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양한 삶의 조건들

지난 10월에 찍은 이 사진은 광주비엔날레 주전시관 입구를 삼각형의 한 꼭지점으로 해 김남주 시비와 백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히로시마 피폭감나무 그루터기다. 새장 같은 철장에 둘러싸인 나무는 올 봄까지만 해도 무성하게 잘 자랐었다. 그러다 얼마 전 독도문제가 불거졌을 때 누군가가 싹둑 잘라버렸었는데, 나는 그 무지막지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금새 다시 새 싹을 틔우는 나무에 묘한 연민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누군가가 아예 다시는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순을 꺾고, 껍질조차 벗겨내 버렸다. 이제 이 감나무의 ‘소생’은 힘들 듯 하다.

2000년, 비엔날레를 치룰 때 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을 주축으로 한 이들과 일본 작가들은 ‘시간의 소생’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나무를 심었다. 사연인 즉,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이 감나무의 어머니 나무였다고 한다. 2000년을 전후 해, 일군의 일본 작가들은 이를 소재로 한 일종의 예술작업을 시도했다. 그 나무 씨를 받아 모종을 키워서 세계 각지에 이를 심고, 그 사연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는 등 ‘평화를 기원한다’는 요지의 나무심기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그들은 뉴욕과 파리 같은 주요 도시는 물론 베니스비엔날레 현장과 다른 여러 중소도시들에도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를 심었던 2000년 봄엔 광주의 유지들 여럿이 모여 뜻을 기리는 식목행사를 했다. 특히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금방 알만한 명망 있는 광주의 이른바 재야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멀스멀 말라 죽어버렸다. 추측인 즉 일본에서 모종을 가져올 때 뿌리에서 지나치게 흙을 많이 털어내고 가져왔지 않았나 싶었다. 그러자 얼마 뒤에 일본으로부터 다시 새 나무가 도착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 심은 나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목을 싹둑 꺾어버렸다.

추측컨대, 그 나무를 꺾은 사람은 공원을 산책하는 주변 아파트 노인 중 누군가가 아닐까 싶다. 아마 그분은 일제시대에 혹독한 고생을 했거나, 징용을 다녀왔거나, 아님 그런저런 사연이 있는 분의 후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이 나무는 수억명 주변국의 역사를 피로 물들였던 자신들의 만행을, ‘히로시마 폭격’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으로, 자신을 일거에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시켜버리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행위에 대한 거부에 다름 아니었을 터.

그러자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사진과 같은 새장 모양의 단단한 쇠구조물을 세우고 사람들의 손길을 원천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그 덕인지 몇 년 동안 별 문제없이 잘 자라 올 봄엔 나무 키가 철장보다 절반 정도는 더 크게 무성하게 자랐는데, 그만 독도사태를 만나 저 지경이 된 것이다. 여기까진 철장 속에 죽어 있는 히로시마 피폭감나무 이야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장 뒤편엔 노랗게 이파리가 물든 키 큰 감나무들이 멋스럽게 서 있다. 야산 돌무더기 같은 척박한 땅에서 흔히 자라는 땡감나무다. 열매가 작아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러나 늦가을 단풍이 유난히도 고운 이 땡감나무는 이 신산스런 박토에 뿌리를 내리고, 멀리 히로시마에서 두 번이나 비행기를 타고 와서 사람들의 분에 넘치는 관심 속에 심어지고 또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같이 철통같은 경호 속에 자랐지만 끝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시간의 소생’이라는 이름의 예술작품의 죽음 뒤에 의연하게 서 있다. 윤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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