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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생각으로는 참된 세계를 알지 못 한다
<8>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박해용
기사 게재일 : 2013-02-19 06:00:00
▲ 영화 `생텀’중 한 장면.

 지금 우리는 더 절실하게 `빵’보다 `장미’가 필요한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인문학에 눈 돌리는 이유입니다. 대학으로부터 탈주해 대학 밖에서 대안을 꿈꾸는 학문공동체 `생생공감의 무등지성’이 매주 한 차례 인문학으로 독자와 만납니다. <편집자주>



 사람은 각자 제 방식대로 생각하고 생각에 따라서 행동한다. 나이, 성별,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행위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사고방식에 따라서 생각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생각하는 행위는 개별적이다.

 이렇게 볼 때, 생각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인간은 생각할 수 없으며,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생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리 쉽지 않게 여겨진다. 사람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의 틀 속에 갇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나의 `습관’처럼 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적인 생각은 우리를 참된 것과는 거리가 먼 동굴 안에 묶어놓는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의 동굴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살고 있지만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오류와 편견에서 갇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생각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가장 흥미로운 비유를 든 사람이 바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BC 428~BC 348)이다.

 플라톤은 서양철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생각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이 말하는 생각놀이 중에서 `동굴의 비유’는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지만, 그럼에도 동굴의 비유는 여전히 생각에 관한 가장 중요한 비유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언제나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철학적 비유이다. 그는 우리가 갇혀 있는 생각의 동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하의 동굴 안에 살고 있으며, 그 동굴 속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다리와 목이 족쇄에 묶인 채 지내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자리에 고정된 채로 자기 앞쪽만 볼 수 있을 뿐, 머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거나 뒤를 돌아 볼 수 없다. 오직 자신 앞에 보이는 것만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볼 수 있는 것만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참된 것으로 여기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우리는) 사슬에 묶여 동굴 속에 갇힌 죄수와 같아서 그림자의 세계를 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동굴 속의 죄수들은 동굴 밖의 태양이 빛나는 세계를 보지도 알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굴 속의 인간은 참된 세계를 알지 못하고 동굴 안에서 볼 수 있는 세계만이 참된 세계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밝은 태양의 세계를 생각조차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동굴 밖의 태양이 비추는 세계는 곧 이데아(참, 진리)의 세계이고, 동굴 안은 감각에 의해 지배되는 현혹과 오류의 세계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세계를 태양 빛 아래서, 즉 생각함(철학함)으로써 참된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자신이 갇혀 있는 생각의 동굴들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동굴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가까이는 미의 기준을 외모에서만 찾으려는 `미모지상주의’라는 생각의 동굴, 혹은 사람의 조건을 소유의 정도로만 평가하려는 `자본만능주의’라는 생각의 동굴에서 시작하여 자신은 항상 옳게 행동하는데, 다른 사람이 항상 문제라고 생각하는 동굴, 잘못의 원인을 항상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혹은 다른 일에서 찾는 동굴, 나는 열심히 하는 데 일이 안 되는 이유는 내 주변이 문제라고 하는 생각의 동굴,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나 자신도 최근 자신의 생각의 동굴을 경험한 적이 있다. 몇 달 전 주말에 진도를 여행했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진도의 한적한 길을 걷다가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 할머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때의 경험에서 내 안의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80을 넘기신 할머니는 자신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아주 밝은 모습으로 “나는 어쩌다가 여기서 맹글어져서 평생 여기서만 살다봉께 이렇게 살아부렀어! 나는 다른 디는 암것도 몰러!” 라고 하였다. 처음 본 낯선 나에게 그 할머니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곧장 “아! 이 할머니는 평생 이 한곳에서만 사셨으니 세상에 대해서는 아시는 것이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한 번도 진도를 떠난 적이 없이 이곳에서만 살았으니 할머니의 생활은 곧 동굴 속의 생활이었으려니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 자신이야말로 생각의 동굴 속에 갇혀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이 내게 “그 할머니에 대해서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는가?”하고 물었을 때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가 너무나 쉽게 그 할머니의 생활을 동굴 속의 삶이라고 판단했고, 그리고 나 자신은 그 할머니처럼 과연 낯선 사람에게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열린 마음을 가졌는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이야말로 할머니처럼 타인에게 솔직한 말을 할 수 없는, 생각의 동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굴을 벗어나는 지름길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생각의 동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인간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파리통 속의 파리들로 비유했다.

 파리통에 갇힌 파리들은 그곳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서 빛이 오는 곳으로만 질주하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은 파리보다 좀 더 현명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고정된 동굴의 생각을 갖도록 한 그 원인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라는 자기반성이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할 때다. 타인의 생각이 나의 생각으로 둔갑하기가 어느 때보다 쉽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나의 생각’이어야 하며,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조금은 불편한 질문과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도대체 나는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갖고 있는가? 나는 남과 다른 생각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에 대한 귀차니즘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그저 `예’와 `아니오’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더 나아가서 나는 타인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는가? 나에게 익숙하고 그래서 편안한 생각의 동굴을 벗어나기 위해서,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은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리고 가장 자주 만나는 바로 그 사람에게 나는 과연 어떤 생각과 태도를 취하면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져봐야 한다.

박해용 <전남대학교 철학과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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