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앞마당이었겠다. 연홍초등학교. 이 시가 쓰여질 때만 해도 학교는 재재거리는 아이들도 이른 작별 앞에 막막한 아이들도 품고 있었을 터.
50년 역사를 뒤로하고 학교는 1998년 폐교됐다. 아이들 떠나간 뒤 깊은 침묵에 들었던 학교를 다시 깨워 사람들 소리와 온기로 채운 것은 연홍미술관. 2006년 문 열었다. 어깨며 치맛자락이며 펼쳐진 책에 어지간히 시간이 내려쌓인 책 읽는 소녀상이며 바다를 마주하고 선 이순신 장군 동상이 이곳이 학교였노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연홍미술관에 이르는 길은 두 갈래. 마을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가거나,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걷거나. 길목에 선 물고기 모양의 표지판들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골목길이든 바닷길이든 화살표처럼 이어지는 작품들을 따라가노라면 그곳에 닿는다. 저절로 발걸음 옮겨지는 길이다. 자연스런 맥락처럼 그 끄트머리에 미술관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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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따라 담벼락에 볼거리들이 주욱 이어진다. 연홍도에서 나는 온갖 조개들이며 부표나 로프, 노, 폐목 같은 낡고 버려진 어구들로 만든 조형물에선 뚜덕뚜덕한 손맛 느껴진다. 소박하고 정답다. 무어든 바다에서 난 것들이나 섬생활과 맞닿은 재료들을 활용해 이곳이 섬임을 새삼 일깨운다.
“섬에 흔하게 널려 있는 것들, 곁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재발견하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어요. 낡은 것들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다가드는 경험도 안겨주고 싶었고요. 처음엔 ‘왜 쓰레기들을 갖다 걸어놨어?’ 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이제는 작품으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연홍도를 찾는 이들도 그 담벼락 작품들을 재밌어 하고요. 오래된 배의 노나 부표 같은 그런 주변적 물건들이 미술이 된다는 걸 알고 이제 마을 분들이 ‘쓰겄다’ 싶은 것들은 미술관 마당으로 휘익 던져놓고 가셔요. 그 역시 마음의 표현이죠. 같이 작업해 가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콜라보랄까. 마을 분들이 오브제를 마련해 주시는 거죠.” 연홍미술관 선호남 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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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에 없는 아이들을 대신해 담벼락속 아이들이 예전 이 골목을 왁자하게 했을 섬아이들을 떠올린다. 펑 튀는 튀밥 소리에 화들짝 귀를 막기도 하고, 딱지치기, 말뚝박기 같은 놀이도 하고.
골목길 담벼락이 무표정하지 않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에서 나는 것들과 버려진 것들로 쓰잘데기 있는 볼것들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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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뿐 아니라 바닷길에서도 굴렁쇠 굴리는 아이며 자전거 타는 아이며 바다 너머 저 먼곳을 바라보는 아이며 걸음걸음 만날 수 있다. 자연이 이룬 거대한 작품, 완도 금당도의 기암절벽도 눈앞에 펼쳐진다. 금당8경의 하나인 병풍바위가 맞바라보인다. 바닷물이 들고 날 때마다 모양새가 달리 보이는 ‘은빛 물고기’도 미술관 앞바다에서 만난다. 단순간결한 선으로 이룬 물고기는 물때따라 변화무쌍하게 바다와 어우러진다. 프랑스 설치미술가 실뱅 페리에가 작업한 수상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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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미술관의 10월 전시는 이숙희 작가의 ‘상점일기’. “이 낱낱의 일기장에 새겨진 것들은 나로 살아가는 날들의 집합이며 모든 오늘에게 바치는 경배의 목록”이란 작가의 말처럼 시 같고 낙서 같고 일기 같은 문구들이 그림과 어우러져 나날의 일상처럼 채곡채곡 쌓인 채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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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관람은 무료. 쉼터 어우러진 미술관 앞마당도 바다를 오래 마주할 수 있는 처소가 되어준다.
글=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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