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한빛비즈
그 말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경찰청의 관점에 대한 비판과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범죄대상인이 조심하라는 경찰의 문제해결 접근방법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이 무서우니, 늦게 다니지 마라.”
 
 “지윤아, 지금 몇 시니? 너무 늦게 다니는 것 같은데...”
 “네, 좀 더 일찍 다닐게요.”
 “그래. 세상이 워낙 무섭잖아. 밤길에 혼자 다니는 여자들을 노리는 범죄도 많고...”
 “네? 그런데 엄마, 그 말씀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며칠 동안 자정이 다 되어 들어오는 지윤이에게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했다. 미안해 하는 웃음을 지으며 현관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오던 지윤이는 자신을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일찍 다니겠다고 약속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워낙 무섭잖니!’라는 나의 말에 지윤이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가만히 돌아서서 나에게 한 마디 한다.
 
 “엄마, 여성이 밤늦게 돌아다닌 것이 문제예요? 밤늦게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문제예요? 왜 여성들이 밤늦게 돌아다녀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씀하시지? 안 그럴 것 같은 우리 엄마가.”
 
 내 안, 나의 아주 깊은 곳, 무의식의 세계에 아주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있었던, 그래서 내가 어떤 사건과 현상을 보고 무언가를 판단내릴 때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을 딱딱한 고정관념과 편견적 사고가 지윤이에 의해 딱! 잡혔다. 뜨끔했다.
 
 “그러니까 왜 그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셔. 적당히 빠져나왔어야지...”
 “그 아이는 왜 남자들만 있는 곳에 간 거래?”
 “평소에 치마도 짧게 입고 다니고, 남자 아이들하고 잘 어울려 다니고 그랬어. 그 아이가.”
 “별로 안 다친 것 같던데, 저항을 한 거래?”
 
▲범죄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말
 
 끔찍하게도 잔인하고, 왜곡된 관점에서 비롯된 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성폭행, 성희롱, 성추행 사건이 드러나면, 쉽게 들려오는 말이다. 나도 어쩌면 이와 같은 사건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질문, 생각이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모두 범죄의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질문들이고, 남성중심적 사고에서 발생한 말들이다.

 몇 년 전 일이다. “더위만 피하지 말고 범죄도 피하세요.”, “이곳은 몰래카메라 촬영 주의지역입니다.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이용 시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여름철, 불법촬영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 이라는 문구가 써져 있는 지방경찰청에서 만든 포스터와 입간판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이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과 입간판이 서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이 포스터와 입간판을 보고, ‘조심해야 겠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 ‘뭐지? 왜 이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지?’라고 생각한 사람, ‘이런 관점으로 경찰이 범죄를 보다니! 문제 있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한 사람 등 반응은 다양했을 것이다. 분명 이 사진을 SNS에 올린 사람은 이 사진의 문구에서 불편함을 느낀 사람이었거나 경찰청의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댓글들이 올라오고,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불법촬영, 사이버성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해야 할 경찰청에서조차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고, 범죄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경찰청의 관점에 대한 비판과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범죄대상인이 조심하는 것으로, 범죄대상인의 자유와 행동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경찰의 문제해결 접근방법을 비판하는 글들이었다.

 토니 포터가 ‘맨박스’라는 책에서 거론한 하나의 사건이 떠올랐다.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이 대학에서는 ‘장기적인 캠퍼스 내 여성안전조치’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대책회의 장소는 이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조차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이 대책회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이 대책회의에서는 장기적인 캠퍼스 내 여성안전조치로 토론되어지는 것은 비상연락망 제작, 여학생들 간의 2인 1조 시스템, 여학생들을 위한 교내 셔틀 차량의 증편 등의 방안이 논의되었다. 여성들이 공격당할 확률을 낮추고, 그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느끼도록 돕기 위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ACTM(토니 포터가 운영하는 단체)에서는 “성폭행의 가해자가 여성입니까, 남성입니까?”, “만약에 여학생들을 구내식당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실어 나르는 대신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봐야 하죠?” 라는 질문을 던졌다. ACTM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 버리는 접근방식, 관점,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폭력문제의 대처패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 따끔하게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윤이처럼, SNS의 비판글을 올렸던 사람들처럼, ACTM처럼. 비록 그 지적이 무의식 깊숙한 곳에 있던 낯선 나와 우리를 끄집어내어 불편하게 만든다 할지라도, 불편함이 자주 반복되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나설 때까지 따끔하게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개성과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기센 언니라고 부른다. 아내나 여자친구가 자신보다 직위가 높거나 월급이 많으면 멋진 남자의 자격을 잃는다.
 
▲“아빠 없는 사이에, 엄마와 누나를 잘 부탁해”
 
 준호아빠 제사를 지낼 때면 다섯 살 준호가 제주가 된다. 집사 역할을 하는 큰아빠의 지시에 따라 다섯 살짜리 준호는 술잔을 들고,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엄마와 누나는 제사를 지내는 동안 저만치 떨어져 서 있는다. 준호는 제사를 지내면서 이 가정의 가장이자 대표이자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어른인 엄마도, 일곱 살 많은 누나도 아닌 다섯 살짜리 준호가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일가친척들은 어린 준호를 보며 가장 가슴아파했다. 이제 더 이상 아빠가 주는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린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준호를 보는 어른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영화에서 긴 출장을 떠나는 아빠가 현관문 앞에서 어린 아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빠 없는 사이에 네가 우리집 가장이야. 엄마와 누나를 잘 부탁해.”라고 말하는 장면을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 말은 어린 아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고 싶어 하는 어른남자아빠의 교육적인 마인드에서 나온 부탁이자 말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경제력과 사회적 활동 능력, 사회적 관계망 그리고 가정유지, 관리능력까지 두루 갖춘 어른여성엄마가 아니라 왜 열 살도 안 된 어린 아들에게 가정을 부탁하는 걸까? 어린 아들을 보살필 가능성이 높은 연상의 누나를 왜 어린 아들에게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 말은 매우 책임감 있고 근사한 말처럼 들리지만 잘 한 번 들여다보면,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한 남성성을 어린 아들에게 학습시키고 있는 말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아들은 이 말을 들으며 어떤 감정,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실제 생활 속에서는 어린 아들은 엄마가 차린 밥을 먹을 것이고 엄마가 세탁해 놓은 옷을 입을 것이며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 일주일을 생활할 것이고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볼 것이고 잠을 자다가 무서우면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잠을 잘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들은 이 집안의 가장이며, 이 집안을 책임져야 하며 엄마와 누나를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규정되었다. 아이러니하다.

 열두 살이 된 준호는 ‘나는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라는 말을 했다. 자기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돈을 벌지도 못 하고 자기는 방을 더럽히기만 하고, 자기는 자꾸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놀러만 다닌다고 한다. 자기는 기껏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일이나 하고, 전구도 갈아 끼우지 못 한다고 한다. 무서운 생각이 들면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다고 한다. 직장일 때문에 지치고 고민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집에 혹시 도둑이 들어와도 솔직히 자기는 맞서 싸울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은 무능력한 것 같다고 했다. 준호는 무능력한 자신이 슬픈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준호가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10살짜리 아이가 가지는 당연한 마음이고 당연한 일인데도, 왜 준호는 자기 나이보다 훨씬더 무거운 짐을 지고,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의식으로 괴로워하고, 그로 인한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했을까? 나는 준호를 보며 남성중심적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남성성은 어린남성 그리고 많은 남성 또한 자기를 사랑하게 하지 못 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범수는 자기 멋대로이고 말썽만 일으켜요. 그러니 따돌림 당하는 거예요.”
 
 상대방을 비인격화시켜 온전한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만들면 자연히 그들의 아픔에 대해 둔감해진다.
- ‘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중에서
지난 10년을 기준으로 평균 한 해에 최소 92명의 여성이 남편, 동거자, 가족, 애인 등 남성파트너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가정이 먼저인지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먼저일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맞는 거야?”
 
 아이들 사이에서 범수는 화를 잘 내고 욕도 잘 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집을 피우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수업에서도 돌발행동을 하곤 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범수와 함께 공부하고 놀고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야, 범수 온다. 우리 저리 가자.’, ‘범수, 너는 저리가.’, ‘야, 범수한테 냄새나지 않냐?’ 수업 중에 단체로 ‘아~ 또 범수네.’, ‘야! 좀~~~’이라고 외치고, ‘꺼져~’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범수한테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범수는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해요. 맨날 고집만 피우고, 말썽쟁이에요.’ 라고 말을 한다. 이렇게 범수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범수는 한껏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점점더 예민하고 난폭해졌다. 나는 아이들과 범수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스러웠다.

 “얘들아, 범수가 제 멋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너희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정당한 거니?”라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폭력이라고 지칭하니,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이들은 범수가 자신들의 행동에 일정한 원인을 제공하였으니, 자신들의 행동은 정당방위 정도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범수를 문제행동아로 규정하고, 대상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자신들의 폭력에 무감각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구, 저렇게 말대꾸를 하다가 맞겠네!”
 “맞을 짓을 했네.”
 “손뼉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지, 혼자 쳐서 소리가 나나? 둘다 문제가 있었겠지.”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맞는 거야?”
 
 이 말은 모두 폭력을 문제해결 방법으로 선택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말들이다. 맞아도 되는 일, 폭력을 당해도 되는 일이 과연 있을까? 맞아도 되는 사람, 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것을 ‘말대꾸’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개성과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을 ‘기센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두 고운 시선만은 아니다. 남성들은 아내나 여자친구가 자신보다 직위가 높거나 월급이 많으면 주변으로부터 능력있는 가장과 멋진 남자친구의 자격에서 미달되는 듯한 평가의 말을 듣기도 하고, 스스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을 상처내기도 한다. 여성이 연하 남성과 교제를 하면 ‘능력있으신가 봐요.’라는 식의 주변의 반응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자다운’행동과 필사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남성들의 경향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남자는 절대 여자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그릇된 믿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여성보다 우월하므로 여성들을 리드하고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이는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도 된다는 허락과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맨박스는 이런 문화를 지속시키고, 우리 사회 남성들은 이를 답습한다. 폭력적인 남성이든 평범함 남성이든 가릴 것 없이 누구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중에서
 
▲“폭력을 눈감게 하고, 용인시키게 하는…”
 
 이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와 사회체계와 가치관에서 비롯된 말과 시선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나 아이는 가장이나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며 남성이 책임져야하는 다른 말로 하면, 남성에게 소속되어 있는 존재이다. 여성도, 아이도 남성의 소유물로 대상화된다. 소유물이 자신의 뜻에 반한 행동을 하는 것, 자신의 관리체제에서 벗어나려는 행위, 자신보다 능력 있는 상황 등을 견디고 용납할 수 없다. 여성과 아이들, 약자가 사물화, 대상화 되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으로 하여금 눈 앞에서 신음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된다. 오히려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폭력성을 더욱 증폭시키게 된다. 지난 10년을 기준으로 평균 한 해에 최소 92명의 여성이 남편, 동거자, 가족, 애인 등 남성파트너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특례법은 생명을 위협당하는 피해여성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기 보다는 가정을 유지하고 가정을 보호하며,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국가는 폭력으로부터 폭행당하고 살해위협을 받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 한다고 한다. 한 여성, 한 인간이 철저히 소유물 즉 대상으로 전락하는 가정이 과연 행복한 가정이며 유지해야 할 가치가 있는 가정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가정이 먼저인지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먼저일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남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여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여인이 당하는 폭행에,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남성의 행위에 그 사람의 가정문제이니 함부로 관여해선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지게 한다. 폭력을 눈 감게 하고 그러므로써 사회에서 폭력을 용인시키게 만드는 것이다.

 이 사회에는 참 이상한 말들이 많다. 끄집어내어지고, 낯설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사고와 관념과 가치체계와 사회구조가 많은 것이다. 자꾸 끄집어내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더!

 “남자아이들은 뭐하고 여자아이들이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거야?” 이 말도 이상하지 않나요?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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