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 1-10년 전에 해야 했을 일
 
 오랜만에 온 학교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있던 자리는, 도서관 옆으로 새 건물이 하나 생겼고, 덕분에 엉뚱한 건물로 들어가서는 ‘아… 역시 오랜만에 오니까 많이 변했네. 못 알아 보겠어…’라며 헤매게 했습니다.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들고 ‘열람실이 어디죠?’라고 물었는데 이 건물이 아니라 옆 건물이 도서관이라고 했습니다. 어쩐지 내부 공사치고는 너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도서관 건물로 들어오니 익숙한 느낌입니다. 졸업생인데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고, 한 번이라면 따로 출입증 같은 걸 만들 필요 없이 그냥 이용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와서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열람실 좌석을 찾아 헤맸습니다. 생각해보니 학교 다닐 때 도서관 열람실에 와본 적이 없었습니다. 2~3번 열람실에 전원 연결이 가능한 좌석이 있다고 1층에서 안내를 받았지만, 찾기 어려워서 열람실을 나오는 누군가를 붙들고 또 물었습니다. ‘동그란 테이블에 있어요.’ 친절한 학생 덕분에 겨우 전원을 연결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지인 문병이 아니었다면,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까지 와서 열람실을 헤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니, 평소 다니는 동네 도서관보다 학교 도서관 열람실이 훨씬 일찍 와본 곳이자 익숙한 공간이었어야 했습니다. 왜 이 열람실에 와볼 생각을 못 했을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누구도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한 적 없지만, 한 번도 2층 열람실에 와볼 생각을 못 했던 시간이 황당하게 느껴집니다.
 
# 2-새장에 갇힌 새처럼
 
 종합시험 예상 문제가 떴습니다. 졸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라 부담이 컸습니다. 문제를 띄우고 강의 때 사용한 전공 교재도 띄웠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읽어도 예상 문제의 답을 전공 교재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분명 맞지 않는 답인 것 같지만, 그래도 간접적으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을 적어 질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 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예상 문제의 답이 될 만한 내용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풀라는 것인지 난감했습니다. 같은 과목을 종합시험으로 선택한 이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한 분이 준비한 내용을 공유해줬습니다. 답을 찾지 못해 난감하던 그 문제에 관한 것보다 도대체 어떻게 이 예상 답안을 정리했는지 그 방법이 더 궁금했습니다.
 
 ‘전공 교재에는 안 나오는 내용이라 다른 책을 찾아보며 정리했어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왜 나는 답이 강의 시간에 쓰던 주 교재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 책에 없으면 다른 책을 찾아볼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을까?
 
 부랴부랴 시험 볼 과목과 관련된 다른 책이 있는지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뒤졌고, 여러 권의 참고할 만한 책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전공 책 한 권도 제대로 파일로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당연히 읽을 수 있는 책이 강의 때 사용한 전공 책 한 권 외에 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 책에 없으면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검색하고 대출받아 참고하며 공부한다는 건 감히 엄두도 못 낸 경험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순간, ‘너 시각장애인이야!’라고 말하는 듯 한 낙인감이 깊고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 3-무엇이 우리 시간을 멈춰 새웠을까?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같은 띠인 사람이 모인 동호회에서 정기 채팅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같은 띠에 동갑내기였던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였죠. ‘고등학교 어디로 갔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각자 ‘예고’니 ‘인문계’니 하면서 한 마디씩 대답했었습니다.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그때까지 ‘특수’하게 보내던 제게 중 3학생들이 나누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는 낯설고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그 채팅방에서 역시나 제게 어디로 진학했는지 묻는 친구가 있었고, 저는 어정쩡하게 설명하며 넘어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또래보다 5~10년쯤 경험과 고민을 늦게 마주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만난 중도 장애인이 된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며 그렇게 제 느낌을 말한 적 있습니다. ‘나는 장애를 갖게 된 뒤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은데…’ 제 말을 들은 분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멈춰버린 시간은 그렇게 20세를 전후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동시대인이 된 게 아닐까? 외국어 시험과 종합시험을 준비하고, 발표 수업과 논문 계획 심사를 함께 앞둔 이들을 생각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순간순간 그/녀들이 축적한 일상적인 경험이 반짝~ 드러나는 순간에 격차를 느끼며 당황스럽곤 하지만, 읽을 수 있는 교재 파일이 있고,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노트북도 있는 지금 비로소 ‘같은 학생’이 된 느낌입니다.
 
 열람실에서 공부하고, 전공 책 외에 다른 책을 찾아서 대출받거나 복사하며 시험 준비하는, 그게 뭐라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며, 때로는 웃고 따로는 다투는 그게 뭐라고….

 맛집 찾아 밥 먹고, 커피숍에서 차 마시고,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정말 그런 게 뭐라고….
 
 그 사소한 것을 특별하게 만든 ‘분리’와 ‘차별’에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분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단체의 일원으로 ‘모두의 문제’로 이야기하던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 ‘나의 문제’로 마주하는 꼭 그만큼 생생합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소수자를 차별하며, 당연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매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까칠한 표정과 함께 말할 겁니다.
 
 “그게 뭐라고…”
도연

도연 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꿈 많고 고민 많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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