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가 대안학교 학생’에게 ‘광주학생인권조례’란?

 몇학기 전, 대안학교 학생들과 인권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제는 ‘우리 학교의 학생 인권 문제 찾기’였습니다.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대안학교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여러 종류의 인권 침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죠. 학생들 스스로 인권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학생들의 눈으로 자신이 발딛고 있는 문제를 찾은 뒤, 그에 대한 해결 방법도 함께 마련해서 학교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수업이었습니다.

 하루는 수업 참고 자료로 ‘광주학생인권조례(해설)’을 출력해서 함께 읽고 질문과 대답, 토론을 진행했었어요.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계기와 각 조항의 의미들을 한참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학생이 대뜸 물었습니다. “샘! 그런데 이 규칙들이 우리 학교에도 적용되는 거예요?”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미인가 대안학교’였기 때문입니다. 즉, ‘초·중등교육법’상 인가를 받지 않은, 법적으로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공부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도 광주학생인권조례가 적용될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광주시교육청에서 날아온 ‘오만’

 지난주에 교육청에서 학교(제가 일하고 있는 미인가 대안학교)로 공문이 한 통 날아왔습니다. 일부 내용들을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가. ‘초·중등교육법’ 제65조 제2항에 따라 학교 명칭 사용을 즉시 중지하고, 2018.2.28.까지 무인가 교육시설 폐쇄를 명합니다. 나. 2018년 신입생 모집 등 입학 업무를 즉시 중지하고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이 공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생 및 학부모에게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다.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하여 시설을 사실상 학교 형태로 운영하는 자는 ‘초·중등교육법’ 제67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생을 모집하여 시설을 사실상 학교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광주광산경찰서에 ‘초·중등교육법’ 위반사항을 알리고 관련 법령이 따라 조치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마. 현재 재학 중인 학생의 학습권 보호 등을 위해 붙임 자료를 참고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우리 시교육청 학교 설립 담당 부서인 행정예산과의 안내를 받아 대안학교 설립 인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학교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당혹감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교육 관료들의 저 일방적인 행정조치, 징역·벌금 운운하며 들이대는 협박성 공문의 행간에는, 교육 관료 자신들이 이 대안학교에서 이뤄지는 여러 활동이 ‘진짜’ 교육인지 아닌지를 법을 잣대 삼아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오만이 깔려있습니다. 우리 학교를 포함한, 전국의 수많은 비/미인가 대안학교 현장에는 열정을 가진 교사들이 국가가 정해준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다양하고 의미 있는 교육실험에 헌신적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와 그 의미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소통하려고 하기보다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법을 들이대며 행정가들의 관리와 통제 아래 두려고 하는 이유를,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공교육만이 교육인가요?

 공교육만이 교육인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요? 그런 그 ‘초·중등교육법’이 의지하고 있는 상위법으로서 ‘교육기본법’과 ‘헌법’은 교육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를 가진다.”(교육법 제3조 학습권)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4조 제1항 교육의 기회균등),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1조) 다시 말해,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고, 교육적 신념에 따라 교육을 받는다고 할 때, 차별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충분히, 자신의 교육적 신념이 일반 교과서로 구현되는 국가수준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적성·신념 등을 고려하여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 있고, 그에 따라 살고 싶은 삶이 있습니다. 자신의 개별성과 고유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교육, 헌법이나 교육기본법도 이런 교육을 지향하고 있지 않나요? 오히려 현재 제도권 공교육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미래의 시민들을 위해서 다양한 교육 현장의 주체들이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서로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더 절실한 일 아닌가요? 그런 노력들은커녕 법적 폐쇄 명령이라니요? 더군다나 징역, 벌금 운운하며, 경찰서에 행정조치를 요구했다는 이런 겁박은 지난 보수정권 때도 없었던 일입니다.

 만약,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이 공문 발송이 얼마 전 광주지역에서 일어났던 어느 대안학교의 성추행 사건과 그 후속처리과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에 대한 재발방지를 위한 것이라면, 또는 그 이후에 이와 유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런 근거자료를 남겨서라도 책임을 면하려고 이런 공문을 보내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관료주의적인 접근방식이라고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가 받지 않으려는 이유, 즉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시도하려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존중하는 선에서 사건 발생에 대한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과 그에 따른 실질적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함께 고민하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문제를 예방할 수 있죠. 그런 노력 없이 이런 공문으로 겁박을 하는 행태는 결국, 앞서 말했듯, ‘자신들이 하는 교육만이 진짜 교육이고, 그 외에는 모두 교육이 아니’며, 실정법의 테두리 안 들어오면 교육으로 인정해주겠다는 교육 관료들의 오만함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누구나 헌법이 보호하는 인간입니다”

 “저는 ‘광주학생인권조례’가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수업 장면으로 돌아와 봅시다. “샘! 광주학생인권조례가 인가 받지 않은 우리 학교에도 적용되는 거예요?” 저는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법에는 체계가 있습니다. 또 법의 취지도 있죠. 법의 가장 꼭대기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에서 ‘교육권’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은 차별 없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인가를 받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엄연히 교육입니다. 여러분들은 학생이고요. 그 전에 ‘헌법’에서 말하는 대한민국국민이고, 또 ‘세계아동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아동이기도 합니다. 결국 여러분들은 존엄한 인간으로서 지금, 당장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해야 하고요. 저는 ‘광주학생인권조례’가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답변이 되었나요?”
추교준

 추교준님은 인문학이 잘 팔리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인문학이 가능할지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 번씩 시민단체 활동가들 어깨너머로 인권을 함께 고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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