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번에도 문제는 되풀이 되었을까?

 # 1-당신은 관외자 투표를 할 수 없다?

 기말고사와 과제 제출로 마음이 분주했던 날이었습니다. 장학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들러야 했던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째 날, 주민센터로 가기 위해 접수한 이동지원센터 차량이 투표장으로 갈 경우는 이용료가 무료라고 했습니다.

 마침 가고 있는 주민센터가 사전투표소라는 말을 듣고 잘 됐다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주민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장학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고 투표소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주민센터가 아닌 근처 경로당이라고 했습니다. 어찌해야하나 고민하는데 친절한 주민센터 직원분께서 차량으로 투표소까지 태워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전투표소인 인근 경로당에 도착, 신분증 제시와 투표용지 발급까지 1분 남짓에 일사철리로 진행됐습니다. 기표에 필요한 점자 보조용구를 제공해달라고 말을 건네고 받아들기까지는….

 점자투표 보조용구를 가지러 간 직원을 기다리며 20분이 지나고 30분 가까이 지났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묻는 제게 투표 보조용구를 찾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고 40분쯤 지났을 때 제 투표용지에 맞는 점자투표 보조용구가 준비되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투표소 직원들이 기표를 도와줄까 물었지만 제가 투표한 후보가 누구인지 그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고 점자투표 보조용구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아 관할 선관위인 광산구선거관리위원회 담당자와 통화했습니다.

 “원래 관내투표가 원칙이다.”

 전국 어디서나 신분증만 있으면 투표가 가능한 2018년에 황당한 소리였습니다. 납득할 수 없어 장애인 유권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고 말이 오가는 사이에 그 직원이 설명한 맥락은 이랬습니다.

 “시각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제작된 점자투표 보조용구는 투표용지 출력과 달리 즉석에서 제작할 수 없어 해당 투표소에만 비치해놓은 관계로 관외 투표를 할 경우 투표 보조용구 제공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점자투표 보조용구를 가져다 드리지만 이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불쾌함이 크게 치밀었습니다.
 
 # 2-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며칠 뒤 저와 같은 문제로 “투표소 직원 2명이 보는 가운데 기표해야했다”는 광주지역 시각장애인 유권자 인터뷰와 제 인터뷰가 포함된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인권위에서 2014년에 이미 알고 있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은 투표보조용구를 사전에 제작하여 배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전 투표소에 모든 선거구의 투표보조용구를 사전에 배포하여 비치해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향후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제도운영의 개선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현재 특수투표용지를 작성하는 경우는 없고 모든 지역 선관위에서 투표보조용구를 제작하여 제공하고 있는데, 이 투표보조용구에 기호만 점자로 찍혀있을 뿐 기타 정당명이나 성명은 점자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 -2014년 장애인 유권자 참정권 보장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pp. 30~31)-’


 관련 진정 또한 두 차례 인권위 결정이 나온 사례이기도 했습니다.
 14-진정-0160100(국가인권위원회. 2018)

 ‘…현재의 기표방식으로는 시각장애 선거인이 자신의 기표 내용을 볼 수 없어 정확히 기표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이는 투표의 필수 과정 중 하나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선거인과 동등한 정도의 참정권 행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임. 피진정인이 이를 개선함에 있어 정당간 합의가 필요한 전자투표 방식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특수투표용지를 사용하거나 천공식 기표방법 등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보이므로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나 과도한 부담 등의 사유가 발견되지 않음. 따라서 피진정인은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기표내용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책임이 있음.’
 
 # 3-문제는 정치다

 국가인권위 결정에 나오는 ‘천공식 기표방법’은 미국 투표지원법(HAVA, Help America Vote Act)이 해결하려 했던 ‘낙후된 투표 시스템’ 중 하나였습니다. 무효표 확률이 높고 확인 과정에서 오류가 많은 방법이라 전자투표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지원했던 것이죠. 미국 시각장애인 유권자가 사용 가능한 전자투표 단말기는 직접 후보자를 확인하여 기표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18대 대선 당시 부정투표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파장을 일으킬 만큼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해킹의 우려’가 존재하는 전자투표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고 우는 소리 하기엔 헌법에 명시된 비밀선거와 직접 선거의 권리가 침해된 세월이 너무 깁니다. 기표한 후보자를 알 수도 있는 도장이 묻어나는 점자투표 보조용구, 관외자 투표는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투로 목소리 높이는 무식한 선관위 직원의 모습, 이런 오래되고 잘못된 것을 ‘적폐’라고 부르죠.

 다음 국회의원 선거 전까지 이런 ‘적폐’도 ‘청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직접선거와 비밀선거가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도 보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지방선거 직후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는 언제 또 어떻게 나오게 될까요? 새 정부에서 국가인권위 또한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도연’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