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충장 축제 뒷이야기

▲ 14회 충장축제.
#1-뭐라카노!

 겨우 일행을 만나 충장축제 개막식 무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무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서 개막식을 봐야 했습니다. 5·18 전야제가 있었던 커다란 스크린이 있는 무대에서 충장축제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듀엣으로 부르는 성악가 공연이 있었고 화려한 영상과 함께 충장축제는 개막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시민들이 왔고 시장, 시 의회 의장, 시 의원 여러 명 심지어 다른 구 구청장들까지…. 충장축제가 정말 유명해졌구나 싶었습니다.

 구청장, 시장, 시 의회 의장 인사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수화 통역은 단 한 사람의 인사도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그 넓은 무대 위 스크린 어디에도 문자 통역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의미 없는 무대를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다른 청각장애인 네 분을 만났습니다. 그 네 분도 무대를 등지고 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이유로 무대를 등지고 나가던 길이었겠죠. 개회식이 진행되는 곳을 벗어나 음식 냄새가 나는 곳까지 걸었을 때 또 다른 다섯 분의 청각장애인을 만났습니다. 이 분들은 개회식에 수화통역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일찌감치 개회식 무대가 아닌 주변에 계셨다고 했습니다.
 
#2-환승이 불안해서 세 코스를 걸었어.

 씁쓸한 충장축제 개막식 모니터링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바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 환승이 고민 됐습니다. 환승할 정류장을 떠올리니 사람도 없고 어두컴컴한 정류장이라 좀 걷더라도 지금 탄 버스를 계속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집 근처 대학 정류장에 내렸을 때, 생각과 달리 이 정류장도 가로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환승해서 집으로 가는 정류장 앞까지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사람이 거의 없는 정류장에서 환승할 마음이 안 나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익숙한 길이었고 애플 지도 도움 없이 가로등 불빛을 찾기 힘든 어두운 길을 더듬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두운 밤이라 그랬을까요? 꽤나 멀게 느껴진 집으로 가는 길은 버스 정류장 세 코스였습니다.
 
#3-행사 진행은 전문 MC, 수화 통역은 자원봉사“

 개막식이 끝난 뒤 일정표를 확인하며 ‘보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댄스경연과 패션7090을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댄스경연과 패션7090 모두 진행 과정에 수화통역과 문자통역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댄스경연은 사람들이 많은 탓에 무대에서 먼 곳에 자리해야 했고 출전 팀의 컨셉을 전하는 사회자 진행 멘트는 동행한 청각 장애인들에게 전달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패션7090 사전 공연은 무대 아래에서 진행한 탓에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저 폭죽이 전부 얼말까 싶은 화려한 불꽃으로 수놓은 폐막식을 끝으로 전혀 공감할 수 없던 충장축제가 끝이 났습니다. 충장축제 의사소통 지원과 관련 기사가 실렸고 이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개막식장에서 수화통역까지는 미처 생각 하지 못한 부분”

 - “내년부턴 농아인협회와 연계해 수화통역 자원봉사를 해줄 수 있는 지원 부스를 마련하겠다”

 -개막식·폐막식 등 대규모 행사에 수화통역 전문가를 배치해달라는 제안에 대해선 “별도로 수화통역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장애인단체에 부스를 제공하고 자원봉사를 통해 진행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면서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충장축제 내내 설치된 여러 무대에서 행사를 진행했던 진행자들은 과연 ‘자원봉사’로 섭외했을까요? 만약 개·폐막식 사회를 전문 사회자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진행하자고 결제를 올렸다면 처리가 됐을까요?

 행사 진행 자격시험은 들어본 일이 없지만 수화통역 자격시험은 합격하기 꽤나 어려운 시험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수화통역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거나 원활한 통역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힘든 반응입니다.

 빵빵 터지는 폐막식 불꽃을 보며, “저 불꽃놀이만 안 했어도 수화통역 백 번은 지원했겠네!”하는 불편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진정 모두가 함께하며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원한다면 우선 모두가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부터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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