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의 고향 중국 고도 서안(시안) 부자 기행<1>

▲ 진시왕릉 병마용갱.

 올 여름 여행은 순전히 역사를 좋아하는 고2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삼복더위에 굳이 우리보다 더 더운 중국 서안을 택한 것도 순전히 그것 때문이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게 아니니 아빠로서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길 안내자를 해주고 싶었다. 나중에야 어떻든 희미한 아빠의 흔적이라도 남겨주고 싶었다. 인생은 정말 빨리 간다. 푸르른 젊은 시절 역시 미처 푸르름을 느낄 새도 없이 휙 지나갔다. 그러니 머리 속에 든 건전한 생각들은 빨리 빨리 실천으로 옮겨야 좋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내 나름대로는 무척 흐뭇하고 좋은 생각이었다고 자화자찬한다. 여름방학 성수기여서 가격도 비쌌고 가는 곳 어디나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그건 가고자 보고자 하는 자에겐 그리 큰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난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아들에겐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인천공항 역시 처음이었다. 처음 그 곳을 가 보았을 때 내 느낌은 경이감이었다. 수없이 많은 각국의 멋지고 화려한 크고 작은 비행기들, 외국 사람들과 승무원들 그리고 멋진 공항 경비원들이 섞인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의 물결, 그리고 비행기 수속 절차같은 그런 것들을 부모로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에 혼자 혹은 친구들이랑 가게 됐을 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비행기 좌석은 창가 자리가 배정됐다. 아들에게 구름 위를 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었다. 처음 비행기 타 보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창가 자리를 내주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행시간은 겨우 네 시간이었다. 그 동안 기내식도 맛보고 음료수도 한 번 나왔다. 비행기를 타보면 이 때가 가장 부담스럽고 설레는 시간이다. 승무원이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는데 모를 때가 가장 난감한 순간이다. 아들은 이 일도 척척 해냈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은근히 대견스러웠다. `그래! 이건 국제시민으로 당당히 나아갈 첫 통관의례가 될 거야!’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순간이 가장 조마조마한 순간이다. 주로 그럴 때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뉴스가 자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사히 착륙하면 늘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치게 된다. 아들은 좀 무덤덤했다. 오히려 다행이다. 서안 공항은 신공항이었다. 인천공항의 절반 정도 되고 아직은 중국 비행기만 보이는 중형급 국제공항이었다. 중국의 새로 발전하는 모든 도시들이 그렇듯 여기도 금방 여러 항공사가 취항할 것이다. 바야흐로 중국은 전 세계의 모든 것을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일단 판만 벌리면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15억 인구의 힘이다. 무사히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가자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조선족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일정을 이 사람에게 의존해야 할 텐데!’ 우리 일행(공항에서 처음 만난 14명)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대충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호텔은 좋았다. 건물 주변 자연환경, 인테리어, 냄새, 소음, 종업원들의 친절, 편의시설, 아침식사 모든 게 합격점이었다. 단지 시내에서 너무 벗어나 아들이 그토록 소원하던 야시장 구경을 못 하게 된 것이 아쉬웠다. 맘 맞는 일행이 있으면 함께 택시라도 불러 타고 나갈 텐데 일행 모두가 나이층이 높아서 피곤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3일 동안 피곤에 쩔어 주로 호텔 안에서만 보냈다. 호텔 내 수영장도 찾아가고 헬스장도 가보고 강변도 매일 산책하면서 나름 알차게 보냈다.

 

 ▶화청지

 다음날 오전 일정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사실 불륜에 가까운 애정행각)이 펼쳐졌던 화청지(일명 온천탕)라는 곳이었다. 일정에 포함되어 가는 곳이지만 굳이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가이드가 아침부터 작정을 하고 마이크를 들고 해설을 시작하는데 `와우! 그 해박한 지식과 프로근성이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족집게 학원 강사 수준이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의 끝없는 해설을 무척 좋아했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알아서 자든지 딴 짓을 했다.

 중국 사람들은 `구경신’이 씌였는지 옛날 목욕탕을 구경하려는 이들로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구경을 위한 구경인지 사랑하는 연인들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느끼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이곳에선 저녁에 `붉은 수수밭’ `북경 올림픽 개막쇼’ 등을 연출한 중국의 유명한 장예모 감독의 `장한가’라는 화려한 뮤지컬 쇼를 한단다. 일생에 꼭 한번 봐야 한다고 하지만 따로 내야하는 쇼의 가격(5만 원 가량)도 만만치 않고 별로 감흥도 일지 않아 모두들 안 보기로 했는데 가이드는 최소 옵션거리를 놓쳐서 무척 서운한 것 같았다.

 

 ▶병마용갱, 진시황릉

 다음에 찾아간 곳이 바로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병마용 갱과 진시황릉이었다. 병마용 갱은 진시황 무덤(성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깥에는 인공적인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만 명이 넘는 진흙 병사들과 500마리의 말과 100여 개의 수레가 지키는 거대한 병마용 무덤을 세 개나 만들어 놓았다)의 일부이다. 잔인한 왕은 원래 살아있는 병사들을 생매장 하려했는데 재치 있는 신화의 기지로 병마용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십여 년에 걸친 진시황릉 중건에 동원된 일꾼들은 능이 완성되자 무덤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매장하였다고 한다. 그럼 그들을 죽였던 병사들도 죽었을까? 도대체 얼마나 죽어야 했는지 사실 진시황 능보다 그것과 연관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의 비밀을 더 알고 싶어졌다. 그야말로 전쟁 아니었던가! 그러고도 이런 거대한 유산을 남겨주어 후세에 길이 돈 벌 구실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진시황 이야기에는 만리장성과 불로초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그토록 발버둥치며 노력했음에도 그는 40세 남짓에 단명했고 진나라는 그의 아들 대에 멸망한, 20년도 안된 단명한 왕조였다. 진을 멸망시킨 건 초나라의 항우 장사였고 진시황 무덤을 파헤치려다가 어쩐 일인지 속은 건드리지 않고(수은이 물처럼 흐르고 위험한 장치들이 설치되어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병마용만 발굴해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만 모두 쏙 빼갔다. 그 무기들은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진짜 무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병마용들이 마치 레고인형처럼 손이 무기를 쥐고 있는 동그란 형상으로 되어 있다. 표정도 다 다르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여전히 아직도 발굴하고 조립(쓰러지면 얼굴과 몸통이 따로 분리된다) 중이며 수많은 파생상품들이 만들어져 있다. 가이드를 통해 들은 가슴 아픈 이야기는 병마용 맨 앞의 병사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노예 신분으로 강제로 전쟁에 출전해 갑옷은 커녕 무기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부동자세로 있다가 화살을 맞아 죽는 역할이다. 만일 목숨을 부지하려고 달아나려 했다간 뒤에 오는 병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의 가족들까지 몽땅 죽임을 당했다. 그가 죽으면 그의 가족들은 면천의 혜택을 입게 된다. 그의 선택은 그냥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화살받이’ 였던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가 그렇게 대 제국을 이루었던 모양이다. 진나라는 청동기 말기 시대의 나라다. 겨우 석기시대를 탈출한 초기 인류가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었다니! 과연 인간은 원래 악을 품고 태어났는가 묻고 싶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래도 1호 갱만 축구장 넓이만큼 되는 병마용 갱은 규모 면에서 우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아들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병마용에 빠져 들었다. 우리는 배낭이 휘도록 병마용 모형들을 다양한 크기별로 수십 개를 샀다. 이들은 이번 여행의 전리품으로 아들 방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은 사실 병마용 갱을 보는 걸로도 더 이상 부족함이 없었다. 원 포인트를 목표로 찾아가는 여행, 그것도 전혀 나쁘지 않는 방식이다. 다음에는 꼭 팬더를 찾아서 스찬성 청두 같은 곳을 찾아가는 나만의 맞춤 중국여행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마사지

 태국에도 있었지만 발마사지는 간단하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안마이다. 발속에 인체 오장육부가 모두 집약돼 들어있다는 게 발마시지의 기본원리이다. 아들은 이번에 처음 받아보았고 나는 세 번째 쯤인 것 같다. 발도 씻겨주고 어깨, 장단지, 종아리 그리고 발, 발가락을 차례대로 만져주는 손길에서 부드러움과 안락함을 느낀다. 그리고 여행 중에 가장 수고한 내 발에 대해 미안함을 다소 덜어주는 듯한 느낌이다. 2만 원 정도하는 발마사지는 여행 중에 꼭 추천 드리고 싶은 코스이다. 동남아에서든 중국에서든. <2편에서 계속>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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