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닫한 교문을 열며’ 중.
 교육현장을 ‘정치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저의 지난 칼럼(교육 현장에 ‘더 많은’ ‘더 사소한’ 민주주의)을 읽은 어느 지인이 저에게 반문했습니다. “얼마 전,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교장이 훈화 시간에 ‘탄핵이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진행됐다’고 주장했다가 학생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반박을 당한 일을 기억하는가? 그처럼 학교 현장에서 개인의 편향된 정치적 주장들이 난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갑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전교조의 다양한 시국선언이나 관련 계기수업에 대해서 ‘정치편향교육’이라고 공격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두 교육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릅니까? 더 나아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치적 중립 의무? 침묵의 의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무엇보다도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차근히 살펴봅시다. ‘헌법’ 제31조에는 ‘교육의 자주성 · 전문성 ·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위 법률, ‘교육기본법’ 제6조 1항에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이러한 법에 따라 실제로 교육현장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발언들이 제지당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2010년 전교조 간부들이 청와대 앞에서 ‘6월 민주항쟁의 소중한 가치가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시국선언을 했다가 교육부로부터 ‘정치적 중립의 의무 위반’ 혐의로 검찰 고발을 당하고, 결국 ‘법을 위반했다’는 법원을 판결을 받기도 했고요.(2009고단4126판결 등)

 또 2014년 9월에 ‘세월호 특별법 공동 수업’을 진행하려 할 때, “세월호 특별법 제정 관련 공동수업 및 1인 시위 등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고 가치 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며 계기교육을 단속하고 교육을 진행한 교사들을 징계하기도 했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정치현안에 대해 침묵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런 현장의 분위기는 ‘정치 판단력 미성숙’과 ‘고3 면학 분위기’ 저해를 들먹이며 ‘18세 선거권 연령 조정’을 반대하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쯤되면 ‘정치적 중립의 의무’라 쓰고, ‘정치적 침묵의 의무’로 읽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실제 법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눈여겨봐야 할 점은, 교육은 ‘본래의 목적’을 추구해야하며, 특정 정치적 편견을 전파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의 본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개인의 차원에서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인격체로 자라나는 것이며,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자율을 바탕으로 공동의 일을 형성해내는 시민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 두 차원은 한 인간에 공속하는 것으로서 헌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권자’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헌법정신은 ‘공공성을 향한 균형과 조율’

 그리고 교육이 특정 편견을 위한 ‘방편’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정치적 중립이란 고립된 개인들의 ‘침묵’과 ‘외면’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이루는 ‘균형’과 ‘조율’이라는 점입니다. 무엇이 모두를 위한 것인지 ‘공공성’을 함께 고민하고 그것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스스로 균형을 잡고 다른 의견들과 조율하는 과정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정해져 있는 중립이란 허구이며, 실상은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의 균형과 조율만이 가능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나와 있는 ‘정치적 중립’을 ‘공공성을 향한 균형과 조율’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는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고 의무를 감당할 수 있는 시민이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교육의 목적을 위해 현실의 여러 정치적 요소를 교육 내용과 형식으로 적절하게 구성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지니는 교육자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짓눌려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국가를 향해서 정치적 시민권을 요구하고, 또 참된 정치·시민교육을 위해 스스로 교육 내용과 방법을 구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현장의 교사들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실제로 ‘정치적 침묵’을 강요당해왔습니다. 과거의 위정자들은, 공동체가 교육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교육현장에서 교사, 학생 가릴 것 없이 ‘정치적 무능력’이 재생산되길 바랐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학생들에게 투표용지를 쥐어주지 않는 것(만19세 선거권)과 교사에게 정치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는 것(정치적 중립의 의무)은 동전의 앞뒤처럼 마주한 지난 시대의 적폐에 불과합니다. 이런 적폐들을 태우기 위해 광장의 촛불을 쉬이 꺼트리지 않고 현장으로 옮겨 붙여야겠습니다.

추교준



추교준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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