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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공장 만큼 학교도 위험하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 비극 잇따라
‘촛불청소년인권법’으로 막아내야
추교준
기사 게재일 : 2017-12-06 06:05:01
▲ 산업체파견현장실습중단과청소년노동인권실현대책회의와 현장실습 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한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대책회의>
 또 다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11월19일, 특성화고 현장실습으로 제주도 음료회사에서 일하던 고 이민호 씨가 프레스기에 목이 끼어 사망했습니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노동에 내몰렸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일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 수차례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극입니다.

 이뿐인가요? 언론에 보도된 현장실습 사고 사례들만 모아보더라도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11월16일, 안산 박모 씨, 스티로폼 제조공장 4층 옥상에서 몸을 던져 중상, 11월 17일, 인천 ○모 씨, 육절기(고기 자르는 기계)에 손가락 절단 사고, 2월, 울산 ○모 씨, 전기 관련 업체에서 손가락이 기계에 끼어 부상, 지난 1월, 전주 홍모 씨, LG유플러스 상담사로 업무 중 과도한 스트레스로 저수지에 투신 사망, 14년 1월 진천, ○모 씨,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상사의 폭언·폭행 등으로 자살, 11년 12월, 광주 ○모 씨,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과도한 노동으로 뇌출혈 및 뇌사상태 …. 작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김씨도 특성화고에 다니다 현장실습을 나간 업체에 취업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지요. 빙산의 일각에 해당하는, 신체가 훼손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리는 심각한 사고라야 그나마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실습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인권침해사례들은 수면 아래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잠겨있는 상황입니다.
 
▲‘조기취업 형태 현장실습’ 전면 폐지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이어지고 있습니까? 언론에서는 이러한 비극의 행렬을 불러일으키는, ‘3대 악습’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취업률을 높일 목적으로 확대해온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시기 및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아예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직업교육훈련 촉진법’ 개정, 실습생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현장실습서약서’ 폐지 등도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한겨레, ‘또 다른 이군’ 비극 막으려면…고교 현장실습 ‘3대 악습’ 끊자, 11월27일자 기사)

 이런 문제제기에 응답을 하듯, 정부에서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특성화고 학생의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다만 예외적으로 실습 지도와 안전 관리 등이 확보된 현장에는 현장실습을 허용). 현재 실습이 이뤄지고 있는 모든 현장을 전수 점검,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즉각 학생들의 복교 조치. ‘직업교육훈련촉진법’도 개정해서 학생의 현장실습 자율성을 부여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부과. 또 취업률 중심의 학교평가와 예산지원 체제의 개선도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대책들이 얼마나 상황을 개선시킬지는 차분히 두고 봐야겠습니다만, 저는 이런 대책들을 보면서 뭔가 허전한 마음이 좀처럼 채워지지 않더군요. ‘진짜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는 것 같다는, 그 허전한 마음 말이죠. ‘현장실습은 노동이 아니라 교육이어야 한다’는 교육감들의 외침을 들으며, 곧바로 “그렇다면, 교육현장은 안전한가?”라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각자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씨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지요. “인생의 일할을 /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 아마 그랬을거야 /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 경멸하는 자를 / 짐짓 존경하는 법 / 그 중에서 내가 살아가는 데 / 가장 도움을 준 것은 /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 ‘학교에서 배운 것’)
 
▲“공부 못하면 공장 가서 일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야 성공한다”, “공부 못하면 저렇게 기름밥 먹어야 한다”는 겁박을 지속적으로 당하며, 무한경쟁에 내몰려야 합니다. 일반고로 가면 세계최장시간 학습노동에 몸이 짓눌리고, 시험 성적에 자신의 삶의 가치가 매겨지는 비인간적인 폭력에 마음이 무너진 채, 그 시간을 버텨야 합니다. 특성화고를 가면, 그간 배웠던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에 ‘묻지마 취업’을 당해야 하고, 현장실습을 나가도 단지 공장의 임시 부속품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학생들이 현장실습에서 사고를 당하면 ‘공부 못해서 저런 곳을 갔다’는 폭언을 들어야 하고, 어쩌다 사고를 겪은 개인의 불운으로 취급하며 책임을 떠넘깁니다.

 도대체 여기 어디에 학생의 ‘교육’이 있습니까? 여기에 어디 학생의 ‘안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이런 위험천만한 학교에서 학생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입니다. 이런 조례를 두고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 지도하고 교육하는 데에 손발이 묶였다고 푸념하는 교사들은 차고 넘쳐도, 오늘날 학교의 ‘교육의 불가능성’에 대해 돌이켜보고 더 늦기 전에 진짜 교육을, 학생의 참된 성장을 고민하며 학생인권조례의 가치들을 현실에 녹이려는 교사는 눈 씻고 찾아봐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미성숙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보호와 지도가 필요하다’는 프레임에 그들을 가두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중도 하고 있지 않으면서, 노동현장에서 ‘대체 가능한 부속품’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서만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학교에서 상상력이, 즐거움이, 자존감이, 주체성이 잘려나가고 꺾이는 ‘사고’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감각하면서, 공장에서 손발이 잘려나가고 생명이 꺾이는 사고에 대해서만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까? 공장만큼이나 학교도 위험하다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학생인권·노동인권 교육 당장 실시하다

 교육이나 노동이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도 노동도 안전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부터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인간으로서 인간성을 짓밟는 일들에 대해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현장에서도 부속품 취급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장에는 학생인권교육, 노동인권교육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 그것뿐입니까? 중등교육뿐만 아니라, 초등교육, 어린이집까지 가장 아래로 내려가서부터, 아이들이 성장할 때 그들을 지원하는 제도와 정책의 핵심 목표이자, 주요 기준 및 판단 근거를 ‘인권’으로 명토 박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청소년들이 투표용지를 자신의 손에 쥐어야 합니다.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을 자신의 손으로 치워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인간 선언을 할 수 있도록 참정권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꼴이며, 이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입니다.

 저 내용들은 저의 머릿속에만 있는 망상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서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http://youthact.kr)의 주장들입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세요.) ‘촛불청소년인권법’이 제정되고, 그에 따라 구조적인, 개인적인 노력들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학교에서부터 이들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회 곳곳에서 서로 함께 ‘인간’으로서 만날 수 있도록 모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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