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향한 섬 어매들의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되고

▲ 낭도 골목의 벽화.
 가을볕 이고 김복심(82) 어매는 밭에 갔다 오는 길이다.

 어매의 한나절 행적을 말해주듯 보행기 속엔 배추랑 고추가 한가득.

 “토요일날 우리 딸한테 갈라고 밭에서 따왔어. 꼬치는 된장 찍어묵으라고. 딸이야는 존 놈으로만 존 놈으로만 추랬어. 물짠 놈은 내야, 하하.”

 여수에 사는 딸네 집에 가기 전에 할 일이 태산이다.

 “싱건지도 담고 새짐치도 담고 깨 보끄고 지름도 짜고. 딸도 사우도 고생시롭다고 암껏도 하지 말라고 맨나 단속해싼디….”

 결론은 “내가 하고자픈께.” 세상 어느 자식들도 말릴 수 없는 어매들의 결기가 그 말 한마디에 서린다.

딸 고등학교 때 교복치마로 만들어 ‘딸 보는 것맹키로’ 밭에 갖고 댕기는 자루.

 고추가 가득 든 자루는 어매표 핸드메이드.

 “우리 딸 고등학교 때 교복치매로 맹글았어. 그 딸이 지금 마흔일곱이여. 내뿔기는 아깝고, 니 본 것맹키로 니가 입고 댕긴 교복치매를 내가 밭에 갖고 댕길라고 주머니로 맹글았다고 딸한테 그랬어.”

 밭엣것들 담기보다 ‘니 본 것맹키로’가 이 주머니의 효용이런가.
 
 ‘니 본 것맹키로’ 꺼내보는 막둥이 반바지

 “우리 막둥이 머이마가 시방 마흔세 살 묵었는디 장개 안갔어. 근디 국민학교 댕길 때 선생님이 우리 막둥이를 쩌어 소라면 학교로 담박질치기대회에 데꼬 나갔어. 거그서 우리 막둥이가 상 타고 체육복 반바지 한 벌 얻어입고 왔더라고.”

‘막둥이 머이마 보는 것맹키로’ 자주 뽈고(빨고) 자주 꺼내보는 초등학교 때 반바지.

 그 반바지를 어매는 여즉 간직하고 있다.

 “딱 개서 좋게 놔뒀는디 엊그저께 또 꺼내서 뽐시롱 이 반바지를 내가 뭐더러 뽀까 내속으로 그랬어. 무단시 한번썩 내서 깨끗허니 뽈아놔. 뽈아서 파싹 볕에 말려노문 깨끗허니 흑허니 그리 좋아뵈. 우리 머이마는 그 반바지 볼 때마다 내가 학교 댕긴 제가 언젠디 없애불제 뭐더러 놔뚠가 자꼬 그래싸. 니 보고자플 때마다 볼라고 놔뚠다 그랬제. 내가 생각해도 웃기당께. 뭐더러 그 반바지를 평생 뽈아 딜여놓고 뽈아 딜여놓고 이러고 있으까.”

 ‘교회 옆에 큰 유자나무 아랫집’에 산다는 어매를 따라간 집엔 안팎 곳곳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리 막둥이 머이마가 기랬어.” 김복심 어매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런가.

 “우리 막둥이 머이마가 기랬어. 솜씨 좋고 키도 크고 이삐고 순천에서 회사 댕개. 지난 추석에 와서 또 기래놨대. 집에 오문 맨나 기리고 고치는 것이 일이여. 뭐더러 그러코 집단속하냐 그러문 엄마가 산께 내가 집단속해야제 그래.”

 그 막둥이 머이마 반바지 위에 얹힌 어매의 손.

 “내 손을 봐봐. 일도 일도 많이 했네. 열니 살 때부터 베짜고 모 숭그러 댕기고. 우리 아부지가 그러코 일을 시캤어. 아침이문 깨움시로 하래 아침에 니가 마당을 쓸문 보리가 닷되썩 나온다고 맨나 또 그 소리. 원망도 많이 했는디 그때는 그러코 보지런해야 묵고산께 그것을 갈칠라고 그랬겄제. 추석에 비단옷 해줄 것인께 나 따라가자 그래갖고 따라가문 맨나 일하는 곳이여. 비단옷은 끝내 못 얻어입었제.”

 대신 ‘보지런함’만 유산으로 몸에 새겨준 아버지.

 “오매 저놈 유자를 따주고자픈디 높아서 못 따. 야트막하문 따주꺼인디. 냄시가 얼매나 존디.”

 안타까움 섞인 어매의 말에 올려다본 그곳에 가을하늘 푸르고 유자 샛노란 것이 색깔만으로도 그 향기 전해진다. 어매의 마음도 전해진다.
 
 “맨나 보고잡제. 보고잡지만 보겄소”

 대문 옆 담벼락에 할매 얼굴이 그려진 집. 유중임(90) 어매가 사는 집이다. 노란 대문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지요’라는 말도 써져 있다.

 어매 해설로 그 말을 옮기면 “항, 되지. 오만 것이 다. 사는 것이 다 된 일이여.”

 “길갓집이라고 이러코 기림을 기래줬어. 시상에 쉬운 일이 한나도 없제. 몸썰나게 일하고 살았어.”

대문에 써진 말마냥 “항, 되지. 오만 것이 다. 사는 것이 다 된 일이여”라고 말하는 유중임 어매.

 열여섯 살에 시집온 이래 시작된 ‘일의 역사’가 줄기차다. 오늘도 밭으로 행차하는 걸음 그치지 않는다.

 맨나 보고자운 자식들은 “군산도 살고 인천 대전도 살고 강완도도 살고….” 그 모든 곳들을 아우르는 말은 ‘처어어그’. 늘이빼는 말에 먼 거리가 담긴다.

 “여그를 한번도 안 떠나, 팽생. 여그서 나고 여그서 늙어지요.”

 고샅에서 만난 김말례(92) 어매는 “꼭 우리 딸맹키요, 어서 왔소?”라며 낯선 이의 손을 꼬옥 감싸쥔다.

 광주라는 말에 “웜마나, 그 먼 디서 오다니!”라며 어매는 화들짝.

 낭도 바깥은 어매한테 모두 ‘그 먼 디’. 한동네로 시집와 딸 다섯 아들 셋을 낳았다.

 “한나는 띠캐불고. 다 서울가 살고 여수 살고 그런께 전화나 하고 말소리나 듣고. 맨나 보고잡제. 보고잡지만 보겄소.”

 어린 자식들을 일찍 육지로 떠나보내고 하냥 그리움에 젖어 사는 것이 섬어매의 운명.

 ‘내 그리움은 반만 담아도 바다가 된다.’

 골목 담벼락 그림에 써진 말. 소녀감성으로만 여겼더니 낭도 섬어매들에 이르러 그 말은 한없이 묵직해진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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