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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또 갚지 못할 빚이 생겼습니다.
카메라로 세상 비춘 고 박종필 감독을 기억하며
도연
기사 게재일 : 2017-08-09 06:00:00
▲ 고 박종필 감독.
 # 1. 9분짜리 비디오테이프
 16년 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뜨거웠던 7월 어느 여름날,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라고 외치며 몇 안 되는 수동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과 대학생들이 외치며 선 곳이 있었습니다.

 “지은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수직형 리프트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이 죽었습니다. 더 이상 목숨 걸고 이동하지 않게 이동권을 보장해야 합니다!”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동안 그렇게 외치고 알리고 싶어서 천막을 설치하려던 사람들. 하지만 시커먼 방패를 든 전투경찰은 그 작은 천막 하나 설치하지 못하도록 무자비하게 진압해왔습니다. 휠체어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있었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버텨보려 휠체어와 휠체어를 연결한 쇠사슬을 붙들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고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밀어내려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가면 데모하지 마라’고 말했던 부모님 말씀을 뒤로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이동권을 보장하라!’라고 소리소리 지르던 저도 있었습니다.

 3박 4일의 `현장활동’으로 여러 `활동가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 알았던 그 활동 중 하루가 서울시청 앞 이동권연대 천막농성 투쟁 현장이었습니다.

 `어디 가냐?’고 묻는 부모님께 얼버무리듯 대답하고 올라온 서울, 난생 처음 참여해본 `데모’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마음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했지만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정리가 안 되던 그 때, 선배 중 한 사람이 비디오테이프를 제게 건냈습니다. 시청 앞 천막농성을 찍은, 아무런 편집도 되지 않은 그저 구호를 외치고 진압해 들어오는 전투경찰과 저항하며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 나 여기 갔다왔어. 이게 옳은 일인 것 같아.
 하지 말라는 데모질을 해서 부모님께 한 소리 들을 것 같았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그냥 아빠와 함께 그 9분짜리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무뚝뚝하게 한 마디 했습니다.
 처음으로 박종필 감독님의 카메라에 빚을 진 순간이었습니다.
 
 # 2. `끝없는 싸움 에바다’, 덕분에 끝날 수 있지 않았을까?
 에바다, 청각장애인이 생활하던 농아원과 농아학교 그리고 직업재활시설 등을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의 이름이었습니다. 1996년 겨울 에바다 농아원에서 생활하던 청각장애인들이 농성을 시작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때 전국으로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도가니’와 같은 청각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 있었던 곳입니다.

 전국적으로 그 실상이 보도되고 알려질 만큼 알려졌지만 지역의 토호 세력이었던 비리재단 관계자들은 끈질기게 버티며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었지만 에바다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끝없는 싸움 에바다’는 수년 동안의 에바다 투쟁을 카메라에 담아 만들어진 작품이었습니다. 평택과 멀리 떨어진 광주에서 에바다 문제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평택까지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은 에바다 투쟁을 묵묵히 담아낸 `끝없는 싸움 에바다’ 덕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세기를 넘겨 계속된 `에바다 투쟁’은 투쟁 7년만인 2003년 비리 이사 전원을 몰아내고 민주적 이사진으로 교체하며 멋지게 승리했습니다.
 
 # 3. 투쟁 현장, 소외된 이들의 일상 담아
 그런데 그렇게 쉼 없이 투쟁의 현장과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담아내던 영상 활동가 박종필 감독님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안타깝다’는 느낌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내가 처음으로 들고 갔던 그 9분짜리 비디오테이프를 찍은 사람이 박종필 감독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끝없는 싸움 에바다’나 `노들바람’ 등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영상기록이 모두 박 감독님의 어깨 위에 얹힌 카메라에 담겨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세삼 깨닫고는 뒤늦게 가슴 한 편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7월28일, 박 감독님이 떠나고 꼭 11일이 지난 8월 9일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 감독님이 살아 있을 때 짧은 영상들을 모아 어서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모으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9분짜리 영상 덕분에 10년 넘게 활동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그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만 망설이다 끝내 못했습니다.

 전하지 못한 고마움이 빚이 된 느낌입니다. 더욱 진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활동해야 할 이유가 더해졌습니다.
 
 `박종필 감독 영화 돌아보기’라고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고인이 남긴 작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빈민과 장애인의 곁에서 카메라로 세상을 비췄던 고인의 소중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읽으실 여러분이 한번은 꼭 작품들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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