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원하고 무엇을 위한 일일까?

▲ 광주지역일반노동조합과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지난 6일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천주교 인보회의 시설 폐지를 규탄하고 시설 이용인에 대한 강제이주 조치 계획을 당장 취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사랑의집’의 갑작스런 폐쇄 신청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갑작스런 폐쇄 신청서 접수와 일부 거주 장애인에 대한 타 지역으로의 일방적인 전원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번 ‘인연’ 지면은 ‘사랑의집’ 폐쇄 신청에 대한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박려형 활동가의 글을 받아 싣습니다.>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의 흐름은 시설 내 비리나 인권침해 등의 문제들이 내부 고발이나 외부 확인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 이후 진상을 규명하고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을 통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오면서 행해졌던 행태였다. 그렇게 적잖은 장애인거주시설들이 폐쇄되었고 이후 시설 정상화를 요구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노조가 없는 시설은 안녕한가?

 광주에 소재를 둔 장애인거주시설이 최근 장애인복지시설 폐지 신고서를 해당 자치구에 제출했다. 이전의 폐쇄된 시설의 사례처럼 비리나 인권침해 등으로 인한 관공서의 조치나 결과로 폐쇄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해당 시설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다. 해당 시설 운영진은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가입하고 활동하는 것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시설을 없애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노조 결성 이유로 시설 폐쇄 시도”
 
 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시설을 폐쇄하려는 시도가 납득하기 어렵다. 1퍼센트 남짓의 사회복지 노동조합 조직률은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노동자의 권리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척도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의 방식, 노동과정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강화할 수 있는 통로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한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시설 운영과 이용인의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적진 않을 것이다.

 시설 폐쇄가 이뤄진다고 가정했을 때 시설에서 거주하는 이용인들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누구를 위한 결정이며 누구에게 좋을 결정인가. 시설 폐쇄를 결정하기까지 어떤 과정과 논의를 거쳤을까. 시설 폐쇄에 따른 결과로 어떤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확실한 것은 시설 내 거주하는 이용인들을 위한 결정도 아니고 그 안에서 일 해왔던 노동자를 위한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져야할 사람들
 
 누군가 광주에 살고 있는 나에게 통보한다.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한다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어디에서 살지, 무얼 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준 적이 없는 상황에서는. 또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역사회에서 맺어 온 관계와 경험들을 포기할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인거주시설 폐쇄신청서’를 제출한 해당 시설은 현재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20여명의 이용인들에 대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운영 중인 해당 시설법인의 시설들로 이용인들을 전원조치 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인 이사회에서 결정이 됐고 타 지역으로의 이용인 전원조치에 대한 보호자들의 동의도 구해놓았다고 한다. 이사회의 결정과 보호자의 동의는 시설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이며 온당한 절차인가. 일방적 시설 폐쇄 결정 이후, 그들이 마주할 변화는 무엇일까.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인가, 막연한 두려움의 시작일까.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사회복지서비스에 신청에 관한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란 사회복지사업법 제33조의2에 따라,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 친족 그 밖의 관계인이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사회복지서비스의 제공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자신이 해당하는 지역의 관공서에 필요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고, 어디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묻게 되어 있다. 이후 서비스 제공계획을 수립하고 필요에 맞게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문화된 제도로 여겨지지만 법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의 권리이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 작동 계기
 
 지난 2009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장애인 3명은 해당 지자체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가 이를 거부해 법원에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거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 9월 청주지방법원은 두 명의 원고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린 반면, 2011년 1월 서울행정법원은 ‘지자체는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사회복지서비스 신청권이 작동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 소송으로부터 8년이 시간이 흘렀다. 그 뒤 시설이 폐쇄되어야 한다고 할 만큼 시설비리나 인권침해 사건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시설에 거주하는 누구나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할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요구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다. 거주인 폭행, 국가보조금 횡령 등으로 2014년 시설 폐쇄 통보를 받은 인강원은 이후 기존의 이사진을 전원 공익이사들로 교체했다. 이후 자립관을 운영하면서 거주인 욕구를 확인하고 자립계획을 수립하면서 2016년 19명의 이용인이 지역사회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용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꾸준히 확인하고 지원했던 인강원의 사례는 기억하고 참고할 만하다.

 장애인복지법 44조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시설 이용인에 대한 조치가 적절히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하며 시설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장애인복지시설을 설치·운영하는 자는 시설 이용자의 권익이 침해받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하며 시설 이용자가 다른 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행을 확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함을 동법 60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누군가의 삶을 뒤바꿀 권력은 여전하다.
 
 인화학교 도가니. 그리고 그 이후에 터져 나왔던 시설 거주인 인권침해 문제로 폐쇄됐던 시설들을 기억한다. 또한 시설 이용인들이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보장받으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던 시간들도 우리는 기억한다. 요구가 권리로서 보장되고 뿌리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작금에 시설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시설을 폐쇄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은 누구를 위한 힘이고 권력인가. 또한 그 곳에서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다른 지역으로 전원하려는 조치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비인권적 처사인가.

 시설 종사자들의 생계를 박탈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이전에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이용인들이 많게는 수 십 년간 쌓아온 일상과 관계를 박탈해버리는 결정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누구의 간섭과 통제, 그리고 견제 없이 내릴 수 있는 시설 권력을 생각한다. 정부와 대통령이 바뀌어도 여전히 마주해야 하는 시설 권력의 적폐. 작년 겨울 촛불을 들고 적폐청산을 외쳤지만 시설권력이라는 적폐는 여전히 아무 견제 없이 안녕하게 안전하게 안락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닌가.
 
▲ 일방적 결정 견제할 제도 필요
 
 장애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와 같은 일방적인 결정들이 이뤄지지 않도록 감시하며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제도로 규정되었으나 사실상 사문화 되어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할 권리와 선택할 권리가 이제는 체감되어야 한다. 사회복지 서비스 신청을 위한 복지 요구를 파악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면담을 통해 적절한 서비스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동의는 이용인의 동의가 아니며 인간의 욕구는 단순하지 않다. 폐쇄를 앞둔 시설의 운영자에 대해 이용인에 대한 조치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용인과 보호자 등의 욕구가 반영된 구체적인 자립 계획 및 전원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선택한 주거 유형을 소개하고 살아갈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지역사회와 연계를 맺고 있던 이용인에 대한 다양한 지역사회 자원들의 연계가 지속될 수 있게 노력하여야 한다.

 일방적인 시설 폐쇄로 인해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들을 파악하면서 그 곳에서 일 했던 직원들의 고용문제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직원도 시설 내 구성원으로서 시설 운영에 관련한 계획을 알 권리가 있으며 그 결정이 부당하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경우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들을 안내하고 보장해야 한다. 특히, 거주시설은 지역사회 내 거주시설에 대한 수요를 고려하여 설치여부를 판단하므로 시설의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수요 및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박려형<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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