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치레 말고 밭치레 하라” 하였다. 그리 살았다. 집이든 사람이든 겉치레에 과람(過濫)한 것은 남을 속이는 부박한 짓이라 여겼다.

 그 고샅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만나는 그 집의 앞얼굴엔 네 다발의 마늘이 걸려 있다. 박분순(정읍 산내면 예덕리 상례마을) 어매, 저 마늘을 처마 아래 매어달기까지 그 밭에 알현하는 걸음을 몇 번이나 하였을꼬. 흰 눈밭에 파릇한 팔 치켜들고서 삼동추위 암시랑토 안허다고 엄살 없이 혹석없이 견뎌내며 단단해진 매운 쪽뿌리. 문패에 나란히 걸린 어매와 아들의 이름자와 격이 맞는 것으로 이것 아니고 무엇을 내어 걸 것인가.

 오직 거죽만을 치레하는 자들은 닿을 수 없는 경지, 수납의 고수들이 무심하게 펼쳐놓은 수납의 기술이 여기 있다.

 

 “시방 머시 중헌고”

 조랑조랑 주렁주렁 밭두렁 공력

 수상쩍고 어여쁘다. 헛간 지붕 아래 조랑조랑 봉다리.

 나주 왕곡면 송죽리 박승천(82)·장인숙(80) 어르신댁이다. ‘살림의 여왕’ 이라 이름난 이들이 이용한다는 수납 제품들이 많고 많지만 어매들에겐 ‘꺼멍봉다리’야말로 멀티 수납 도우미. 어매들의 몸공이 그대로 갈무리돼 있는 봉다리 봉다리는 먹이고 나누며 식구들을 건사해 온 힘의 발원처이다. 시금치씨며 상추씨며 다음 농사를 기약하는 의지와도 같은 씨앗들이 애틋하게 들어차 있고, 설이나 추석에 온 식구 한 밥상 앞에 모일 때 먹일 고사리며 호박고지며 죽순이며 무말랭이며 온갖 묵나물이 살뜰하게 쟁여져 있다.

 ‘삼각형으로 생개 갖고 까시 마니로(같이) 쑤실라고 헌 것’. 이것은 ‘시금추씨’에 대한 박승천 어르신 식의 정의. 가까이,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고 살아온 이에게는 봉다리 속 씨앗 하나도 그리 어여쁜 것.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문정희, ‘성공시대’ 중)

 대형 냉장고 없어도 번듯한 옷장 같은 것은 없어도 벼랑박마다 매어달린 망태기 망태기면 ‘성공시대’.

 바람 들명날명 노닐다 가는 자리에 대나무 하나 가로지르고 주렁주렁 조랑조랑 매달아 놓은 결실들이다.

 밭하고 내 몸뚱아리는 놀려서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온 ‘농자천하지대본’의 밭두렁 공력이 오롯하게 내걸린 자리.

 ‘해서 다르고 아니 해서 다르다’는 것을 아는 그이들이다. 발태죽 위에 발태죽을 올려 시방 내어걸린 마늘이며 양파가 저렇게 또록또록 단단하게 여문 것이다.

 “인자 꼬치허고 콩허고 밭에 넣어놨어.”

 절로 크는 것 없는 밭에 그저 ‘넣어두었다’ 하신다. 장차 이 여름내 땀바가지를 쏟아부을 것임에도 도무지 생색 없다.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기자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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