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든’ 밭

 “내 이름은 서운이. 아들을 못 낳고 하도 딸만 나서 우리 어매가 서운하다고 서운이라고 지섰다여. 시방은 시상이 바꽈졌는디, 옛날에는 딸을 사람으로 알았가니.”

 ‘서운한’ 그 이름을 받자옵고 한생애를 건너온 김서운(84·순창 적성면 지북리 태자마을) 할매.

 오늘, 쟁글쟁글한 뙤약볕을 머리에 이고 푸석푸석한 밭을 주전자 물로 호복하게 적시고 있는 중이다.

 “밭곡석이 타고 있으문 이내 가심은 더 타들어가.”

 걸음걸음에 ‘살리고, 살리고’의 간절한 의지가 서린다.

 ‘마음은 콩밭에’. 요즘 할매의 나날이 그렇다.

 “서리태 콩을 숭구기는 지난 2일날 숭궜는디 이러고 안나불었어. 날이 가문게 안나. 그래서 어지께 또 숭겄어. 싹 나라고 물 조깨 줄라고 나왔어. 한나라도 살릴라고. (싹) 안 난 디다 뿌래. 뿔어야 난게.”

 갈급한 마음으로 씨 묻은 자리마다 쪼르륵 쪼르륵 물을 준다.

 “호맹이 댄 자리가 선연하잖애. 호맹이 댄 자리는 물이 쑥쑥 들어가제. 딴 자리는 물이 이러코 휘딱 안 들어가.”

 저마다 평생 눈 대고 마음 기울여온 것에 눈밝아지는 것이어서, 할매 눈엔 씨 묻은 자리, 호맹이 댄 자리가 ‘선연’하다.

 “너무 가물아갖고 곡석 못헐 일 시키구만.”

 사래 긴 밭이다. 밭에 잇대 있는 논 가상의 물을 주전자에 받아 날라 고랑고랑을 타며 물을 주는 공력이 한 땀 한 땀 끈질기게 이어가는 바느질과 다를 바 없다. 그렇건만, 할매는 ‘사람 못헐 일’이라곤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느님 덕으로 살제. 비 안 오문 모도 못 살아. 인자 비가 올티제. 지달리문 언제 와도 오제 안 오겄어.” 시방 물을 주는 수백 수천 걸음걸음은 그 전에 ‘진인사(盡人事)’ 하는 맘인 것이다.

 “한허고 공을 딜애야제. 촌에서는 헌다는 짓이 요거여.”

 ‘헌다는 짓’의 지극정성. ‘공 든’ 그 자리에 기필코 싹은 돋아 올라오리니.

 “싹이 올라와서 나불나불허먼 이뻬. 고런 거 쳐다보는 맛에 이 고상을 고상이라 생각 안하제. 돈 벌라고만이 아니라 이뻬라 하는 그 맴이 있어야 곡석을 키우고 가꾸고 살어.”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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