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을 부정당하는 사람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 방식으로

▲ 지각대장 존.
▲“우리는 학교의 주인이 아니에요”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

 “학생 아닌가요?”

 “네. 청소해야 할 때하고, 시킬 일이 있을 때 만요.”

 ‘바뀌었으면 하는 학교, 내가 원하는 학교’라는 주제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뻔한 대답을 기대하며 던졌던 질문에 내가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떤 때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지를 더 물어보았다.

 “학급회의를 통해 우리 반이 학교에 제안한 내용이 잘 반영이 안 돼요. 우리가 제안한 것이 왜 반영이 안 됐는지 이유도 모르고, 반영이 되면 언제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없어요.”

 “전에 제가 ‘엘리베이터에 아픈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만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붙어 있는데, 왜 선생님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세요?’라고 말했다가 벌로 명심보감 썼어요. 저는 왜 제가 왜 벌을 받아야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혼이 나는 주인이 어디 있어요?”

 “축제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도 연습시키느라 힘드시고, 선생님이 화내시니까 우리도 자꾸 짜증나는데... 축제에 대해서 우리 생각을 안 물어봐요. 우리는 그냥 축제니까 해야 하니까 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축제면 좋겠어요.”

 “학교에 주차장이 자꾸 늘어나요. 우리는 거기서 놀지 말라고 하구요. 우리가 놀고 이용할 공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학생의 학교는 아닌 것 같아요.”

 “설문조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어요. 결과도 몰라요. 우리는.”

 내가 만난 몇몇 아이들은 학교 여러 사항을 처리하고 결정할 때 학생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학생의 의견이 적절히 반영되지 않을 때, 학생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학교가 운영될 때 자신들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학교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 감정을 무시할 때. 자신을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할 때, ‘나’라는 사람의 고유성이 아니라 ‘몇 번’, “야~”라고 부를 때, 학교의 학생으로 지켜야 할 것만 이야기할 때, 가만히 있으라고 할 때, 투명인간 또는 필요 없는 존재로 대할 때, 신체적 또는 감정적으로 모욕할 때 아이들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며 학교의 주인이며 배움의 주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고 한다.

▲낙인, 삭제당하는 사람
 
 선생님이 존을 “넌 거짓말쟁이야”라고 낙인찍었듯이, 우리 사회가 “넌 문제유발자야. 넌 자기밖에 모르는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낙인찍는 사람이 있다. 선생님이 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를 벽을 보고 400번, 500번 쓰게 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며 그 공간에서 삭제해 버린 사람이 있다.

 ‘NO KIDS ZONE’인 카페와 음식점에서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은 거부당하고 삭제 당했다. ‘NO KIDS ZONE’이라는 선언은 아이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라는 이름 뒤로 혐오의 감정을 뚜렷히 가지고 있다.

 거짓말쟁이, 사회의 악, 문제아, 파렴치한, 쓸모없는 자 등의 낙인과 혐오는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생활을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위협한다. 그의 존엄성을 공격한다. 타인을 혐오할 권리, 존엄성을 부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럴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알바몬이 아르바이트생 12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키즈존 확산 방침에 대한 찬반의견 설문조사에 참여한 아르바이트생 60% 이상이 노키즈존 확산 방침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과 불편함을 겪은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의미다.

 문제가 발생한다고, 아이와 아이를 동반한 성인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적공간에서 도려내거나 삭제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방법일까?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에서 그들을 삭제할 수 있는 전능한 능력과 권리를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여서, 아이를 동반한 성인이어서 공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면 피부색을 이유로, 종교를 이유로, 노인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환자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리 또한 배제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정한 이유로 우리의 활동을 제한받고 통제받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 동네 하수구에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학교 끝나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300번 쓰거라.

▲타인을 나의 반응에 반응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우리는 누군가를 삭제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해결방법을 상상하고 모색해야하며 선택해야 한다.

 빼기가 아니라 더하기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면 어떨까? 아이들을 공간에서 빼기하기 이전에, 카페나 음식점 등 공공의 공간 안에 아이들의 공간을 더하기하면 어떨까? 공간 사용에 대한 규칙과 안전 주의사항 설명을 먼저 더 더해 보면 어떨까? 당황스럽고 미안해서 쩔쩔매는 부모의 마음에 우리가 이해하는 마음을 더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있든 없든 타인이 나처럼 가지는 편안하게 쉴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더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자신을 향해 타인이 보내는 시선과 행동에 반응한다. 그것은 역으로 나의 시선과 행동에 타인이 반응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반응에 나는 또 반응하고, 그는 나의 반응에 또 반응한다. 타인을 나의 반응에 반응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나는 이 공간에 함께 있는 타인을 향해 어떻게 바라볼지, 행동할지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수정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꿈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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