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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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겨우 겨우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거지요. 내가 두 그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말라 고통을 겪는다는 걸 깨달아야 해.”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그러하였다.

 ‘내 몫 이상을 쓰지 않고 사는 삶’ 이 여기 있다.

 “옛날에는 보지런해야만 물천신도 했어. 가뭄 들문 시암에 물 고이기를 지달리고 앙겄다 바닥을 국자로 긁어내. 그래갖고 포도시 물을 반 바께쓰나 모태고 그랬어.”

 정현님(영광 묘량면 영양리 장동마을) 할매가 그러하였듯, 가뭄 들면 동네 시암물을 국자로 긁어서 모태던 시절을 건너온 어매들한테 물을 ‘물 쓰듯’ 하는 법은 없다.

 “물을 차근차근 놔둬. 습관이여.”

 말간 불부터 허드렛물까지 크고작은 다라이며 양동이며 대야에 층층이 간수한 시암가 풍경. ‘한번이라도 더 써묵는’ 알뜰한 정신이 낳은 ‘물의 층계’이다. ‘포도시’ 모은 물이란 그리도 귀하고 간절한 것.

 “큰애기때 어매 허던 것 보고 배운 그대로여. 물 한 방울도 함부로 허문 죄로 간다고 용왕님이 벌을 준다고, 나한테는 그 생각이 배겨져 있어.”

 ‘지구를 위하여’라는 슬로건 같은 것은 내건 적 없어도, 지구의 안녕을 위해 나의 불편은 마땅히 감내해 온 이의 거룩한 말씀이시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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