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마라톤에서.
 곧 비가 쏟아질 듯 바람이 불던 날 5·18 마라톤이 열렸습니다.

 주말이었고 바람이 불었고

 곧 비가 오겠구나 생각이 들 만큼 하늘도 흐렸지만

 휠체어를 타고 택시에서 내리니 입구부터 사람이 아주 많았어요.
 
 중·고등학생부터 우리 엄마 아빠와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어른들

 엄마 아빠를 따라 온 어린 아이들

 주인을 따라 나온 듯한 강아지 까지도요.
 
 붉은 바탕에 하얀 선이 그려진 트랙을 돌아

 운동장 밖으로 나가니 차가 다니는 도로에 빨간 고깔이 세워져

 마라톤이 진행되는 동안 다닐 수 있는 길이 만들어져 있었고

 경찰 분들이 곳곳에서 통제를 해주셨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도로로만 갈 수는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로만 갈 수도 없었어요.
 
 통제가 되었어도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는 위험했고

 사람들이 걷고 뛰는 인도는 너무나 좁고 높고 불편했거든요.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도로에서도 인도 위에서도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어요.

 아직 휠체어 조작이 미숙한 탓도 물론 있었지만

 그렇다는 건 사람이 많은 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조금 더 안전한 길을 찾아 같은 곳을 돌고 또 돌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얕은 턱을 찾아 인도로 올라갔지만

 인도에 올라와 주차된 차 때문에 길이 막혀 왔던 길을 돌고 돌아 다시 가기도 몇 번.
 
 처음 가는 초행길에 워낙 길치이기도 하고 기어이 비가 왔고 비가 섞인 더운 바람이 불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무언가에 막힐 때마다

 사실은 참 속상했어요. 그런 마음은 잘 숨겨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함께 참가했던 분들이 아니라면, 설명하기도 너무 긴 얘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 모든 상황과 그날의 감정들을 한 두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타고나지 못해서
 
 그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아… 그냥 쪼끔 피곤하구나 하고 말았어요.
 
 뜬금 없나요?

 어울리지 않지만 비오는 날을 참 좋아 하는데

 쨍쨍하고 화창하게 맑은 날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비 오는 날 우산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목발을 짚고 걸을 때는 비가 와도 우산을 들 수 있는 손이 없었고

 수동이든 전동이든 휠체어를 탈 때는 몸이 내내 긴장된 상태라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 덕에 지금도 비를 맞거나 그래서 옷이 젖는 일 쯤은

 뭐…비 오는데 좀 젖을 수도 있지 샹각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덤덤해지기는 했지만 ^-^;;;
 
 우산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우산이 있어도, 혹은 앞으로 계속 없더라도 비는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

 맑고 선선한 날. 편안한 날.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까요?
은수

쓸데없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 나를 괴롭히는
그래서 나랑 화해하고 싶은 까칠한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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