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의젓해야 한다.
 
 “의젓하네.”

 명절에 친지분들을 만나면 유난히 많이 듣던 말이었습니다. 분위기로 보아서 칭찬인 것 같았지만, 익숙지 않은 단어라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려웠습니다.

 ** 의젓하다 : 점잖고 무게가 있다**
 
 투정 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갖고 싶다고 떼쓰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어느 정도는 시력이 좋지 않고 가정사가 뽀글뽀글한 대도 엇나가지 않고 무난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인 듯도 합니다. 사춘기 시절, 집보다 학교 기숙사에서 대부분을 보냈고 가족과 친지를 만날 때 굳이 모날 일이 없기도 했다는 게 ‘의젓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표정은 살필 수 없었지만,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면 ‘의젓해야 한다’라고 친척 어른들께 조용히 전해 들으며 마음에 담아두고 컸습니다.
 
# 2-그렇게 살다 보니
 
 의젓하게 크려면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거나 아빠가 있는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싶다거나 내 시력으로 하기 어려운 것을 해보고 싶다거나… 욕망하지 않으니 절실함도 크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아이가 되었고, 무난히 컸습니다.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도 가슴만 두근거리며 주위를 맴돌 뿐 다가가지 못하곤 했습니다. 그건 의젓한 모습이 아니니까. 누군가에게 어떻게 내 마음을 전하고, 절절함이 느껴질 만큼 상대를 가까이할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의젓한 모습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마음을 삭이고, 아파도 잘 참고, 헤어짐에도 담담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없지만 절친한 사람도 찾기 어려운 그런 모습이 된 모습이었습니다.
 
# 3-이제 그만 의젓해도 될까요?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움을 구하면 적극적으로 힘이 되어주려는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선뜻 도움을 청하거나 시시하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벽이라도 둘러친 것처럼 일정한 거리 안으로 사람들을 들어오게 못 하겠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고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만 다가가고 또 다가올 수 있게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게 느껴집니다.
 
 의젓하게 살라고 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친지 어르신이 ‘의젓해야 한다’라고 제게 말씀하셨던 건 누군가에게 폐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점잖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어디에 부딪히거나 뭔가 망가뜨리지 않고, 사람들이 신경 쓰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때문에 잃어버린 게 적지 않습니다. 관계나 일에 온 마음을 다하기 어려워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의젓하면 좋겠습니다.
 
# 4-폐 끼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폐를 끼친다는 건 쿨하지 못한 일입니다. 모양 빠지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그만큼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룻밤 신세를 질 수도 있고, 늦은 밤 불쑥 생각났다며 한잔하자고 연락할 수도 있고, 작성한 문서를 편집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배고픈데 밥 한 끼 사라고 넉살 좋게 말해볼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이죠. 이 대목을 읽으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 분이라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은 분일 겁니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군가가 쿨하지 못하게 부탁해오는 일을 피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면 적당히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갑자기 밥 먹자는 연락도, 불쑥 네 생각이 났다는 전화도, ‘미안한 데’로 시작해서 ‘도와줄 수 있어’로 끝나는 누군가의 절실한 부탁도 받아보지 못하며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를 만나면 가슴이 찌르르 울릴 것 같습니다.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누군가와 만나게 된다면, 마음 한편이 아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무례하지 않으면서 친숙해지자고 그래서 일상에서 기분 좋은 별일(happening)을 만들며 오래오래 만나자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의젓하라는 말은 말고 ‘무례하지 않으면서 폐 좀 끼치며 살아도 된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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