라는 저자의 말을 따를 수 있을까. 책을 쓰고 그린 트리나 폴러스는 한 마리 나비로 살았다.

아폴론과 다프네, 푸생.
 
▲생의 의미는 질문에서 온다

 공자는 나이 40에 이르면 흔들림 없는 불혹(不惑)을 득하고 50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나 웬걸, 해를 거듭할수록 질문만 는다. ‘잘 살고 있는지’ ‘이대로 좋은지’ ‘어쩌면 더 나은 생의 방식이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끝까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채로 생은 끝날 것이다. 두 애벌레는 애벌레의 존재의미인 나비되기를 찾고 행했으나 어쩌면 그들의 진짜 존재의미는 그동안 누구도 하지 않던 ‘질문하기’에 있지 않을까. 기둥을 오르는 의미에 대해, 애벌레로 살다 죽는 삶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시노 겐지의 말처럼 질문은 세계를 향하면서 묻는 자기 자신도 되돌아보게 한다. 잠자리에 누워 등을 끄려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우리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걸 보면 그곳은 틀림없이 좋은 곳일까.’

 덧, 알에서 갓 깨어난 축축하고 작은 호랑줄무늬애벌레가 아무래도 나보다 낫다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글쎄, 누가 알겠는가. 내 안에 어떤 나비 혹은 공룡 혹은 악어가 숨어있을지. 그러니 그저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하루하루를 계단 삼아 오르거나 구르거나 하는 것이 생의 조건이라면 가능한 힘껏 나비되기를 소망하며 실천하는 수밖에. 그러다보면 꽃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더 다듬어지고 단단해졌다는 자기신뢰라도 생길지. 누가 아는가.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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