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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mitment to Listen, Act, and Make Impacts on Human Rights Issues: An Interview with Peggy Hicks Part 2
인권 문제들에 대해 열심히, 듣고, 행동하고, 영향을 미치기: 페기 힉스와의 인터뷰 2편
나디아 하나베르에사
기사 게재일 : 2020-03-11 06:05:02
▲ 지난해 9월30일부터10월2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여한 페기 힉스.
 GN: I heard that you have been to Bosnia. What was your favorite experience working there?

 Peggy: I worked in Bosnia at the end of the Bosnian War, so I was there when the peace agreement was concluded and lived there for another three years following the war. I guess the most significant thing was being there when the war ended because it was the moment when I had worked on all of the human rights abuses that happened during the war. At that time, I saw the potential for peace and for things to get better, but of course they actually did not. A peace agreement was signed, but it did not change things on the ground for people in the fight itself. Many people were imprisoned, many had committed war crimes, and many had lost limbs, families, or jobs. Following the war, there was plenty of human rights work to do, and it was an amazing experience. I learned a huge amount and was able to work with incredible people - both from Bosnia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 learned was that there is a set of limitations surrounding what you can do as an international peacekeeper. So much of it comes down to how the local people and the government want to move things forward.

 GN: What did you do exactly in order to help them?

 Peggy: That is an interesting story. I got the job originally about three years after the conflict began. The UN at that time did not have the human rights part of its peacekeeping mission, meaning, it did not exist yet. It had what it called “Civil Affairs,” but it did not have human rights specialists. In 1995, the UN decided that it wanted to create a human rights group with three people in it. Luckily, I got a phone call asking if I was interested in working there and wanted to be a human rights specialist with the UN. One of the most interesting things for me was how quickly it moved from that small team to being a part of UN missions everywhere. I started in an office in Bosnia, but I was soon moved to Croatia, which was where the headquarters was while the war was going on. When I moved to Sarajevo, Bosnia, the UN created the office of high representative, which was a whole new national organization for Bosnia. In that organization, I ended up heading the whole human rights component, which was the key part of the mission. I moved very quickly from a small unit to being a big part of the world peacekeeping effort.

 GN: It is very interesting how you became one of the key people who started the human rights division at the UN. Is this your first time to the forum in Gwangju?

 Peggy: It is not only my first time in Gwangju, but it is also my first time in Korea. I feel like I have not traveled nearly enough because I should have come here sooner. I really enjoy being here.

 GN: What do you think of how Gwangju and its citizens has addressed human rights?

 Peggy: I find it really interesting. It makes sense that the reason Gwangju is so committed to human rights is because of its history. Now as it grows, it is not somebody else telling them that now is the time to be interested in human rights. The people here feel a real connection with human rights because of the Gwangju Uprising. It is a part of their history and a part of their lives, and now they are looking at how they can take that experience and use it not just in Gwangju. The great thing about this meeting is learning how the experiences of this city can help inspire and inform how other cities handle human rights.

 GN: How do you think the Korean youth should be involved in improving human rights in Gwangju?

 Peggy: I think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for the youth is to make sure that they stay informed and engaged. I think sometimes adults make it hard for the youth to feel like they are being heard, and it can be frustrating because if you do not feel like you are listened to, then it is easy to just sort of give up and step back. I think when you are not listened to, it instead becomes a time for you to step forward. I think we are at a place where the youth have so much at stake, and we see that with the climate movement, where the youth said, “Wait a minute, you won’t be here to see many of the consequences, but we will.” I hope that the youth of Gwangju will be part of not just that movement, but the movement for human rights generally.
2019년 광주세계인권도시포럼 개막식.

 GN: Regarding that, what do you think Korean society needs to do to make that happen?

 Peggy: I was speaking with one of the conference experts earlier, and one of the things she talked about was how we often think about civil and political rights. Of course, the uprising was very much about having a political voice and being able to have a democracy that represents people; however, I think with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it should be recognized that political rights and civil rights need to go hand in hand with economic and social rights. In addition, we have to spend the same amount of energy defending people’s right to a job, an education, and to health care. If we do not, and we allow inequality in those systems, then we are creating the conditions that will then lead to denials of civil and political rights. It is so interconnected, and I think that is one of the things we need to learn and appreciate more.

 GN: Last question: What is the best insight you have gotten from working with human rights issues that all of us need to know?

 Peggy: My most important insight is that you learn more by listening than by talking. Too many conversations start with people having preconceived ideas of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 If we are going to be able to build a better world, we have to be able to listen to each other and understand even the perspectives we disagree with. We have to figure out how to do that better going forward.
Written by Nadya Hanaveriesa
Photographs by World Human Rights Cities Forum Secretariat

The Author
Nadya Hanaveriesa is a psychology student from Indonesia who enjoys war history and is currently studying at Chonnam National University. If she could go back in time to experience war, she would want to do it as a war journalist. This article is her first attempt at practicing journalism.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Gwangju News November 2019 issue.
Gwangju News is the first public English monthly magazine in Korea, first published in 2001 by Gwangju International Center. Each monthly issue covers local and regional issues, with a focus on the stories and activities of the international residents and communities. Read our magazine online at: www.gwangjunewsgic.com

-<원문 해석>-
2019년 광주세계인권도시포럼 전체회의 기념사진.

 광주뉴스: 보스니아에 가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요?

 페기: 저는 보스와나 전쟁의 끝 무렵에 보스와나에서 근무하였어요. 그래서 평화 협정이 결정됐을 때 그 자리에 있었고, 전쟁이 끝난 후 그곳에서 3년을 더 거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이 끝났을 때 거기에 있었다는 것인데요, 전쟁 중 일어났던 모든 인권 침해에 대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평화와 더 좋아질 상황에 대한 잠재력을 보았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어요. 평화 협정은 맺어졌지만, 전쟁 그 자체에 있던 국민들의 입장에선 달라지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많은 이들이 신체의 일부를, 가족을, 직장을 잃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인권과 관련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저에게는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배웠고 보스니아와 국제 커뮤니티의 훌륭한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적인 평화지킴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둘러싼 한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한계들은 지역 사람들과 정부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지에 따라 결정되죠.

 광주뉴스: 그들을 돕기 위해 정확히 무엇을 하셨나요?

 페기: 이게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깁니다. 제가 이 일을 맡은 것은 갈등이 시작된지 3년 정도가 되었을 때였어요. 당시에 유엔의(UN) 평화 유지 활동에 인권은 포함되지 않았어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민사 사건”이라는 것은 있었지만, 거기에 인권 전문가들은 없었어요. 1995년에, 유엔(UN)은 3명으로 구성된 인권 그룹을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운 좋게도, 그 그룹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고, 유엔(UN)의 인권 전문가가 되고 싶냐는 제의 전화를 받았어요. 저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작은 팀에서 세계 곳곳에 위치한 유엔(UN) 임무의 일부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옮겨갔나에요. 저는 보스니아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했지만 곧 크로아티아로 옮겨졌어요. 전쟁 중 본부가 있었던 곳이죠. 제가 보스와나의 사라예보로 옮겼을 때, 유엔(UN)은 보스니아의 새로운 국가가관이었던 고위 대표 사무국을 만들었어요. 저는 그 단체의 핵심임무였던 인권 부서를 총괄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주 삐른 시간에 작은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것에서 세계 펑화 유지에 있어서 큰 영향을 행사하게 되었지요.

 광주뉴스: 페기씨가 유엔(UN)의 인권국을 시작한 핵심 인물이 되어간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광주의 인권 포럼은 처음이신가요?

 페기: 광주에만 처음 온 것이 아니라, 한국 방문도 처음입니다. 한국을 너무 늦게 찾은 것 같아 아직 여행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광주뉴스: 광주와 광주 시민들은 인권을 어떻게 다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페기: 정말 흥미로운 점을 찾았어요. 광주가 인권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이유는 그 역사 때문이라는게 일리있어요. 이제 인권에 관심이 커져가는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을 해서 그러는 것 같지 않아요. 이곳의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운동 때문에 인권과 직접적인 연관을 느낍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광주 시민들의 역사의 일부분이자 그들의 삶이고, 광주 시민들은 그 경험들을 얻어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어요. 광주에 국한되지 않게 말이에요. 이 포럼의 정말 좋은 점은 이 도시의 경험이 다른 도시들이 인권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알려주고 북돋아 주는 걸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에요.

 광주뉴스: 한국의 청년들은 광주에서 인권 발전에 어떻게 참여해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페기: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알고자 하고 그리고 참여하려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가끔 어른들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들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 같아요. 아무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은 정말 답답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한 발 물러서기 쉽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무도 나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을 때, 오히려 한 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청년들이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기후 운동을 보면, 청년들은 “잠깐만요, 당신들은 이 결과들을 많이 보지 않겠지만 우린 보죠.”라고 말을 했어요. 저는 광주의 청년들이 그런 운동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인권 운동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2019년 광주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여한 페기 힉스(오른쪽)와.

 광주뉴스: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자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한국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페기: 아까 컴퍼런스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그분이 하셨던 말 중 하나는 우리가 시민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어요. 물론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정치적 목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표하는 민주주의를 가지는 것에 대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와 동시에, 시민 및 정치적 권리는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우리는 직업, 교육, 그리고 보건 의료를 보장 받을 인권을 지키는 데에 똑같은 양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는다면, 만약 이 시스템 속에 불평등을 허락한다면, 우리는 시민 및 정치적 권리를 부정하는 환경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단히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저는 이것이 우리가 정말 배우고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뉴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인권 문제를 다루시면서 얻게 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가장 좋은 통찰력은 무엇인가요?

 페기: 저에게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말하는 것보다 들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에요. 너무나 많은 대화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채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관점도 이해를 해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런걸 어떻게 더 잘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글=나디아 하나베르에사
사진=세계인권도시포럼 사무국
번역=이윤이 (광주국제교류센터 자원활동가)

작가
나디아 하나베르에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심리학 전공 학생으로, 전쟁 역사를 좋아하고 현재 전남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녀가 시간 여행을 해서 전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전쟁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 기사는 그녀의 첫 저널리즘 시도입니다.

*이 글은 광주뉴스 2019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광주뉴스는 광주국제교류센터가 2001년에 처음 발행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문 대중월간지입니다. 매월 발행되는 각 호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지역사회의 이야기, 활동에 중점을 둔 지역민과 지역의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잡지를 볼 수 있습니다. (www.gwangjunewsg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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