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례 배우고 미술관 관람·의재 문화유적지 탐방
일제고사 본 날 : 두 표정

▲ 전국 초·중·고교에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실시된 13일 오전 광주 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시험 문제를 풀고 있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친구들! 이 그림을 보세요. 그림이 여섯 개 병풍으로 이뤄졌다고 해서 `산수육곡병풍’이에요. 의재 선생님이 젊은 시절 그렸던 그림이죠.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연을 화폭에 옮겨 놨어요. 옆에 있는 그림과 비교해보세요. `화조팔곡병풍’은 의재 선생님이 부인 성 여사에게 회갑 선물로 준 그림입니다.”

 13일 오전 11시 광주 동구 운림동 의재 미술관.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의재 허백련 선생 그림 앞에 옹기종기 모여 류주영 큐레이터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학생들은 상설전시장을 둘러본 뒤 기획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에 참가한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무등산 허백련 유적지에서 의재의 눈으로 자연을 느껴 보기도 하고, 다례를 배우고, 수묵 체험 그림도 그렸다. 춘설원, 문향정, 관풍대 등 의재 유적지를 보고 탄성을 터뜨리기도 했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교육문화공동체 결’이 삼애헌에서 진행한 차문화교실은 체험학습의 백미였다. 교육문화공동체 결 박시훈 씨는 “춘설차는 무등산에서 나는 차인데, 차 문화 부흥을 위해 의재 선생이 광복 후 증심사 차밭을 맡아 춘설이라는 녹차와 홍차를 생산, 보급했다. 삼애헌은 의재 선생이 세운 농업기술학교 건물로 하늘과 땅, 사람을 사랑하자는 삼애사상은 예향 광주의 정신적 뿌리로 자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광주시민 모임은 일제고사를 거부한 학생·학부모와 함께 동구 운림동 의재미술관 등 의재 유적지에서 체험학습을 했다.



 차 따르는 법과 마시는 법을 배우고 차를 우려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진지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본 엄마들의 얼굴도 활짝 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광주시민모임은 이날 `의재 문화유적지 탐방 도우미’로 체험학습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아이들의 모습에 행복해한 사람들은 같이 길을 나선 학부모들이었다.

 김영임(가명) 씨는 무등산을 걷는 내내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김 씨는 아이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해 결석 처리를 하고 체험학습에 나왔다고 했다.

 김 씨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받아주는 교사들도 징계를 하기 때문에 아예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담임교사에게 일제고사 거부의 취지를 설명하고 아이가 이틀간 결석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박화선(가명) 씨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이날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박 씨는 “아이와 함께 일제고사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줬고,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간다는 말에 신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체험학습은 일제고사를 부활한 정부와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항의 표시다. 교사와 학교를 대상으로 한 싸움이 아니다”며 “오늘 참가한 엄마들은 용감한 엄마들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제고사 거부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부담스럽지만 초등학생까지 일제고사를 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는 시험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아이들은 역시 당당했다. 지난 3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갔던 이영우(16)군은 “시험 안 보고 체험학습을 떠나는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부모님에게 말 할 용기가 없어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군은 “3학년 들어 경쟁이 심해졌다. 학교 간 경쟁하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담임선생님은 `이번에도 성취도 평가를 안보느냐’고 물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비록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났지만 이날만큼은 행복한 하루였다.

이석호 기자 observer@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