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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전을 만나다]니체 ‘초인에 대하여’ & 간디 ‘간디 자서전’
운명을 살아내는 방법
박혜진
기사 게재일 : 2019-07-15 06:05:01
▲ 사열하는 히틀러.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초극하기위해 무엇을 했는가?
 이제까지 모든 존재는 자신을 능가하는 무엇인가를 창조해왔다.
 너희는 그 위대한 조수의 썰물이 되길 원하며
 인간을 초극하기보다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가?
 인간에게 원숭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웃음거리, 혹은 괴로운 수치다.
 초인에게는 인간 또한 그럴 것이다.
 너희의 의지는 말해야 한다.
 초인이란 대지의 의미여야 한다고.
 위대한 자는 신을 만들지 않고
 스스로의 신이 된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초인에 대하여
 
▲일그러진 영웅 히틀러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최고 제약 없는 권위를 가지면서 궁극적인 가장 중대한 책임도 짊어진다. 그러한 것을 못하거나, 또는 비겁하여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자는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영웅만이 지도자에 알맞다.”
 
 위 말은 사사건건 옳다. 지도자가 되려면 민중을 이끌기 위한 원대한 비전과 현실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이 필요하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민중의 국지적 바람을 읽는 동시에, 국경 너머 대륙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누구의 말일까? 독일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총통으로 선출 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아돌프 히틀러가 자서전 <나의 투쟁>에 남긴 말이다. 히틀러는 총통이 되기 10여 년 전 뮌헨에서 권력쟁탈을 위한 쿠데타를 일으켜 5년 동안 구금된 적이 있었다. 수감 생활 동안 그는 번역본으로 1200쪽에 육박하는 책을 썼는데 출판된 책은 10만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하며 히틀러 정권하에서는 나치 당원의 성서가 되었다. 유럽 곳곳에 수용소를 지어 육백만이 넘는 인명을 살상한 장본인.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지배해야하며, 강자는 약한 것과 결합해 자신의 우수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약육강식과 순혈주의의 광신자. 그럼에도 <나의 투쟁> 출간 후 자신의 직업을 순정한 ‘작가’라고 밝혔던 예술의 신봉자.

 히틀러는 글과 말이 갖는 파급력을 직관적으로 깨우치고 있었던 대중심리의 선동가였다. 권력과 복종의 관계는 이성이 아닌 감성, 객관이 아닌 주관과 사적 관계가 개입할 때 광적인 몰입과 집착을 낳는다. 히틀러는 정치에 종교적 열광과 열애의 감정을 부여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오후가 되면 독일 시민들은 히틀러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삼삼오오 가정에 보급된 라디오 앞에 앉았다.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카랑카랑하게, 라디오를 뚫고 들려오는 총통의 ‘독일 국민에게 고하는 목소리’에 심취하였다. 세계1차 대전 패배의 여파로 높은 실업률과 가난에 허덕이던 다수의 독일인에게 아리안이라는 자존을, 예술과 철학의 종주국이라는 자부를, 따라서 독일의 고통은 우리의 죄가 아니며 저 비열한 유대 자본의 착취에 따른 결과임을, 우리는 투쟁할 것이며 선은 승리할 것임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목소리.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 적었다.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글보다 말이 더 효과적이며, 따라서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연설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을 손에 쥐고 그들을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가진 자유를 한 번에 조금씩 가져오는 것이다. 너무 작아서 거의 느낄 수 없는 조각낸 권리들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런 변화들에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와 자유가 빼앗긴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더 강한 것이 지배해야하며, 약한 것과 결합해 그로인해 자신의 우수한 점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유대인은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투쟁’
유대인소녀 니나와 히틀러.
 
 스펙터클한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눈과 마음이 홀리는 사람들은 극장의 불이 꺼지고 나면 무릇 영화가 사실이 아닌 허구임을 자각하고 일어선다. 그러나 히틀러가 연출한 역사는 스크린이 아닌 현실, 노란 별을 달고 게슈타포에게 끌려간 이웃은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한 자부심에 이끌려 안네 가족을 고발한 아리안 소년의 마음에는 지울 수 없는 어둠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진다. 그것은 자신의 양심을 무시한 대가로 남게 된 잔인한 흔적,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용서를 받을 수 없는 까닭이다. 1945년 종전 후, 히틀러라는 이름은 인간성의 치욕으로 남았고 이후로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의심과 회의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더 나아졌는가. 이성의 우월성이 도덕의 우월성이 아니며 이성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너무도 협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자칭 한 시대를 넘어서는 영웅이 되고자한 남자의 몰락은, 살아남은 인간에게 반성과 성찰을 남겼으나 그 대가는 너무도 컸다. 궁금하다. 평범하고 성실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한때 화가가 되기를 꿈꿨던 히틀러, 그에게 없었던 자질은 무엇일까?
 
▲또 다른 영웅 간디가 이룬 자비와 용서, 아힘사
 
 어쨌든 나는 도둑질을 했고, 그 빚은 청산이 됐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아버지에게 자백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때릴까봐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아버지가 당할 고통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깨끗한 자백 없이 결백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자백서를 써서 그것을 내 손으로 아버지께 바쳤다. 아버지께 자백서를 바칠 때에 나는 벌벌 떨었다. 그 때 아버지는 누관을 앓고 계셨으므로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것을 다 읽었을 때 구슬 같은 눈물이 두 뺨을 흘러내려 종이를 적시었다. 나도 울었다. 내가 만일 화가라면 오늘이라도 그 광경을 그대로 그릴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아직껏 그렇듯 생생하다. 그 사랑의 눈물방울들이 내 양심을 정화시켰고, 내 죄를 씻어버렸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자만이, 그만이 그 힘을 안다. 당시의 나는 거기서 아버지의 사랑을 볼 뿐이었지만, 오늘 날 나는 그것이 순수한 ‘아힘사’임을 안다. 그러한 ‘아힘사’가 모든 것을 쓸어안게 될 때 그에게 닿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 힘에는 한계가 없다. - 간디 자서전
물레 돌리는 간디.
 
 같은 시기 인도에는 히틀러보다 스무 살 많은 간디가 있었다. 히틀러가 궁지에 몰려 자살했다고 알려진 1954년으로부터 3년이 지난 1948년 1월, 간디는 힌두교 극단주의자 나투람 고두세에게 암살당한다. 간디는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했다. 수천 년 이어져온 카스트 제도도, 다수 힌두교도의 소수 이슬람을 제외하는 정책 결정도 간디가 보기엔 폭력이며 억압이다. 간디를 중심으로 한데 뭉쳤던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자 종교를 두고 저희들끼리 다퉜다. 상대방을 비하하는 거짓 소문과 집단 폭력이 힌두와 이슬람의 이름으로 횡행하던 인도. 나투람 고두세는 강력한 신념을 가진 자, 히틀러와 나투람 고두세처럼 밀도가 강한 신념은 자기장을 형성해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 신념의 자기장안에 포획되는 대다수 사람들은 큰 ‘이념’에 자기를 바쳐 작은 자기를 망각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인간을 잊은 이념은 얼마나 잔혹하고 편협한가. 인간을 기억하는 이념이 ‘진리’라면, 인간을 망각한 이념 혹은 신념은 자아가 약한 사람을 꾀는 ‘백설공주의 거울’ 거울은 말한다. “당신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만 이것만 제거한다면요.”

 히틀러에게 없었으나 간디에게는 있었던 것은 아힘사(ahimsa)였다. 아힘사는 산스크리트어로 불살생, 용서, 자비 등으로 번역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 그 이상이다. 아힘사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에게 악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정화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위한 선의가 나의 마음과 정신을 맑히는 과정이자 행위라니, 이타와 이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다. 그 이면에 투쟁과 약육강식의 원리를 내포하는, 세상에 넘치고 넘치는 이분법적 주장들. 아힘사는 ‘네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라는 원리로 생명관과 생태관에 대한 포괄적인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아힘사는 평생 간디가 추구하던 덕목이었다. 간디의 자서전에는 자신의 공적이나 대단한 성과를 자랑하는 글 따위는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간디 자신이 어떻게 자신이 따르고자하는 ‘진리를 실천하는 실험대’로서 삶의 사건들을 맞이하고 처신했는지에 대한 고백이 있다. 이 작고 왜소했던 사람,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은 때로 실수하고 더 많이 실패했다. 그래서 끝없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들을 의식할 수 있었고 초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영웅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박혜진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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