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겁나, 세도 못해”라고 말하는 할매. 쪽진 머리에 옥색 비녀가 고색 창연하다.
 “지져보도 안하고 뽀까보도 안하고. 물도 당아 한번도 안 딜여보고.”
 엄용순 할매(90?임실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가 소개하는 `내 식대로’ 헤어스타일.
 열일곱에 시집온 이래로 “이날평상 요 머리”다.
 뽀글뽀글 `빠마’ 일색인 동네 할매들이 입모아 “인자 요 머리가 참말로 귀헙지(귀하지)”라고 말한다.
 미장원에 한번도 걸음해 본 적 없이 아침이면 가지런히 머리 빗어내려 쪽지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인 할매. 검정 고무신을 꿰고 옥색 비녀를 꽂은 할매가 지금 행차하는 곳은 동네 공동밭이다.
 “함께 해묵는 밭이여. 동네것인께 호맹이라도 한번 너(넣어)줄라고.”“일할라고”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호맹이 넣어줄라고”. 생색이 끼여들 틈이 없는 은근한 말씀.
 “밭에 갈라문 갖고 갈 것이 많애. 호미랑 낫이랑 깔고 앙글 일방석이랑.”
 그리하여 자그만 덩치와 상관없이 할매는 늘 `빅백(bigbag)’ 취향인 것이다.
 “푸대자루로 내가 맨든 거여. 우리 동네서 젤로 커, 내 망태가, 하하.”
 “인자 일 못혀”라면서도 동네 밭에서 함께 울력하는 날에는 빠지지 않는 할매.
 “염치가 있지, 빠지문 되가니. 다들 일허는 자리에. 하문, 놀 자리에는 빠져도 일할 자리에는 안 빠지고 살아야써. 그래야 맘이 핀헌 법이여.”
 여전히 `일하고자운’ 의지, 염치의 용량. 할매가 멘 망태의 크기와 비례한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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