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미술관’으로 싸목싸목

 이토록 지척이라니! 삼사 분이면 그곳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배를 기다리는 동안 그곳은 도리없이 저만치 먼 섬.

 아침 배로 나가 장봐 온 보따리 보따리 늘어놓고 맞바래기 섬을 향해 앉은 어매의 뒷모습엔 익숙한 기다림이 서려있다.

 바다를 건너가는 그 짧은 뱃길이 그곳을 여전히 ‘섬’이게 하고 있는 연홍도(고흥 금산면).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건너서 닿는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탄다. 고흥의 끝자락 거금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거금도와 완도 금당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섬의 지형이 말(馬) 같이 생겼다 하여 오래 전엔 마도로 불렸다. 발음을 세게 하면 ‘맛또’. 1928년에 연홍도라는 이름으로 바꿨다는데 지금도 이 섬 안팎의 연세 솔찬하신 어르신들 중엔 옛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연홍도의 ‘연’자는 넓은 바다위에 떠 있는 연과 같다 하여 ‘鳶洪島’로 쓰다가, 거금도와 맥이 이어졌다고 하여 ‘連洪島’로 고쳐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연홍도에 닿자마자 예고편처럼 맞닥뜨린다. 뿔소라와 ‘연홍아 놀자’ 조형물.
 
▲골목길 바닷길 따라 볼거리 이야기거리

 섬에 내리자마자 맞닥뜨린다. 거대한 뿔소라 두 개, 그리고 그 뒤로 자전거를 타고, 바람개비를 돌리고,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 뛰어가는 개…. 철따라 날씨따라 물때따라 변화무쌍한 하늘과 바다와 갯벌이 배경이다. 방파제 위에 설치된 ‘연홍아 놀자’란 조형물이다. 앞으로 펼쳐질 풍경들의 예고편이랄까.

 연홍도는 고흥이 내건 ‘지붕 없는 미술관’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 섬.

 섬 안쪽에 연홍미술관을 품은 지 십수 해이며 2015년 전남도의 브랜드시책사업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된 이래 골목길이며 바닷길이며 섬 곳곳이 벽그림과 조형물들 로 채워져 걸음걸음 이야기를 건넨다.

 파랑 지붕 빨강 지붕이 잇달아 이어지는 골목. 저 건너 거금도가 고향인 그 유명한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레슬링 모습도 담벼락에서 만날 수 있다. 프로레슬링이 최고 인기종목이었던 1960∼70년대 흑백텔레비전 속 김일 선수의 박치기 한 방은 <춘향전>의 “암행어사 출두요∼”에 버금가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줬었다.
푸르고 빨간 색색 지붕 한데 어우러진 동네 풍경.

 마을 주민들 누구나 해설사를 자청한다.

 “김일 선수가 청와대에 초청받아 갔을 때 박정희가 뭣이 제일 소원이냐 물은께 나는 우리 고향에 불을 밝혀주는 것이 소원이요 해갖고 거금도에 불이 들어왔다요.”

 골목에서 만난 김이철(61)씨의 해설 한 대목. 덕분에 거금도가 전국 어느 섬보다 빨리 전기가 들어온(1968년이다) 섬이 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낮에는 은행원으로 밤에는 레슬러로 활동했던, 그래서 영화 <반칙왕>의 모델이 되었던 김일 제자 백종호와 노지심의 모습도 옆에 나란히 담겨 있다.

 아버지 고향이 고흥이라는 축구선수 박지성도 골목 어귀에서 맨유 시절 등번호 13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양손에 맞들고 맞는다.

 마을사람들의 사진을 조각보처럼 엮어낸 타일벽화가 붙은 담벼락 앞도 연홍도를 찾은 이들의 발길이 오래 멈추는 자리. ‘연홍사진박물관’이다.

 연홍미술관에 이르는 골목길에도 담벼락 예술은 계속 이어진다. 낡고 오래된 어구라든지 온갖 조개 껍데기처럼 섬에서 흔히 보는 것들로 이룬 작품들이라 더욱 정답다.
마을에서 연홍미술관 이르는 바닷길에 주욱 이어지는 조형물. 바다와 어우러져 또 다른 풍경을 일군다.
 
▲‘아르끝’과 ‘좀바끝’ 둘레길 느릿하게 걷기

 해안선 길이가 4킬로 남짓인 작은 섬 연홍도. ‘김섬’으로 이름을 떨치며 북적였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60여 집에 100명 못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맘때는 마늘 심는 철.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밭들마다 어매들이 동그마니 엎져 있다.

 막 걷어올린 멸치들을 부산나게 삶아 후두두두 허치는 손길 따라 푸른 바다 앞에 은빛 물결이 보태지고, 쏨뱅이며 전어며 농어며 능성어 같은 고기들을 잡아 싣고 오는 배들로 선창은 자주 소란해진다.

 ‘ㄱ’자 혹은 낫 모양으로 생긴 섬에는 둘레길 코스가 3곳 있다. 마을을 둘러보는 ‘담장바닥길’(1160m)과 섬의 서쪽을 돌아 나오는 ‘아르끝 숲길’(1760m), 섬의 북쪽을 걷는 ‘좀바끝 가는길’(940m)이다. ‘아르’는 아래, ‘좀바’는 붉은 생선 쏨뱅이, 지역말로 쫌뱅이를 의미한다고. 좀바끝 둘레길의 끄트머리에 선 팔각정에 오르면 바다 너머 금당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마을 뒤편 언덕에 오르면 가지마다 옹이마다 긴긴 세월얹고 선 팽나무가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알제? 박치기왕 김일!” 마을사람 누구나 해설사를 자청하는 친근한 벽그림이다.

 <나는 나이가 300살이 넘은 늙은 나무입니다. 숲속에 있는 나무들은 키가 크지만, 나처럼 언덕에 혼자 서 있는 나무는 온몸으로 바람을 맞느라 마음껏 키를 세우지 못하고 웅크려서 옆으로만 자랐습니다. 온 몸에 난 옹이들은 내가 앓았던 병의 흔적들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어렵고 힘든 일이 나무라고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꿋꿋이 버티고 이겨냈으니 영광의 상처인 셈이지요.…나는 얼마나 이곳을 지킬 수가 있을까요.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고,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려 합니다.>(‘팽나무가 전하는 말’ 표지판 중)

 언덕에 혼자 선 팽나무처럼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한생애를 버텨오고 일구어온 이들의 삶이 그 먼 옛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집에도 골목길에도 바닷길에도 숨쉬고 있으려니.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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