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안 맞아. 고장나불었어. 지 맘대로 가.”

 보성 벌교읍 장암리 대룡마을 오채현(83)·정옥순(80) 부부.

 “그래도 항시 이 자리 있던 거라 못 베래.”

 해로한 부부의 삶도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안 맞고 고장나고 지 맘대로 가도 그 자리를 지키는 서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것.

 고장난 시계 위로는 김소월 시인의 ‘못잊어’를 담은 시화 액자가 걸려 있다.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고, 당신을 잊을 그 먼 훗날은 아직 멀었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인자 두 내외배끼여. 쌀농사는 야답 마지기여. 전부 애기들(3남2녀) 나놔줘. 시방은 무시 뽑으러 가는 참이여.”

 어디 재미난 나들이라도 가는 양 할배는 활짝 웃음.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의 느긋한 삶을 살아온 이라야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웃음이다.

 바로 그때 마나님이 먼저 대문을 나서다가 “아이 뭣허욧!”채근하는 소리가 날아들고 할배는 서둘러 장화를 꿰어신는다. 맞지 않아도 정이 들어 소중한 것이 시계뿐이겠느냐.

 <…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 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빡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 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 >(정일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중)

 당신도 나도 이곳에 와서 반짝 피었다 지는 꽃인 것을.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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