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봄·여름 지나 결실 맺은 붉은 이파리

 계절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나뭇잎과 동무하여 내려오고 있다.

 계절은 봄에 꽃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새순과 더불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을 오를 때는 연분홍의 수줍음으로 산을 오르더니 내려올 때는 빨갛고, 노랗게 잔뜩 상기되어 내려오고 있다.

 단풍. 단풍이 든 것이다.

 

단풍이란 무슨 뜻일까?

 노란 은행잎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붉은 단풍나무를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잎들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그럼 단풍은 어떤 색일까? 사람들은 단풍이라 하면 붉은색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단풍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붉은 색을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풍은 붉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붉은색을 포함하여 나뭇잎이 변해가는 여러 가지 색들이 있다. 그런데도 붉은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붉은 것은 열정적이고, 뜨거운 색이어서 뇌리에 깊게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단풍(丹楓)은 붉은 ‘단’에 단풍나무 ‘풍’ 자이다. 단풍나무 ‘풍’은 나무 ‘목’에 바람 ‘풍’ 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단풍은 붉은 바람이 나무에 부는 것이다. “나무에 붉은 바람이 분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감상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단풍이다. 그리고 붉은 빛을 강조한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 중에서 유독 붉은 빛이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유독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봄에 피는 꽃이 그러하며, 겨울에 내리는 눈이 그러하다. 그리고 단풍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단풍으로 인해 설레는 것은 봄의 흥분과는 다르고, 겨울의 편안함과는 다르다. 가을의 설레임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설레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가을의 멋은, 낙엽이 주는 풍미는 역시 고독한 설레임이고 외로운 가슴이 뛰는 것이다. 가을에 지는 낙엽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지나 보내고, 결실을 맺는 가을을 갈무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을의 멋을 만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내가 사는 주변인 지리산 뱀사골에도 아주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그리고 길에서 단풍을 뒤로하고 멋지게 인증 샷을 찍는다. 그런데 불편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데 불편하다. 삼삼오오여도, 혼자 멋을 내며 사진을 찍는데 불편하다. 국립공원의 멋들어진 산을 배경 삼아 단풍을 찍는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가로수로 심어진 단풍나무 때문이다. 그냥 단풍나무가 아니라 새순 때부터 붉은 잎을 달고 나오는 ‘노무라단풍’이어서 불편하다. 우리의 산에, 아름다운 국립공원에 단풍을 구경을 와서 노무라단풍 앞에서 멋있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불편하다.

 

국립공원에 왜 노무라 단풍 심었는지

 국립공원은 생태계를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 내에서는 나뭇잎 하나를 따서도 안 되며, 가을이 되어 말라버린 억새를 하나 꺾어도 안 된다. 사실 몇 년 전에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단풍을 보러 성삼재에 올랐었다. 그리고는 억새를 꺾어서 민들레 씨앗을 후하고 불어 날리듯이 입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보았다. 그런데 억새는 민들레처럼 날리지 않았다. 이 광경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 공단 직원이 소리치며 달려와서는 혼을 낸다. 국립공원에서는 풀하나 나뭇잎 하나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 모르느냐고 아주 강하게 이야기를 한다. 아들 앞에서 많이 머쓱해졌다. 그렇지만 잘못한 것은 맞기에 미안하다고 했다. 잠시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국립공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 왜 일본단풍나무와 그것을 개량한 단풍을 심었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이 그냥 단풍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가 일본산이란 것을 알면 쓴웃음을 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잘못된 것은 바로잡았으면 한다. 이야기하는 김에 한두 가지를 더 보태려 한다. 뱀사골에서 성삼재로 가는 길에 심어진 만첩빈도리(겹꽃일본말발도리)도 정리했으면 좋겠고, 성삼재 주차장에 심어진 영산홍(일본철쭉을 개량해서 만든 것)도 정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립공원이 진짜로 우리의 산이 되고, 인간의 간섭이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사람들은 산의 아름다움을 만나고자 모여들고 있다. 산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계절을 내려보내고 있다. 먼 산의 능선에서 시작한 단풍은 이미 사람의 마을 가로수에까지 내려와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낙엽이 흩날린다. 어린 날 책갈피에 꽂아둔 은행잎이 생각난다. 그래 은행잎 하나를 주워야겠다.

이창수 <숲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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