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명날명 인생사 쌓이고

▲ 낡은 간판 아래 명태 말라가는 그 집. `여인(旅人)’이 되어 그곳에 묵고 싶어진다. 나주.
 해는 기울어 흐릿하고 바람찬 어느 날, 타지를 헤매는 누군가에게는 등대처럼 반갑고 요긴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여인숙’이라 불 밝힌 간판.

 여인(旅人)이 자고 머무는(宿) 곳, 이라 말하면 낭만 넘쳐 흐르지만 최소한의 돈으로 하룻밤 몸을 의탁하는 그곳은 밥으로 치면 성찬이 아니라 배고픔을 때우는 한끼. 그래서 더욱 절실하고 뜨신 것이기도 하리라. ‘있어 보이려는’ 것들은 없고 꼭 필요한 것들만 갖춘 곳. 그리하여 모름지기 ‘욕실완비’ ‘TV완비’를 자랑처럼 내걸고 있어야 더욱 여인숙답다.

 남원 죽항동 금영여인숙. 막차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방이 없어서 못 받았다.

 “지금도 터미널은 있지만 예전에 그 앞으로 기차역 있을 때, 통행금지 있던 시절이고 자기 차 없던 그 시절에 타관 사람들이 많이 몰렸어요.”

 지금도 벌초하러 온 고향길에 꼭 들러서 자고 가는 손님들있다. 옛날 생각하고 온다고, 시어른(정복남, 2014년 작고)이 따숩게 해 주시던 것 고맙다고, 아랫목 끓던 연탄불방에 마음이 녹자근 덥혀졌노라고 그런 옛얘기를 듣는다는 며느리 한은옥(62)씨. 오래된 여인숙에 그런 인생사도 한데 흐른다. ‘지붕 아래 방 한칸’에 들명날명 수많은 객들이 저마다 품고 간 하룻밤 이야기들은 그 얼마랴.

 흔전만전해진 모텔들에 여인숙이나 여관이 밀려나듯, 다방들 역시 밀크커피나 쌍화차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들에 밀려 점차 희귀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왕왕 떠드는 한낮의 텔레비전, 수족관, 파리채, ‘아가씨 수시 구함’, 레지, 마담, 동네사랑방…. 그 모든 것이 한데 혼란스럽게 뒤섞여 떠오르는 곳. 흙다방, 길다방, 정다방, 영다방, 샘다방, 약속다방…. 고색이 창연하거나 나름의 순정이 나부끼는 이름 붙은 간판들도 사라져간다.

 다방의 쇠락 속에 목포 ‘궁다방’은 개업한 지 이제 1년인 신참. 헌데, ‘궁다방’ 세 글자 아래 간판 바닥은 낡고 구멍들이 뚫려 있다.

 “본래 네 글자가 있었는디 그것만 띠고 그 바닥에다가 궁다방이라고 글자를 붙였어. 그래서 그래.”

 그러고 보니 ‘궁다방’ 위로 ‘천일약국 地(자리)’라는 펼침막이 붙어있다. 55년 이 자리를 지킨 약국 주인장 유송열(83)씨가 간판 내리고 허전하다고 붙인 펼침막이다. 목포 사람들에게는 랜드마크였던 자리.

 “뭐헐라고 새로 달아. 그것도 이 건물 역사라고 생각허요.”

 목포 택시 기사들이 다 아는 자리에 터를 잡은 ‘궁’의 쥔장 언니(56)는 그렇게 말한다. ‘궁’이 어치게 생긴 줄은 몰라도 ‘궁’에 온 손님같이 대접한다는 그 맘으로 지어붙인 이름이다.

 “여그가 선창가라 우리 손님들이 다 배 선원들이잖애. 60, 70, 80대 선원들이라 요새 새로 생기는 ‘까페’라고 허문 못들어가는 디로 아셔.

 ‘다방’이라고 허문 언능 들올 수가 있제. 익숙헌께. 그런 분들한테는 배에서 내려서 잠시잠깐 앙겄다 갈 수 있는 디가 이런 다방배끼 없잖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이무로운 쉼터.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는 아니지만, ‘이곳에 와 안식을 찾는’ 이들이 있는 한 여인숙과 다방은 그 골목, 그 거리에 포도시 버티고 있을 터.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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