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 사람이 순전히 구식으로 사요”

▲ 그 문앞에 떨어진 신발의 흙을 모탠다면 산이 됐을 것이다. 정게 문앞에 잠시 쉰다.
 오래된 동무처럼 유정한 살림살이

 복산떡은 평생 닭보다 먼저 일어났다. 날마다 복산떡이 일어나고 나서야 닭이 울었다. 아직 그 부지런을 못 고치고 산다.

 “내가 성질이 못앙겄어라. 오르락내리락 기다니요. 온 아칙에도 부삭에 불 땠어.”

 시방도 꺼멍 무쇠솥에 물 끓여서 고사리 삶고 취 삶은 것을 정게(부엌) 앞에다 널어서 말리는 중이다. 밭가상에서 앉은걸음으로 껑꺼서 모탠 것들이다.

 할매의 정게는 친정아버지가 처음 집을 지어주던 때 그대로다.

 “안에다 단다고 아버니가 놈의야 헌 문을 갖다 달았어.”

 방으로 통하는 그 문에도, 벽에도 꺼멍 그을음이 더께더께 내려앉았다. 꺼멍무쇠솥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 작은 식초오가리, 나뭇가지로 만든 걸치기(솥 안이나 솥 가상에 걸쳐서 위에 찜양푼을 올려 밥을 찐다). 두 여자의 손태죽에 길이 난 부엌살림들은 오래된 동무처럼 유정하다. 부삭에 솥받침은 칡덩굴로 만든 것이다.

 “소두방 노문 좋아라. 작년에 맨들았소. 조깐 큰 놈도 해놨어. 깔고 앙글라고.”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 사지 않고 내 몸공을 들여 자작하는 어매. 한번 내 것이 된 인연은 끝의 끝까지 지켜보려는 어매는 내복도 꿰매 입고 고무신도 꿰매 신고 치(키)도 꿰매 쓴다. 몽당빗지락마저도 둘을 보태어 몸피를 키울 궁리를 하는 어매다. 버리는 것이라곤 없으니 쓰레기통도 없는 집이다.

 “시어마니 살아지실 적 쓰던 것이여.”

 시어머니 생전에 놔두신 그대로 두고 쓰는 장독들은 기우뚱한 채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 시집온께 저러고 있습디다. 장독 밑에 독도 그대로여. 거그다가 세맨을 볼라준다근디 마다 그랬소. 시어마니가 헌 것이라.”

 옹삭시런 자리에서 넘어지지 않고 앉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꼭 할매 같다.

 “첨에 온께 삼간에 접집으로 좋습디다.”

 삼간겹집은 난리통에 꼬실라지고 그 자리에 지어올린 집은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두 칸집이었다. 마루는 집을 짓고 한참 후에 놓았다. 옹이구멍이 있었는지 구멍이 난 자리를 할매는 살뜰하게도 꺼멍봉다리를 똘똘 뭉쳐 막아놓았다.

 “말래 자리에다 꺼적데기를 깔고 산께 아버니가 함평서 구루마에 나무를 사서 모냐 보내고 목수를 데꼬 와서 이 놈 말래를 놔줍디다. 울 아버니가 나 땀에 참 고상허갰어. 그런디 내가 살아생전에 고맙단 말을 못해봤소.”

 친정어머니는 아버지 얼굴도 못본 외손주를 그리 짠해라고 했다.

 “뭐슬 감촤갖고 있다가 가문 주고 주고 그런께 우리 막내동생이 저놈새끼 디꼬오지 마라고 띠를 쓰고 그래. 그때는 지도 애렸은께.”
여전히 쓰고 있다. 심계순 할매가 ‘서망’이라고 부르는 변독.

 마루 아래로 토방은 아들 병환이가 째깐해서 저보다 두 살 더 먹은 삼촌뻘 친척이 폴딱 뛰내리는 것을 보고 따라서 뛰내리다가 다리를 부러뜨린 자리다.

 “울 아그가 그때 일년을 고생했소. 저 토방이 높아갖고.

 허리 굽은 어매는 그 토방이 시방 높다 아니하고, 그 애린것한테 높았노라 애기한다.

 마루벽에 높이 걸린 시렁에는 꺼멍봉다리가 조랑조랑 올려져 있다.

 “모도 신이여. 미느리가 신을 사와라. ‘뭐덜라고 사오냐. 살라문 구수(구두)짝 말고 꺼멍고무신이나 사와라’ 내가 그래.”

 신지는 않아도 그 맘이 고마워 먼지 앉을까 꺼멍봉다리에 싸매서 조랑조랑 앉혀둔 신발들이다.

 마루 앞에 굵은 대막가지를 길게 달아놓아 우천에 빨래도 널고 오만 것을 걸치기 좋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들 솜씨다.

 “지그 어매 핀리허라고 오문 뭐이든 손 보고 가요.”
 
개 한 마리하고 바꾼 스레트 지붕

 할매의 방엔 앉은뱅이책상 하나, 작은 문갑 하나가 살림의 전부다. 그 나머지는 보자기나 봉다리로 보따리보따리 봉다리봉다리 야물게 단속해 두었다.
꺼멍봉다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할매. 마루벽 시렁에 올린 조랑조랑 봉다리엔 신발이 들어 있다.

 “내가 그리 추접은 안 내고 사요마는.”

 겸양의 말씀이다. 요새 사람들이 말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이란 이런 것. ‘궁극의 미니멀리즘’이 실현된 할매의 집이다. 마루 아래는 껌정 고무신 한 켤레. 그 흔한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 찾기 어렵다.

 그나마 신식 물건이라고는 오래된 냉장고 하나.

 “나는 테레비도 안봐. 전에 있었는디 어긋나서 내뿔었어. 테레비 밸 필요 안허요. 내가 구식 사람이라.”

 할매의 집에서는 신문물에 속하는, 고색창연 슬레이트 지붕은 개 한 마리하고 바꾼 것이다.

 “스레뜨는 아들이 사놓고 갔어. 친정 동상들이 목수쟁이 데꼬 와서 일을 해 준다고 헌디 삯 줄 돈이 없어. ‘헐 수 없다. 개라도 묵게 해줘야쓰겄다’ 맘을 묵었는디, 그 놈을 잡을 수가 없어. 계란을 삶아갖고 정게서 먹는 시늉을 헌께 들와라. 쥔네라고 들온 것을 내가 옆에 갖다 둔 작대기로 탁 투들어서 잡았소. 그 놈을 차두에 담아서 갖다줘야 스레뜨 해도란 말을 허겄어. 뻐스를 타고 갈라고 헌게 차장이 ‘피가 흘러서 못씨겄소’ 그러는 것을 ‘헐 수 있소. 내가 스레뜨를 헐라고 이만저만 허요 쪼깨 양보허씨요’ 긍께 암말도 안헙디다. 그때 내가 개 투드는 디 보고 동네 이핀네가 ‘나는 인데까(여즉) 복산떡이 안 싸난 줄 알았네’ 허더니, 그 뒤로는 나를 무솨라 그래라.”

 내 걸음발 앞에서 총 맞아 죽은 남편을 땅을 파서 묻고 건너온 세월은 강하지 않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날들이었다.

 “나는 이 시상에 무선 것이 없어라.”

 복산떡이 개 한 마리하고 바꾼 스레뜨 지붕이 보듬아서 지키는 본채 가차이엔 용도를 상실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돼지막이 있다. 지붕도 벽도 다 무너진 돼지막에는 돼지가 밥 먹던 구시가 그대로 있다.
마루의 옹이구멍도 꺼멍봉다리를 뭉쳐 야물게 막았다.

 “돼야지를 일년이문 두 마리썩 냈어. 그놈 돼야지 키와갖고 포도시 살았소. 돼야지 아니었으문 못 살았어라.”

 그 고마운 것을 못 잊어서 거기 두고 노상 눈을 대면서 산다.

 “시어마니가 들에 갔다 올 직에는 항시 고맹이(고마리) 풀이라도 손에다 찌고 오새. 돼야지 준다고. 손지 잘되게끔 헐라고 고상허샜어. 뭐이든 벌문 내게다가 딱 줘뿔어. 뭐슬 모른 것마니로. 내게다 권(권리)을 줘불라고 그랬제. 댐배도 사다드래야 잡수고 글케 허십디다 내게. 시어마니 생각에도 못 뜯고 보요.”

 못 뜯고 보는 돼지막 몇 걸음 옆으로는 안 뜯고 시방도 쓰는 헛간 겸 치깐(측간, 변소)이 있다.

 “우리집은 수도만 묻었제 치깐은 구식대로여. ‘서망’(심계순 할매는 그리 부른다. 소매 항아리. 큰 항아리를 묻어 쓰는 변독) 쓰는 사람은 나 한자이지매. 두 개여라. 내가도 푸고 아들이 오문 퍼주고. 나 한자 본디 거름 맹글 것이나 있가니. 호박고지에나 째까 찌클제.”

 ‘생태변소’라는 말을 아지 못하는 할매의 ‘서망’ 앞에는 비료 푸대에 손바닥만한 크기로 자른 신문지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내가 가새로 깔랐어. 내가 뭐이라고 존 종우를 써. 나는 순전히 구식사람이여. 암거나 쓰문 어쩌가디. 미느리가 화장지 사다 놨어. 지그들 돈 주고 산 것을 아까운께 안 써. 내가 뭐이라고. 며느리 아들 손자 오문 쓰라 그래야제.”
 
 “나 꼿꼿해. 나 곡괭이여라”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도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할매의 집.

 “이 아래가 밤나무자리였어라. 소개됨서 그것도 타불었소. 우리 아버니가 집 지슴서 그 자리다 심었어. 저짝에치는 괴얌(고욤)감나무여.”

 콩도 치고 폿도 치고 할매가 성성할 적 저도 활기차던 마당은 무장무장 고요가 쌓여가고 그 가상으로는 봄이라고 꽃잔디 분홍빛이 환하다.

 “혼차 산 사람이 뭔 꽃을 얼매나 질거워라고 헌다요. 우리 매느리가 참 좋아라. 친정에서 갖다 숨거 놉디다.”
꺼멍 그을음이 더께더께 내려앉은 부엌. 그 흔한 플라스틱 쪼가리 하나 없다. 시어머니 박계순과 며느리 심계순 할매의 손태죽에 길이 난 오래된 부엌 살림들이 유정하다.

 꽃보다 꽃 심은 며느리의 마음을 앞세우는 할매.

 “울 아들이 스물 넷에 장개 갔어. 여울라고 요 아래채 지섰어. 여그 옆에 돌아가신 양반이 지섰어. 윤병옥씨. 작년 정월에 돌아가셨어.”

 아들 며느리는 삼년 함께 살고 남매를 낳아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나 젊어서 동네서 말도 잘 안 섞고 본 적 만 적 하고 싸납게 허고 산께, 복산떡은 며느리 못볼 거라고 그런 말도 나옵디다. 그러껜가 우리 미느리가 내한테 그래. ‘나 시집와서 암것도 할질 몰랐는디 어머니가 잘 봐줘갰은께 나도 잘헐라’ 그러드만. 나 미느리 잘 봐. 시어마니가 내헌테 허시는 것을 저껐는디.”

 처마 아래 쌓아둔 나무더미만 봐도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시어마니 살아서 해다 논 놈 끌텅이 안즉 있어라, 다 못때고. 인자 못허겄어. 작년 봄까장도 밭 가상에 자빠진 갈쿠나무 큰 놈도 주서갖고 왔는디 어지께는 못 갖고 오겄습디다.”

 할매한테 늙음이란 땔나무를 눈으로 보고도 못 가져오는 것이다.

 “땔나무 있을 동안 그 안에 죽어야껀디. 미느리가 밤낮 암데도 가시지 말고 꽉 있으라고 낙상허문 큰일난다고 전화를 해. 나 죽을라그문 기계(산소호흡기) 꼽지 말고 죽으라고 냅둬라 유언했어.”

 ‘구식사람’ 심계순은 모상근과 혼인하던 열여섯 살 그 날 올린 낭자머리로 아흔 살 된 이날까지 평생을 살았다. 숱이 빠져 성긴 머리에 걸친 비녀는 끝이 반들반들 닳았다.

 “장에서 샀어. 및 십 년 되았어. 인자는 장에 비녀 없어. 나는 빠마 한번도 안해 봤어. 하고자운 적이 없어. 고흔 옷도 욕심 없어. 나는 암것 생각이 없어. 아들만 집중허고 살았제. 그런께 넘의 새끼들도 뻘로 안 보요. 이녁 새끼를 생각허문 모다 안씨롭고 거석허제.”

 머릿속에 가득 담은 것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아들 하나였다.

 “조깨라도 높은 디 올라서문 시방도 만날 축수허요. ‘하느님네 천신만신 믿은 과수떡인께 아들미느리손지 잘 살게 해주씨요. 나 간 뒤라도 복산떡 고상허고 살더니 아들손지 좋게 산다고 그 말 듣게 해주씨요’ 그러고 축수해.”
“호무 차고 낫 차고 쪼끄리고 앙거서 밥묵는다”는 말을 듣던 복산떡. 한번 내 것이 된 인연은 물건이든 사람이든 끝의 끝까지 지키는 할매의 손.

 자신에게도 자신이 사는 집에도 더 이상 보탤 것 없노라는 할매.

 “그러께인가 눈이 와서 저짝이 어그라져서 고찼어. 아들이 새로 지슬라근디 못 짓게 했어. 내한테는 요 집이 딱 맞어. 사람이 쫄아든께 토방이 높아뵈여도 댕애버릇해서 괜찮애. 요 집도 나맨치나 오래 잘 버퉜소.”

 풍상 속에도 잘 버텨온 집처럼 시방도 씩씩한 할매.

 “혼자 살아나온 곤조가 있어. 구식 망구가 꼿꼿해. 나 곡괭이여라. 이녁 숭 몰라서는 못써.”

 맘속에 세운 꼿꼿한 곡괭이가 냉혹하고 무자비한 외력에 맞서서 생애를 버텨나온 심계순의 내력(內力)이었을 터.

 **심계순 할머니의 고요한 일상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 주소지를 밝히지 않습니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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