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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며, 함께 나누며]‘지각대장 존’ 존 존 버닝햄 글, 그림 / 비룡소
존엄성을 부정당하는 사람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 방식으로
하수정
기사 게재일 : 2020-02-10 06:05:02
▲ 지각대장 존.
▲“우리는 학교의 주인이 아니에요”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

 “학생 아닌가요?”

 “네. 청소해야 할 때하고, 시킬 일이 있을 때 만요.”

 ‘바뀌었으면 하는 학교, 내가 원하는 학교’라는 주제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뻔한 대답을 기대하며 던졌던 질문에 내가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떤 때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를 더 물어보았다.

 “학급회의를 통해 우리 반이 학교에 제안한 내용이 잘 반영이 안 돼요. 우리가 제안한 것이 왜 반영이 안 됐는지 이유도 모르고, 반영이 되면 언제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없어요.”

 “전에 제가 ‘엘리베이터에 아픈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만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붙어 있는데, 왜 선생님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세요?’라고 말했다가 벌로 명심보감 썼어요. 저는 왜 제가 왜 벌을 받아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혼이 나는 주인이 어디 있어요?”

 “축제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도 연습시키느라 힘드시고, 선생님이 화내시니까 우리도 자꾸 짜증나는데... 축제에 대해서 우리 생각을 안 물어봐요. 우리는 그냥 축제니까 해야 하니까 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축제면 좋겠어요.”

 “학교에 주차장이 자꾸 늘어나요. 우리는 거기서 놀지 말라고 하구요. 우리가 놀고 이용할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학생의 학교는 아닌 것 같아요.”

 “설문조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어요. 결과도 몰라요. 우리는.”

 내가 만난 몇몇 아이들은 학교 여러 사항을 처리하고 결정할 때 학생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학생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되지 않을 때, 학생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학교가 운영될 때 자신들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학교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 감정을 무시할 때. 자신을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할 때,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이 아니라 ‘몇 번’, “야~”라고 부를 때, 학교의 학생으로 지켜야 할 것만 이야기할 때, 가만히 있으라고 할 때, 투명인간 또는 필요 없는 존재로 대할 때, 신체적 또는 감정적으로 모욕할 때 아이들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며 학교의 주인이며 배움의 주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고 한다.
[사진0 
▲지각대장 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갔습니다. 초록 나무가 규칙적으로 심어져있는 곳을 지나 초록들판을 지나 학교에 갔습니다. 존은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가다가 하수구에서 불쑥 나온 초록악어를 만났습니다. 초록악어가 존의 책가방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잡아당겨보고 끌어보지만 초록악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존은 어쩔 수 없이 장갑을 악어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악어가 책가방 대신 장갑을 무려는 사이에 간신히 가방을 들고 학교에 왔습니다.
 존은 선생님께 자신이 왜 지각을 했는지 이야기를 했지만, 선생님은 존의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동네 하수구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넌 나중에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써야 한다. 알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존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정말 그렇게 300번 썼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갔습니다. 노란 곡식이 자라는 곳을 지나 초록잔디에서 소가 풀을 뜯는 농장을 지나서 학교에 갔습니다. 존은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가다가 노란사자를 만났습니다. 사자가 존의 바지를 물어뜯었습니다. 존은 간신히 사자를 피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사자가 심드렁해져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심심해진 사자가 가버리자 존은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존은 선생님께 자신이 왜 지각을 했는지 이야기를 했지만, 선생님은 존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벽을 보고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지를 찢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400번 외치라고 합니다. 존은 구석에 돌아서서 그렇게 400번 외쳤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존을 덮쳤습니다. 존은 파도가 가라앉고 물이 빠질 때까지 난간을 꼭 붙잡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존은 선생님께 자신이 왜 지각을 했는지 이야기 했지만, 선생님은 존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교실 안에서 꼼짝 말고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라고 500번 써라. 그리고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했다간, 이 회초리로 때려 줄 테다. 알겠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존은 교실 안에 갇혀서 그렇게 500번 썼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가는 길 내내 회색빛 뿐 아무 것도 없는 길을 걸어 학교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존은 제 시간에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존이 학교에 가는 길에는 초록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기도 했고, 노란 곡식이 춤을 추기도 했고, 다리 아래 강이 넘실거리기도 했습니다. 햇빛은 파란색이었다가 노란색이었다가 초록색이기도 했습니다. 악어를 닮은 길에서 존은 초록악어와 한 판 씨름을 하고, 사자의 갈기를 닮은 길에서는 노란사자를 만나 나무 위로 몸을 숨기기도 하고, 다리 밑 넘실대는 강을 건너다가 거대한 파도에 몸을 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만나지 않습니다. 존이 학교 가는 길은 단지 길일 뿐, 무엇과도 닮아서는 안 됩니다. 존은 학교 가는 길에 무엇인가를 자세히 또 오랫동안 들여다보아서도 안 됩니다.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상상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각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기 위해선 아무 것도 만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무 것도 만나지 않아 지각하지 않은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난 지금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빨리 날 좀 내려다오”라고 외치는 선생님의 말에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이라고 이야기 하고 교실로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학교에 가는 길에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 ‘지각대장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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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가 부정당한 것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가 학교 가는 길에 더이상 아무 것도 만날 수 없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 왜 선생님은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만약 학생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처럼 이야기했다면, 그때도 교장선생님의 말을 무조건 거짓말로 치부하고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300번, 400번, 500번 쓰게 했을까도 궁금해진다.

 교장선생님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처럼 말했다면, 선생님은 꾸지람과 가르침이 아니라 그렇게 말한 교장선생님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선생님에게 교장선생님과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어떤 차이를 가진 존재일까?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선 아이가 하는 말은 성인이 하는 말보다 신뢰감과 무게감을 가지지 못한다. 그들이 경험이 부족하고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성숙하지 못 해서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 하고, 중요한 순간에 현명한 판단을 내릴 확률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의 선생님은 존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이해하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존은 가치로운 생각을 하고 의미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율적 존재가 아닌 부족하기에 가르쳐야 할 대상이었다.

 선생님은 존을 비겁한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찍으면서도 존이 느꼈을 모멸감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다. 존을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존엄함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선생님에게 존의 감정 따위는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300번, 400번, 500번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를 존에게 쓰게 하면서, 존의 신체와 정서에 상처를 입혔다. 선생님은 존을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신체적 정서적인 침해를 가해도 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 존은 자율성도 주체성도 감정도 존엄성도 부정당한 채, 가르칠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 동네 하수구에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학교 끝나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300번 쓰거라.

▲낙인, 삭제당하는 사람
 
 선생님이 존을 “넌 거짓말쟁이야”라고 낙인찍었듯이, 우리 사회가 “넌 문제유발자야. 넌 자기밖에 모르는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낙인찍는 사람이 있다. 선생님이 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벽을 보고 400번, 500번 쓰게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며 그 공간에서 삭제해 버린 사람이 있다.

 ‘NO KIDS ZONE’인 카페와 음식점에서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은 거부당하고 삭제 당했다. ‘NO KIDS ZONE’이라는 선언은 아이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라는 이름 뒤로 혐오의 감정을 뚜렷히 가지고 있다.

 거짓말쟁이, 사회의 악, 문제아, 파렴치한, 쓸모없는 자 등의 낙인과 혐오는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생활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위협한다. 그의 존엄성을 공격한다. 타인을 혐오할 권리, 존엄성을 부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럴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알바몬이 아르바이트생 12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키즈존 확산 방침에 대한 찬반의견 설문조사에 참여한 아르바이트생 60% 이상이 노키즈존 확산 방침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과 불편함을 겪은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의미다.

 문제가 발생한다고,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적공간에서 도려내거나 삭제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법일까?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에서 그들을 삭제할 수 있는 전능한 능력과 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여서, 아이를 동반한 성인이어서 공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면 피부색을 이유로, 종교를 이유로, 노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환자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리 또한 배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정한 이유로 우리의 활동을 제한받고 통제받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동네 하수구에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학교 끝나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300번 쓰거라.

▲타인을 나의 반응에 반응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우리는 누군가를 삭제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해결방법을 상상하고 모색해야하며 선택해야 한다.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면 어떨까? 아이들을 공간에서 빼기하기 이전에, 카페나 음식점 등 공공의 공간 안에 아이들의 공간을 더하기하면 어떨까? 공간 사용에 대한 규칙과 안전 주의사항 설명을 먼저 더 더해 보면 어떨까? 당황스럽고 미안해서 쩔쩔매는 부모의 마음에 우리가 이해하는 마음을 더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있든 없든 타인이 나처럼 가지는 편안하게 쉴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더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자신을 향해 타인이 보내는 시선과 행동에 반응한다. 그것은 역으로 나의 시선과 행동에 타인이 반응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반응에 나는 또 반응하고, 그는 나의 반응에 또 반응한다. 타인을 나의 반응에 반응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나는 이 공간에 함께 있는 타인을 향해 어떻게 바라볼지, 행동할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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