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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qib Hasan Apu-Animator and World Commentator<1>
애니메이터, 세계 해설사 라킵 핫산 아푸<1>
기사 게재일 : 2017-12-27 06:05:01
▲ Raqib Hasan Apu.
 “Please, have a seat,” Raqib politely offers, a boyish charm instantly perceivable. I can’t put an age on him; he could be anywhere from his early twenties to his late thirties.

 “Thanks.” I sit down and join Raqib Hasan Apu from Dhaka, Bangladesh in a local public house. “Actually, I was sitting at the bar over there.”

 “Ah,” he chuckles easily at our crossed signals. “I sat down here without checking there.”

 “Right. Well, great to see you again.” I’d met Raqib socially a few times over the last six months, but this is the first time we’ve sat down together and chatted at length one-on-one. I had jumped at the chance to interview him, as I love all things Indian, having lived there for over a year during three separate visits. Of course, Raqib is not Indian, but I knew Bangladesh’s identity had been intertwined with India’s for a long time. And I had wanted to know more.

 Normally, before I interview someone, I do extensive research, depending on the subject and how familiar I am with their background, up to four or five hours. Before this interview, however, I purposely did not do any research, wanting to try a new approach that I thought might be more free-flowing and organic.

 “So,” I begin, “let’s start with Bangladesh. What is the population there, about 10 or 15 million, right?”

 I feel like an idiot.

 Raqib looks at me, wearing his black frame glasses, bushy, thick, jet-black curls piled on top of his head, and absolutely nonjudgmentally responds, “Yeah. About 160 million.”

 “Wow. I had no idea. That must put Bangladesh at about the fifth or sixth most populous country in the world.”

 “It’s eighth.”

 Phew. I feel a bit better now, having been at least in the ballpark on that one.

 “Your family name, Apu, is it Indian?”

 “Yes. It’s Bengali.” Raqib proceeds to tell me the story of Bangladesh and how its sometimes tragic fate has been interwoven with that of Pakistan and India over the last 70 years. When India and Pakistan became separate countries in 1947, western Bengal remained part of Hindu India, and eastern Bengal became part of East Pakistan, a Muslim majority country. Bangladesh then fought for and gained independence in 1971, following a genocide [which was perpetrated by Punjabi-dominated West Pakistan, and was an ethnic cleansing of Bengalis ending with some 3,000,000 deaths].

 “And your first and middle names?”

 “They are Arabic.” His family, along with 91 percent of Bangladesh, is Muslim. Four generations ago, his family was Hindu. He describes himself as atheist.

 “And can I ask you about the historic floods? This is what I remember in my general knowledge of Bangladesh.”

 “Sure. There were two major ones, in 1988 and 1998. These affected tens of millions of people. I remember the second one well, as I was a teenager then. I’m 33 now.”

 “And what was your family like?”

 “We lived in Dhaka. My father owned a transport business of trucks and passenger buses. My mother was a housewife raising two kids. We grew up middle middle-class, you know? There are so many levels of middle class there.”

 “Like in India, yes?”


 “Public schools?”

 “Yes, public schools.”

 I knew that Raqib worked in animation, and saw many of his caricatures and comics on his Facebook wall. “Have you always loved drawing?”

 “Yes, in middle school I actually loved drawing realistic human figures. A bit stylistically. I loved reading Marvel and DC comics like Asterix. Spiderman was my favorite, actually.”

 “And did you have lots of art classes in school? Did your parents actively support your interest in art?”

 “No, I did not have many classes in school. No art teacher that inspired me. I remember my high school art teacher showed us how to draw a mango,” he laughs good-naturedly. “I wasn’t really interested in that.”

 “And your parents?”

 “Well, my parents never said ‘don’t do art,’ but they never encouraged me either. Actually, at about 17, we had a family fight, involving not only my parents but also my aunts and uncles who lived very nearby, when I announced that I wanted to pursue art in university, like figure drawing and painting. We argued about money and lack of jobs in art and some religious issues. In the end, I went to a prestigious university in Dhaka and majored in art and sculpture. So the prestige helped calm things down with my parents. Also, I began actually earning money during university, so that eased tensions with my parents, too.”

 “Oh, how did you earn money?”

 “Well, a new animation studio opened near the university, so I applied for a job, and got hired and began earning money while also going to school.”

Written by Douglas Baumwoll

Photographs courtesy of Raqib Hasan Apu

 The Author

 Doug Baumwoll, a professional writer and editor for 25 years, trains in-service teachers in writing skills and methodology. His personal writing interests include visionary and speculative fiction, climate change, energy, and social justice. He is the founder of SavetheHumanz.com.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December 2017 issue.

 Gwangju News is the first public English monthly magazine in Korea, first published in 2001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Each monthly issue covers local and regional issues, with a focus on the stories and activities of the international residents and communities. Read our magazine online at: www.gwangjunewsgic.com

-<원문 해석>-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는 라킵 씨에게서 즉각적으로 소년 같은 매력이 느껴졌다.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일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동네의 한 선술집에서 나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온 라킵 핫산 아푸 씨와 동석했다. “실은 저 쪽에 쭉 앉아 있었습니다.”

 “아,” 그는 서로 어긋난 신호에 낄낄거리고 웃으며 “여기 앉으며 그쪽은 확인을 못했네요”라고 말한다.

 “그렇군요.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지난 반년동안 라킵 씨를 사교적으로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마주앉아 서로 마주보고 긴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 인도 문화를 좋아해 인도를 3차례 방문하며 총 1년 이상을 머물렀던 나는 그를 인터뷰 할 기회가 생기자 덥석 바로 물었다. 물론 라킵 씨는 인도 사람은 아니지만 방글라데시의 정체성은 오랜 기간 인도와 얽혀온 것을 알기에 더 알고 싶어졌다.

 보통 인터뷰 전에 인터뷰 주제나 그와 관련한 배경지식에 따라 4~5시간 정도 폭넓게 조사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인터뷰를 위해 새로운 접근방법을 시도해보고자 일부러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럼”이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방글라데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죠. 거기 인구가 어느 정도죠? 1000만 혹은 1500만 명 정도죠?”

 검정 테 안경을 쓰고 숱이 많고 두껍고 새까만 곱슬머리를 한 라킵 씨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1억 6천만 명 정도 되죠.”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와. 전혀 몰랐어요. 그 정도면 방글라데시가 인구수로 전 세계에서 5위나 6위정도 되겠네요.”


 휴. 적어도 이번엔 대강이라도 맞아 다행이었다.

 “당신의 성(性) 아푸는 인도어인가요?”

 “네, 벵골어에요.” 라킵 씨는 계속해서 방글라데시와 때때로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이 지난 70년 동안 파키스탄, 인도의 운명과 어떻게 엮어졌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었을 때 서벵골 지역은 힌두교 인도에 속하고, 동벵골 지역은 이슬람교를 가장 많이 믿는 파키스탄의 동파키스탄의 일부가 된다. 펀자브인이 우위에 있는 서파키스탄이 자행한(약 300만 명의 벵골인들이 인종 청소가 됨) 대량학살 후 1971년 방글라데시는 투쟁을 통해 독립하게 된다.

 “그냥 이름과 가운데 이름은요?”

 “아랍어에요.” 그의 가족을 포함한 91퍼센트의 방글라데시인은 이슬람교도이다. 4세대 이전에 그의 가족은 힌두교도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말한다.

 “방글라데시에서의 역사에 남을 홍수에 관해 물어봐도 될까요? 그게 제가 방글라데시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는 거라서요.”

 “물론이죠. 큰 홍수는 1988년, 1998년에 두 번 있었어요. 이 홍수로 인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피해를 받았죠. 저는 두 번째 홍수 당시 10대였기 때문에 그때 상황을 잘 기억해요. 지금은 33살이고요.”


 “우리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살았어요. 아버지께서는 트럭과 버스 관련 운송 사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셨죠. 우리는 중중상층였는데 혹시 아세요? 방글라데시에는 중상층 안에도 여러 계층으로 나눠져요.”

 “인도처럼 말이죠?”


 “공립학교를 다녔나요?”

 “네, 공립학교를 나왔어요.”

 나는 라킵 씨가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는 것을 알았고 그의 페이스북에서 본인이 그린 캐리커처나 만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걸 항상 좋아했나요?”

 “네. 실은 중학교에 다닐 땐 실제 인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조금은 스타일 있게 말이죠. 아스테릭스(프랑스의 유명 만화 시리즈)처럼 (미국의) 마블과 디씨 코믹스 만화를 읽는 걸 좋아했는데 실은 제가 가장 좋아한 건 스파이더맨이었죠.”

 “그럼 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많이 수강했나요? 부모님께서 미술에 관심이 있는 라킵 씨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나요?”

 “아니요. 학교에서 많은 수업을 듣지 않았어요. 제게 영감을 준 미술 선생님은 없었죠. 제가 기억하기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은 저희에게 망고 그리는 법을 알려줬죠.”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한다. “전 정말 거기엔 관심이 없었죠.”


 “글쎄요. 부모님께서는 결코 ‘예술을 하지 마라’고는 말한 적도 없지만 격려해주신 적도 없으세요. 실은 17살 즈음 제가 대학에서 인물화나 작화 같은 예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물론 가까이 살던 삼촌, 고모(이모) 등 가족이 다툰 적이 있어요. 돈 문제, 취업의 어려움, 종교적인 문제 같은 것들로 다퉜어요. 결국 저는 다카의 한 명문대에 들어가 미술과 조각을 전공했고 명문대라는 간판 때문에 부모님은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게 된 거죠. 게다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돈도 벌면서 부모님의 불안은 많이 누그러졌죠.”

 “돈은 어떻게 번 거죠?”

 “그게, 대학 근처에 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생겨서 거기서 일하려 지원했고, 뽑혀서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죠.”
<다음호에 계속>
글쓴이=더글라스 바움월

사진제공=라킵 핫싼 아푸

번역=윤영호 (광주국제교류센터 간사)

 더그 바움월은 25년 경력의 전문 작가이자 편집자로 현직 교사들에게 글쓰기와 교육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공상소설, 사변소설, 기후변화, 에너지, 사회정의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는 ‘SavetheHumanz.com’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글은 광주뉴스 2017년 1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광주뉴스는 광주국제교류센터가 2001년부터 매달 발간하고 있는 한국 최초로 발간된 공식 영문 월간잡지이다. 매달 지역민과 지역의 이야기를 다뤄오고 있으며 특히 지역거주 외국인과 커뮤니티의 활동과 모습을 담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잡지를 볼 수 있다.
Raqib Self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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