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물을 대면서

 정말 짜증스러우리 만치 무덥다. 어지간하면 참을 수 있을 법 한데 감당하기 어려운 삼복의 더위가 연일 지속된다. 동남아의 국가처럼 스콜이라도 내려 준다면 더 없이 고마울 것인데 하늘은 메마르고 지상은 땅바닥이 갈라진다. 이런날 농부의 심정은 애간장이 타 들어간다. 저수지나 수로에 기대서 논에 물길을 잡아주어야 튼실하게 뿌리를 확장하며 9월의 태풍도 끄떡없이 견딜 터인데 서로가 물을 대다보니 아래쪽 논으로 물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8월초 담양의 고향마을에서 논이 말라간다는 전갈을 받고 혼자 논길 위에 서 보았다. 하지만 물대기가 쉽지 않다. 먼저 대고 있는 물줄기를 자를 수 없어 기다려야 한다거나 어떤 곳은 아예 저수지 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수술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어머니를 모시고 이른 아침에 다시 출발했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신터라 지혜가 있으시다. 어머니 덕분에 두시간 정도만에 두곳의 논에 물줄기를 잡았다. 한데 마지막 하나가 문제였다. 물은 수로를 통해 펑펑 쏟아지는데 시멘트 농로 속으로 놓아둔 주름관이 막혔는지 우리 논쪽으로 물이 아예 가지 않는 것이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 보일러 관을 가져와 뚫어 보았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무언가에 걸린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급기야 눈안으로 짜릿한 소금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손을 댔으니 무언가 결판을 내야한다. 시멘트 농로를 뜯어낼 수는 없는 법인데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아가 거기 어디 대 막가지 있는가 봐라. 대나무가 낭창 거리니까 휠씬 수월하게 뚫을 것이야. 재작년에도 그렇게 뚫었어야”. 대나무를 찾아 본다. 오래되어 노랗게 잘 익은 대나무가 풀숲 사이에 보인다. 수풀을 베어내고 아래로 내려가 관로에 쑤셔 넣어 보았다. 멈춤없이 잘 들어간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 뭉턱 하고 걸리더니 이것을 뚫어낸다. 물줄기가 한꺼번에 모래 자갈과 낙엽을 동반하여 몸으로 쏟아져 온다. 그럼에도 이 시원하고 짜릿한 감응은 오랫동안 전류처럼 흘러간다. 드디어 세 곳의 논에 물을 시원스럽게 공급했다.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이라는 시가 스쳐간다. 이렇게 물의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가재며 장어와 다슬기를 키워낸 고향의 저수지와 시냇가를 이야기한다. 이제는 거의 만나기 힘든 것들이 되어 버렸다며, 옛 맛을 떠올리신다. 생각해보니 영산강 자락도 하구언이 들어서면서 장어의 회귀로가 막힌 것 같다. 간혹 광주댐에서 커다란 장어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90년대에 인위적으로 넣어준 장어일 뿐이다. 물꼬처럼 이나라의 강물이 바다와 막힘없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보성을 가다

 보성문화원에 볼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시행하는 사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보성은 그야말로 보배로운 지역으로 내게 남아있다. 지금이야 보성하면 녹차밭을 떠올리지만 예전의 보성은 완곡하고 의기로운 곳으로 유명했다. 일례로 일제강점기 향교에서 제사에 쓸 술을 만들자 주세령에 위배했다고 군청의 재무중임인 택전일중이 법적 책임을 물으며 향교에서 주조하고 있는 술독의 봉인을 열었다. 이에 도유사이자 유림의 총수인 박남현 참판이 나서서 택전을 향교로 잡아오고“동방성현을 제사 지내는 문묘대제에 쓸 성주에 야만족 너희 일본놈의 더러운 손을 댔으니 이는 대성현을 모독하는 처사로서 사형에 처한다”고 결박하고 화형에 처하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일제의 경찰서장과 군수가 향교 앞에 꿇고 사죄하고 애원하여 택전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택전이 풀려나자 도경에 병력 지원을 요청하고 이 일의 주모자와 가담자 70여명을 구금한 것이다. 일제의 갖은 취조와 고문에 불응하며 지내던 사이, 군내에서는 최창순이 나서서 유림들을 한데 모아 성토대회를 열고 전국적으로 “주세령 반대”, “일인관리 규탄”, “유림총궐기”를 도모하였다. 전국 유림이 들끓는 일이 발생하자 일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최창순을 구금하였다가 38일만에 풀어주고 사건의 주모자 10인도 기소유예로 풀어주었다. 이후 훈령을 통해 향교의 제주는 양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서슬퍼런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이 사건은 작은 일이면서도 항일운동에 있어 생활속 실천이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키는지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이런 보성의 정신은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에게도 있었고, 호란에 의병을 일으키고 호남절의록을 쓴 우산 안방준에게도 있었다. 한편 일제의 주세령은 민간에서 가용주를 만들던 것들을 국가가 통제함으로서 우리술의 전통이 무너지고 일제 자본에 종속되는 단초가 되었던 일이었음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하여튼 어느 지역을 가던 그 지역에 대한 역사의 페이지를 익히고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여행법이기도 하다.

 

 ▶보성강의 새벽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오면서 만났던 보성강 물줄기가 시원하던데 어디가 물고기가 많으냐고 물었다. 몇군데를 꼽아준다. 모두 보성호 언저리다. 보성호에 갔다. 경관이 수려하다. 그 수려함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조사들이 앉아 있는 곳은 모두 공격사면에 해당하는 곳이다. 물줄기가 흘러오다가 급격하게 물살을 형성하며 가장자리의 흙을 털어내는 것으로 남은 것은 바위뿐이다. 바위에 좌대를 펴고 낚시대 한두대를 놓고 물고기와 씨름을 하는 것이다. 찌를 보니 수심이 깊다. 외부의 온도가 35도에 육박한데 지표면 물의 온도는 근 30도에 달한다. 하지만 4m 정도의 내부 수온은 훨씬 낳다. 다른 곳의 수심이 1.5m 정도로 뜨거워서 물고기가 견디지 못할 기온인데 반해 깊은 수심은 이들이 피서하기에 적정한 온도를 제공하는 것이고, 조사들은 이곳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눈으로 이들의 조과와 낚시법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을 달렸다. 강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오는 가운데 일행들과 텐트를 치고 캠핑겸 낚시에 몰입했다.

 하지만 새벽을 깨우며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물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황홀경에 빠졌다. 몰입의 기술이라는 낚시 보다는 풍경이 언제나 나를 압도한다. 보성강은 사자산과 제암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다. 수량이 풍부한 이곳은 동복쪽에서 오는 물줄기와 합류하여 주암호에 머물고, 또 흘러내려 대황강이라는 물자락을 석곡과 곡성에 이루다 압록에서 섬진강의 본류대와 합수한다. 강의 유역이 넓고 물줄기가 청량하여 풍경을 감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바로 이 강의 특징이다. 특히나 저습지를 형성한 곳에 버드나무와 갈대과 수초와 푸른 물줄기와 그곳에 피어오르는 안개와 안개를 침투하는 햇살, 그 사이로 한가로이 나는 새들의 풍광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 강에서 어머니의 옛 입맛을 찾게 해준다는 빌미로 낚시대를 드리우는 것 자체가 한편의 핑계이면서도 좋은 구실이 되었다.

 풍경에 잠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별이 지상에 내려앉는 밤과 적막함의 새벽, 동터오는 아침이 아름다운 보성강, 한번 떠나 보시기 바란다. 여행은 낮에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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