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강과 황룡강 합수지점의 호가정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미국발 경제위기는 전 세계를 덮치고 마침내는 우리나라에 상륙해 ‘잃어버린 10년’을 구호로 삼고 있는 MB정권을 만나 점입가경이다. 나날의 뉴스를 보는 일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갈라져 가라앉아버릴 지 모르는 살얼음판만 같은데, 일상을 뚫고 잠깐 도시를 벗어나봤다.

사진은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호가정(浩歌亭)이다. 송정리에서 나주 동신대 가는 길을 따라가다 극락강과 황룡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동네인지라 게장백반으로 유명한 오른편의 동곡마을을 조금 지나 언덕배기에 올라서자마자 왼쪽으로 핸들을 꺾어 들어가, 강변 기슭에 있는 정자다.

‘앉으면 죽산산, 서면 백산’이라는 동학 때의 말이 있는 바, ‘앉으면 내 안이요, 문을 열어 젖히면 천지만물이 나와 구별이 없는’ 무아지경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정자는 광주와 인근에 유독 많다. 그 속엔 모두들 범상치 않은 선인들의 삶의 내력이 깃들어 있으니 이 또한 요즘 유행하는 문화콘텐츠나 스토리텔링의 좋은 사례일 듯하다.

조선조 명종 때의 문신 설강 유사(柳泗)는 27살에 벼슬길에 나아가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중임을 비릇한 여러 고을의 목민관을 두루 역임했는데, 기묘사화와 을사사화 같은 대변란으로 존경하는 눌재 박상 선생(송정리에 사당이 있음), 동족인 유관, 유인숙을 비롯한 대유학자(大儒學者)들과 대쪽 같은 성균관 유생 조광조(능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같은 선비들이 줄줄이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세태를 맞아 벼슬을 버리고 고향마을로 돌아와 이를 지었다. 인걸이 끓긴 그 시절을 무어라 말하랴. 그가 읊은 ‘호가정운’(浩歌亭韻)이다.

‘시원한 돌베개에 솔 그늘 더욱 짙고/ 바람은 난간을 돌아 들빛이 뚜렷하네/ 차가운 강물 위의 밝은 달빛 아래/ 눈을 실은 작은 배가 한가로이 돌아온다/ 아래는 구강(九江) 이은 위에는 하늘인데/ 늙은이 할 일 없어 세속에 내맡겼네/ 바빴던 지난 일을 뭣하러 생각할꼬/ 늦 사귄 물새가 한가로이 졸고 있네’

정자에 올라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단연 호연지기를 연상함에 여느 곳에 비길 바가 없다. 너른 자연을 어떻게 품었는지 정자 밑으로는 영산강이 실개천처럼 여리게 흐르고, 그 강 건너로는 무등산에서부터 뻗어 내린 광활한 들판이 장관이다. 멀리 어슴푸레한 무등산은 그런 사화와 당쟁과 전쟁들을 겪어온 이 땅의 내력을 은은히 감추는 듯하다.

정자 이름은 송나라 호강절이 말한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따왔다 한다. 목소리 높여 막힌 가슴 뚫는 노래 부르는 곳. 귀향한 한참 뒤에 다시 세상의 판도가 뒤집혀져서 조정 중신들이 다시 선생을 중용코자 하였으나 끝내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의 어린 학동들을 가르치고 기제사를 모시면서 고래 명현들의 섭리를 궁구하는 것으로 소일하다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 20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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