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성난 사람들’

-1957 / 96분 / 미국 / 감독 : 시드니 루멧 / 출연 : 헨리 폰다, 리 J. 코브, 에드 베글리, E.G. 마샬 등



 이 영화는 극히 제한된 장소에서 12명의 배심원과 재판장, 재판소 직원, 살인 혐의로 기소된 소년 등 십여 명의 인물만이 등장한다. 때로 격렬하기는 하지만 배심원실 안에서 오가는 대화가 전부인 영화다.

 웅장한 법원 건물의 228호 법정. 한 소년의 살인사건에 관해 재판관은 이제 최종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음을 배심원단에게 설명한다. 유·무죄 여부는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하며, 유죄 시 사형이 확정된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순박하게만 보이는 소년은 법정을 나가는 배심원들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12명의 배심원들이 배심원실에 모이자 문이 잠긴다. 배심원들은 자리 순으로 번호를 매긴다. 의견을 먼저 나눌 것인가 투표를 할 것인가로 분분하다, 투표가 실시된다. 11대 1, 8번 사내(헨리 폰다)가 무죄를 주장한다.

 8번 사내는 이야기를 더 나누자고 요구하고, 소년이 학대받은 사실을 주지시킨다. 유죄로 분위기를 몬 3번 사내는 아래층 노인과 옆집 여자의 증언을 얘기하며 논의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번호 순대로 의견이 말해진다.

 5번 사내는 패스를 하고, 6번 사내는 처음부터 확신했다고 한다. 7번은 소년이 전과 5범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범죄를 나열한다. 3번은 빈민가와 범죄를 연결하려 든다. 5번은 자신도 빈민가 출신이라고 항의한다.

 8번은 비밀 투표를 제안하고, 11명이 유죄를 주장한다면 자신도 동의하겠다고 한다. 9번이 무죄에 동의하며, 10대 2가 된다.

 9번은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하고 싶었소. 이 신사 분은 혼자 반대의견을 냈소. 그 애가 유죄라고 하는 게 아니라 확실치 않다는 거죠. 혼자 의견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지원을 하는 거요. 이 사람 의견을 존중해서요. 그 소년은 아마 유죄일 겁니다. 그렇지만 더 얘기를 해 보죠.”

 아래층 노인과 옆집 여자의 증언에 대해 논쟁이 오간다. 인정할만한 의문이 부각되자 새로운 사실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유·무죄 비율은 이제 9대 3이 된다. 3번과 10번을 축으로 한 유죄 주장 측과 8번과 9번을 축으로 한 무죄 추정 측의 격론이 이어지고, 11번이 이렇게 정리를 한다.

 “우린 싸우려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우린 책임이 있어요. 전 항상 민주주의가 위대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통지를 받았소. 법정에 와서 우리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유·무죄 여부를 판단해달란 통지를 받았단 말이오. 이 평결 때문에 득이나 실이 없소. 그래서 우리가 강한 거요. 사적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다시 투표를 한다. 이번엔 공개 투표다. 6대 6이 된다. 유죄 측은 무죄 측의 머리가 어찌 된 것 아니냐고 몰아세운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시 논의가 시작된다. 이성적인 모습을 견지하는 4번은 소년이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공격하나, 8번은 4번의 기억을 추적해가며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방증한다.

 이번에는 2번 사내가 내리 찌른 칼의 각도를 문제 삼는다. 소년은 아버지보다 17센티나 적은데 상처는 위에서 아래로 찌른 것이다. 4번이 잭나이프 사용법을 말하며, 소년의 무죄 추정이 다시 힘을 얻는다. 이제 3대 9가 된다. 10번은 또 다시 범죄자들에 대한 맹목적 분노를 표출하나, 모두들 등을 돌린다. 10번이 풀이 꺾이자 8번이 다시 한 번 나선다.

 “이럴 때 개인적 편견이 드러나게 마련이죠.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나도 진실이 뭔지는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겁니다. 아홉 명은 피고가 무죄라고 느끼는데, 이것도 확률의 도박이고 우리가 틀릴 수도 있죠. 어쩌면 죄인을 풀어주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다면, 그게 우리 법체계의 우수한 점인데, 배심원들은 확실한 점이 없다면 유죄선고를 내릴 수가 없죠.” 결국 3번 홀로 남고, 격렬하게 저항하던 그도 결국은 풀이 죽는다.

 배심원실에 모인 12명의 남자들은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12명이 보여주는 12가지의 성격은 그들이 갖고 있는 직업과 출신 배경, 현재 처한 상황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음을 대화 곳곳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다른 성격이 소년의 살인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상당수의 배심원들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자신들의 아집과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1957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배심원 모두가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12명 각각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두고 저마다 다른 시각을 보이는 사회적 현상을 읽는 데 대단히 유용하다.

 서로 다른 시각들 중 편견이 강한 어느 한 쪽이 독주할 때, 사회에는 상처 입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8번과 같은 소수의 의견을 가진 이들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일은 인내심을 요구하겠지만, 분노를 버린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천세진 <시인>



 천세진님은 눈만 들면 산밖에 보이지 않는 속리산 자락 충북 보은에서 나고자랐습니다. 하여 여전히 산을 동경하고 있는 그는 광주에서 시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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