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장애학의 덕을 보다

 20대 어느 날, 아직 활동지원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가기 전 대상 제한과 시간제한 그리고 자부담 부과라는 독소 조항을 없애기 위해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건강 상태는 매일 체크되었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먼저 내려왔던 농성이었습니다. 단식 농성 좀 해본 이들이 ‘단식 끝나면 보식 잘 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고, 광주가 아닌 어머니가 계신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며칠 죽과 과일을 먹으며 큰 부담 없이 마음 편히 지냈습니다. 일주일이 지날 무렵 보신해야 한다며 소고기도 먹었습니다. 이렇게 며칠 더 보내면 무사히 보식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광주로 돌아가기 전날이 되었습니다.

 이모와 이모부, 사촌 동생과 어머니까지 저를 둘러싸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험 준비를 할지 대학원을 갈지 아니면 가족이랑 연을 끊고 니 마음대로 살지 선택해.”
 
 처음이었습니다. 제 활동에 대해 가타부타 별 말이 없던 친지들과 어머니의 분명하고도 단호한 ‘선택해!’라는 반응이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곪았던 상처가 터져 나오듯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기대를 저버린 아들과 조카 그리고 사촌에 대한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걱정 가득한 그 말들 앞에 할 말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광주로 돌아와 무엇을 택해야 하나 고민이 깊었습니다.시험을 준비한다는 답을 기대했을 것이고 그도 아니면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와서 대학원에라도 다니길 바랐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아닌 광주로 돌아와 활동하겠다는 선택이 제가 택한 것이었다는 것.

 바로 그 때 해법으로 툭~ 떨어진 것이 ‘장애학(Disability Studies)였습니다.

 “대학원에서 장애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한국에는 없는 학문, 공부하려면 유학을 가야 한다.”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 드렸고, 그렇게 20대 어느 날, 활동을 계속 하기 위해 가족과의 인연을 끊을 수도 있었던 큰 위기를 ‘장애학’ 덕분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 2 장애학을 배우기 시작하다

 지난해 말, 한국에 장애학과가 개설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여성 운동을 하는 이들이 여성학과가 생긴다는 것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을 것처럼 장애인 운동 활동가들에게 장애학과 개설은 가슴 뛰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입학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가슴 졸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합격 사실을 확인하고 등록금 납부일을 기다렸고 등록금을 납부하고 수강신청 날을 기다렸습니다. 수강 신청 날이 되었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사용할 전공 교재였습니다. 십수 년 전과 같이 전공 교재조차 없이 수업을 듣는 그 무의미한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교재를 확인했고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대체자료로 제작되어 있는 것도 확인한 뒤에야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라고….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에 맞춰 광주에서 대구까지 가는 일보다 전공 교재를 구하는 게 걱정이라는 게 못내 우습게 느껴지며 씁쓸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9시간 동안 듣는 수업에 대한 부담도 그저 읽을 수 있는 책이 확보되었다는 사실 하나에 마냥 즐거웠습니다. 10년쯤 전에 곤란한 처지에서 저를 건저준 ‘장애학’을 이제 핑계가 아니라 진짜 배우게 되었습니다. 개강 후 2주가 지났고 두 번의 수업이 있었습니다. 발표 수업 날짜도 잡히고 조별 과제도 정해졌습니다. 부담될만한 일인데 부담보다 설렘이 좀 더 크게 느껴집니다.
 
 # 3 내 탓이 아니다!

 장애인이 직면하는 문제를 ‘개인적 차원’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인식하며 연구하는 학문이 장애학이라고 했습니다. 사회적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십수 년 전, 왜 나는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회의감 어린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16주 중 2주를 보낸 뒤 하게 된 생각입니다. 손에 쥐어진 전공 교재를 움켜쥐고 못다한 노력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을 늦게나마 해보며 지우고 다시 새기고 싶습니다. 내 탓이 아니었다고, 나의 불성실함과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고….

 강의실을 겉돌던 십 수 년 전의 제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 탓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한 마디인 요즘입니다. 움켜 쥔 전공 교재가 겨우 손에 쥐어진 것처럼 ‘네 탓이 아니야’라는 한 마디가 필요한 이들에게 과거와 다른 뭔가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여지가 계속 되길 바라봅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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