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습니다.’
 어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 받은 성적표의 행동발달사항에 그런 글귀가 써져 있었더란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언제 어디서나 ‘주전자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떠다 놓는 사람’이 되려 하였다.
 품이 들어가는 일, 생색도 안 나는 일,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일.
 마치 굳은 맹세나 한 것처럼 그런 일을 거듭하는 사이 그 아이는 목마를 때 꼭 그 자리에 있는 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시방 어느 시암가에서 길어올리는 물 한 방울을, 어느 텃밭을 어느 들녘을 적실 물 한 줄기를, 생각한다.
 메마른 자리를 희망으로 바꾸는 물의 행로에 깃든 몸공들이 거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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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윌 대로 야윈 뼈나무.
 와불인 양 옆으로 누워 계시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랑하면 이 세상에 부처 아닌 게 없다 하였다.
 오늘 만난 부처는 이 빨래방망이다.
 물에 놓으면 성불한 물고기처럼 고요하게 헤엄쳐 갈 것 같다.
 때묻은 옷가지 맑혀낸 세월이었다.
 헌신(獻身)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몸뚱아리.
 자신을 온전히 공양함으로 세월 속에 몸피를 덜어내었다.
 <마음에 조바심과 망령됨을 갖지 말자! 오래 지나면 꽃이 피리라.
 입에 비루하고 속된 것을 올리지 말자! 오래 지나면 향기가 피어나리라.>
 (이덕무, ‘서쪽 문설주에 쓰다’ 중)

 조바심도 망령됨도 갖지 않았으니, 비루하고 속된 것도 입에 올리지 않았으니, 오래된 죽은 나무에서 향기가 난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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