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생각하며

▲ <사진은 `한겨레’에 보도된 사진임.>

먼저 시선은 대통령의 얼굴과 표정에 갔다.

이어서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게 있는 바,

90도로 허리를 팍 꺾은 검은 양복의 사나이다.

차명진 의원 겸 대변인이다.

대저 인사는 저렇듯

깊을수록 좋고 또 여운이 길다.

다시 화살표 같은 사내의 꺾은 머리 방향에는

세 명의 검은 양복들이 서 있다.

대통령의 환한 웃음, 입이며 눈,

표정 가득히

마치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본 듯

뿌듯함이 넘쳐흐른다.



사진은 며칠 전 한나라당 중역들이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을 대면하던 순간을 찍은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거울을 중심으로 한 화면 안에 어린 공주와 시종, 화가, 왕과 경호원 등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위칟포즈·시선 등을 그린 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것을 얘기했고, 푸코(‘말과 사물’)는 이를 시선과 대상, 주체와 객체, 재현되는 것과 재현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재성찰하는 ‘도구’로 삼았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났다.

먼저 시선은 대통령의 얼굴과 표정에 갔다. 이어서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게 있는 바, 90도로 허리를 팍 꺾은 검은 양복의 사나이다. 차명진 의원 겸 대변인이다. 대저 인사는 저렇듯 깊을수록 좋고 또 여운이 길다. 다시 화살표 같은 사내의 꺾은 머리 방향에는 세 명의 검은 양복들이 서 있다. 대통령의 환한 웃음, 입이며 눈, 표정 가득히 마치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본 듯 뿌듯함이 넘쳐흐른다.

셋의 머리는 한손에 심은 배추모종마냥 뭉쳐 있다. 그 중 가운데 끼인 이가 박희태 대표. 살짝 비튼 눈매와 입모양을 보건데, 특유의 그…. 그래도 어쩐지 표정이 좀 머쓱하다. 이런 상황에서의 대표의 표정치곤 그런대로 괜찮다 싶다. 그런데 삼각형의 또 다른 한 꼭지점의 사내는 (누군지 모르겠다. 아마 사무총장 쯤?) 뒤쪽을 못 봤는지 표정이 거침없이 환하다. 다만 대통령의 시선이 그이와 빗나가서 좀 민망스러울 뿐.

양복쟁이 셋의 앙상블은 이어진다. 허리로 뻗어 내린 대통령과 총장(?)의 손을 보면, 대통령의 것은 사내가 곧 고개를 최대한 공손히, 천천히 눈동자부터 들어 올리며 두개로 모아 내밀 90도 사내를 향해 내밀고 있고, 같으면 안 될세라, 다른 이의 것은 공손하게 오므려 약간 뒤쪽을 향하도록 두고 있다. 대저 몸과 마음은 저처럼 근육의 무의식적 움직임 같아야 하는 법이다.

감상을 여기에서 멈추면 너무 서운할 새. 배경 처리된 원목의 실내 내벽 분위기는 사람들의 위세를 한껏 고조시키는 한편으로 양복의 검은색을 중화시킨다.

포인트 하나가 빠졌다. 90도 사내의 뒷목 위에 경쾌하게 놓여 있는 조각 작품은 바로 하루 전에 바뀐 문화예술위원 명단을 상기시키듯 한 여류작가의 보드랍고, 살살 녹는, 저 돌이 무슨 돌이더라…. 저것은 사슴? 노천명의 시구도 생각나는, 암튼 그 작품들은 송필용과 이종구의 것을 대신해 놓여있는 것 같다.

작품은 충분히 ‘시녀들’의 ‘거울’에 비견될 만하다. 구석에, 적당히 그럼으로써 대상들의 위칟포즈·시선들이 마주치거나 어긋나는 각도·선과 명암 등등이 완성됐다.

빼먹은 게 있다. 조각상 쪽으로 한데 모아 비추이는 그림자. 대통령 뒤에 사슴이다. 그 것들을 보는 것은 그림 그리기를 마친 뒤 마무리작업을 하는 톤, 터치와 같다.

한 장의 사진이 이렇듯 환상적인 조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 그 것은 촬영기자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갖고 있는 시각적, 비시각적 이미지들의 총화에 다름 아니다.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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