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메끈 동여매고 뻘에 빠지러 가자

▲ 이 몸을 버리지 않고는 나아가지 못하리. 저 험한 길을, 단 한 걸음도. 한없는 무릎걸음과 쉼없는 호미질로 이룬 바지락 더미.
 이 몸을 버리지 않고는 거듭 나지 못하리.

 나아가지 못하리.

 발빠진 남녘 갯벌에 속맘을 부리지 않고는

 저 험한 길을

 단 한 걸음도

 (김기홍, ‘사람의 바다’ 중)

 

 신들메를 단단히 동여맸다. 한사코 쩍쩍 잡아끄는 뻘밭이다.

 행여 벗겨질세라 ‘내 식대로’ 야물게 쨈맨 들메끈.

 내 오늘 진 자리로 나아가리라 작정하고 나선 ‘진신’이라고 하기엔 사뭇 허술한 신발들이다.

 쩍이나 돌부리에 발바닥이 다치지 않으면 그뿐. 젖지 않으려고,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신은 신발이 아니다. 발자국마다 젖을 줄 알고, 뻘 속에 빠질 줄 알고 차린 행장이다.

 자식은 마른 자리에 두고 진 자리를 지키며 건너온 어매들의 생애. 뻘만큼 무거웠던 삶의 무게는 근수를 재어 본 적도 없다. 신들메 동여매고 뻘에 빠지러 나선 어매들의 봄날.

 

 “놈의 바구리 안봐. 내야 바구리만 보제”

 “개 텄어. 올로는 첨이여, 첨.”

 ‘첨’이란 말에 들뜸과 설렘이 깃든다. 완도 군외면 영흥리 개 튼 날. 4월22일에 이어 이튿날인 23일까지 내리 개를 텄다.

 물이 쓰려면 아직 한참 멀었건만, 갯바닥에 ‘칼출근’은 없다. 모두 일찌거니 서둘러 나와선 이윽고 물이 빠지기를 지켜보며 기다린다.

 “개 트문 한 집에 한나썩 나와. 둘이 나오문 안 되아. 원래 옛날부텀 규칙이 그래. 그 규칙은 꼭 지캐야 하는 것이여.”

 김금심(60) 아짐의 말씀. 엄정하게 지켜온 규칙은 공동의 어장인 갯벌을 보존해온 힘, 마을공동체를 이어온 힘이다.

 이윽고 ‘때’가 되었다. 너른 갯벌로 금세 흩어진 어매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는다.

 껍데기들끼리 부딪칠 때마다 ‘바지락바지락’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바지락. 전라도 어매들은 반지락이라 한다. 오늘 반지락 작업에 나선 이들은 마흔 명 남짓. 썩썩썩, 호미와 갯흙 부딪히는 소리만이 갯벌에 가득 찬다.

 박만석(78) 할매는 이제 갯바닥이 점점 힘에 부친다.

 “걸음마다 뻘이 잡아댕개. 근께 고무신을 짱짱하니 짬매고 나와. 벗어지문 새로 뭉끄니라고 그 새에 조개 몇 개는 못 파. 장화 신으문 몸뚱이가 못 이기고.”

 검정고무신을 색색 노끈으로 단단하게 묶은 할매. 각시 때는 일 무서운 줄 몰랐다.

 “시방은 뻘에 나올라문 마음에 채비를 하고 나와.”

 물새처럼 갯벌에 엎드린 유삼례(77) 할매.

 “인자 그만 가도 좋은 나이여. 가는 날까지 오남매 울 아그들 안 성가시게 할라고 뙤작뙤작 움직거려. 부모가 되아갖고 옷도 따숩게 못 입히고 신도 지대로 못 신기고 어찌나 서럽게 키와논 애기들인께.”

 할매는 “쩌어 섬, 째깐한 섬, 꽃이 많다고 꽃섬”에서 시집왔다.

 “거그는 이런 뻘이 없는 디여. 뻘일을 안해 봤어. 여그 온께 만날 뻘에 살아. 반지락 파고 석화 까고. 시집와서 첨에는 울고 댕갰어. 물팍 우게까지 찬 뻘에 들어가서 발을 못 뺀께. 첨에는 그렇게 뻘을 못이겼어. 끝내 못이길 줄 알았는디 난중에는 이기게 되았어.”

 ‘끝내’와 ‘난중에는’이라는 두 낱말에 삼례할머니 생애의 대하드라마가 압축돼 있다.

 뻘을 이긴다는 것은 삶을 이긴다는 것과 같았다. 밤으로 낮으로 뻘에서 기어도 자식은 뻘밭에 내놓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고통은 당연히 어미만의 몫이어야 했다.

 “우리 시어무니가 보듬아줘서 살았어. 우리 시어무니는 밸일이 있어도 사람을 하녕 웃음시롱 대해. 나는 그런 것을 배왔어.”

 뻘을 이기는 법을 배우고 하녕 웃는 법을 배운 할매.

 “뻘에 나오문 놈의 바구리 안봐. 내야 바구리만 보제.”

 ‘놈의 바구리’에 헛헛해지는 욕심은 가져 본 적 없다.

 

 ‘뻘일’ 솜씨 좋아야 우대

 “우리는 생금밭을 보듬고 살아. 일생을 캐도 또 오문 있고, 또 오문 있고.” 갯바닥은 어매들의 현금통장.

 “옛날에는 육성회비 못내서 아그들이 학교에서 쬐껴갖고 오고 그랬어. 그래도 요 갯것이 있었기 따문에 게우게우 자석들 공부도 갈치고 살아나왔제.”

 밭에 엎드리고 갯바닥에 엎드려 살아온 시간과 몸공이 쌓이고 쌓여 김영애(73) 할매는 5남매를 키워냈다.

 “우리 여흥리(영흥리) 반지락은 유명났어. 맛이 좋다고 장에서도 다 알아줘.”

 그 명품을 만드는 것은 ‘바닥’이다.

 “여그는 물이 자꼬 들었다 났다 한께 이 뻘이 밥이 좋아. 뻘이 존께 반지락이고 꿀이고 갯것이 다 맛나. (반지락) 캐문 항상 자석들한테 몬자 부쳐줘.”

 이맘때 고향에서 봄소식이라고 날아가는 ‘봄날의 맛’인 것이다.

 떠돌이 무사처럼 작대기를 등허리에 가로질러 메고 뻘에 엎드린 최종예(83) 할매.

 “물때라야 허제. 내 맘대로 허는 것이 아녀. 공동으로 트제, 내맘대로 못 터. 이란 디서는 내 맘대로 못해.”

 갯벌에 기대 사는 법이 그러하다.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마을공동체가 그리그리 하자고 뜻을 모은 대로 살아가는 것.

 윤이순(72) 할매도 이 동네 다른 할매들처럼 ‘해우 고상’을 원없이 했다. 그 추운 시한에 그 땡땡 언 바다에서 해우(김) 건져다 물에 풀어서 뜨고 널고 몰리고 하던 ‘해우 고상’을 건너 온 영흥리 할매들에게 삼동 새복에 해우 안하는 시상은 호강시런 시상이다.

 영흥리에서 가장 우대 받는 솜씨는 ‘뻘일’ 하는 솜씨다.

 “나는 애래서부터 해봤어. 요런 디는 젖만 띠먼 뻘로 나가제. 애려도 못 놀아. 누가 시긴 것이 아녀. 부모네가 일헌디 도와야겄다 그 맘이제. 일찌거니 일을 허문 그만치 솜씨가 생겨. 솜씨 없는 사람은 못허고 솜씨 좋은 사람은 잘허고.”

 “나는 물짜여, 찍지 마”라고 결연하게 선언하는 김영애 할매는 당신 말고는 자랑할 게 수두룩하다. “이것이 우리 복댕이여”라고 그 공을 치켜세우는 것은 호미.

 “요 호맹이가 일을 많이 해. 반지락도 캐고 밭도 매고 나랑 일을 겁나 많이 하는 일동무여.”

 영화 <워낭소리>의 늙은 일소뿐이랴. 쥔장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나누어 갖고 삶의 고락을 같이 한 ‘반려(伴侶)’. 어매들은 오늘도 각자의 일동무와 더불어 동고동락중.

 

 ‘도론 사리’를 기다리며

 “표시할라고, 바구리가 서로 바꽈질 수도 있응께.”

 ‘표시’라는 효용을 위해 슬쩍 잘라 매단 자투리 천 하나에도 의도치 않은 미감이 천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나풀거리는 빨간 천조각을 곱게 매단 다라이의 임자는 윤계례(82) 할매.

 “다 여물었어, 알이 꽉꽉 들어찼어. 요랄 때, 복숭아꽃 필 때가 질로 맛나.”

 김경님(81) 할매는 ‘요랄 때’ 마침 고향집을 찾은 아들에게 어제 캔 바지락을 들려 보냈다.

 “아들이 왔다가, 온 아직(오늘 아침)에 갔어. 그래서 폴도 안하고 아들한테 줘서 보냈어. 마치맞게 개 터서 천만다행이여. 뭐이라도 줘서 보낸께 맘이 호복하제.”

 89세 왕언니 이말례 할매도 바지락 작업에 나섰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그날로부텀 손에 물 모를 날 없이 살았어. 잠도 엎져서만 자고. 새복에 못 인날깨비 엎져서 자는 거여. 눈 뜨문 일이여. 산에 가문 나무하고 밭에 가문 풀 매고 바다에 나오문 갯것 하고.”

 그 평생의 고생을 할매는 한마디로 축약한다.

 “내 고생은 역사가 지퍼(깊어).”

 “오늘 하문 인자 ‘도론(돌아오는) 사리’에 허제.”

 새로 사리가 돌아오면 영흥리 할매들은 다시 뻘에 나올 것이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라던가. 류시화 시인의 말이다.

 달은 태양이랑 나란히 바닷물을 힘써 끌어당길 적 가장 널룹게 열린 갯벌에 물새 부리 같은 호맹이나 조새를 들고 와르르 어크러지는 어매들 때문에, ‘도론 사리’를 기다리는 어매들 때문에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 아닐까.

 갯바닥에서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것은 다라이에 들어 찬 바지락이다.

 “허리 펼 새가 없어. 있는 대로 쫓아댕길란께.”

 한없는 무릎걸음과 쉼없는 호미질로 이룬 바지락 더미 더미.

 이윽고 갯바닥에서 나갈 시간이 되었다. ‘물때’가 일러주는 퇴근. 저만치 갯벌 들목에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들이 ‘마중’ 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두둑하니 채워진 무거운 다라이를 옮기는 것은 아버지들의 몫. ‘마중’이란 따뜻한 말로 갯바닥에서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바지락 여문 봄날이 저문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기자/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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