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의 고향 중국 고도 서안(시안) 부자 기행<2>

▲ 중국 화산. `기원’들이 모여있다.

 ▶화산

 중국에는 오대 악산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서안에 있는 화산이다. 중국 팔로군의 근거지이기 했고 화산 8용사 이야기로 유명한 중국 공산당의 성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 위세에 놀란다. 밑에서 볼 때는 우리나라 월출산 정도네 하고 우습게 보았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위험천만한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깍아지른 듯한 절벽을 몇 개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미 항복을 해버렸다. `아니야! 여기는 설악산 몇 배는 되는 곳이야! 어휴~.’ 꼭대기 곳곳에 도교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고 도교답게 큰 바위 하나에 아예 굴을 뚫어 거처로 심고 있는 곳도 있었다. 도교하면 무언가 무술 수련 같은 것이 연상된다. 그 꼭대기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세상을 평정하려고 하산하는 무술고수들의 기상 같은 것도 느껴졌다. 여기도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왠지 인자요산지자요수(仁者樂山知者樂水) 같은 한자 명언이 생각나게 하는 매우 장엄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동양화풍의 산이었다.

 

 ▶비림

 비석의 숲, 중국말은 표의문자라 그런지 현판도 범상치 않다. 물론 비석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굳이 숲이란 말은 참 시적인 표현이다. 당나라 멸망 이후 송나라 때 여대충이란 분이 사방에 나뒹구는 유명한 비들을 모와서 보관한 곳이라는데 문자의 역사도 알 수 있고 한자어나 서예의 변천사도 알 수 있다. 책으로 담아두기 아까운 문장을 아예 돌로 새겨 길이 후손에 물려주고 싶은 배려로 만든 병풍 같은 돌비석도 있다. 관우가 못 알아보게 유비에게 썼다는 대나무 잎 글씨를 활용한 비석, 미술책에도 많이 본 미친 광인에 글씨를 새긴 비석도 실제 현품이 여기에 있었다. 그밖에 비석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동물조각상도 많이 있었다. 그 중에 압권은 실제 크기의 인도코뿔소 조각이었다. `와! 전설의 동물만 새길 줄 알았는데 소도 있고 학도 있고 심지어 이런 실제 표현의 야생동물까지 있다니!’ 역시 자연의 작품은 인간의 어떤 디자인보다 뛰어나다.

 

 ▶장안성

 당나라의 수도가 장안이었다. 지금의 이 서안과 다른 곳이 아니다. 그냥 그 당시엔 서안을 장안이라고 부른 것뿐이다. 성은 진시황 때부터 쌓았으나 그 당시 흙성들은 무너지고 돌성들만 남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국내의 성들은 겨우 한 두 사람 지나갈 정도의 폭이었는데 거의 4차선에 가까운 성의 보도를 보자 그냥 말문이 막혔다. 우리나라 성은 보수를 해도 겨우 몇 백 미터 보존에 그치는데 무려 14km 넘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이 남아있었고 그 당시 그대로 해자와 성벽아래 거리, 망루 등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민족의 침략이 거의 없었고 싸워도 자기들끼리 싸웠으니 공통 조상들이 만들었던 걸 보존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문화유산들이 사방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외세의 침략에 의해 번번이 소실돼 버린 우리 문화유산을 생각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밤에도 이 장안성은 바로 말 그대로 거리와 도시의 랜드마크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고 있었고 실제로 현대 도시민들의 삶도 예전 그때처럼 이 성벽 주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옛 것을 늘 배경으로 사는 삶은 얼마나 든든할까!

 

 ▶대안탑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 이야기기가 어디서 나왔는가 했더니 바로 이 곳 서안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당태종은 삼장(현장)법사로 하여금 부처가 탄생한 인도로 가서 불경을 가져오게 했고(사실은 스스로 택한 구도의 길인데 그 당시엔 해외여행은 왕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그는 인도(천축) 말을 배워 중국말로 불경을 번역하는 세월까지 포함해서 떠난 지 무려 17년 만에 드디어 불경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의 파란 만장한 구사일생의 이야기가 바로 기행문(대당서역기라는 삼장 자신의 글이 있기도 하지만~)이 아닌 `서유기’라는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지만 이야기로 만든 것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수호지’와 `초한지’ `삼국지’ 등도 마찬가지다. 역사에 이야기를 가미하니 이보다 더 재밌고 생생한 책이 없다. 우린 재미와 함께 역사와 진실을 배울 수 있다. 이미 이를 알고 후손들에게 자기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하려한 중국 조상들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우리 역사에도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같은 비슷한 류의 이야기책이 전해오지만 대개 단편에 머물고 만다. 조선시대 와서는 그런 좋은 전통마저 없어졌다. 대안탑은 바로 이 삼장법사가 가져온 불경 원본을 보관한 원래 100m가 넘는 거대한 10층짜리 흙탑이었다가 무너져 내려 다시 65m의 7층탑으로 보수한 탑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보수 중이다. 중국 절은 궁전의 디자인을 모방했고 우리의 단청이 오방색인 반면 이들의 색은 주로 금색 위주다. 금과 용은 왕의 상징이라 누구도 함부로 못 썼는데 절에서는 그래도 왕과 동급으로 사용할 수 있었나 보다.

 

 ▶화족거리

 중국에 가보기 않더라도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북경오리와 양꼬치에 대해 다루기 때문에 이제 한국 사람 거의 누구나 이런 요리들을 알고 있다. 장안성벽 한 곳에는 조그마한, 그래도 족히 길이로 2km가 넘는, 소수민족인 화족(이슬람)이 운영하는 거리가 있다. 그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안 먹는다고 한다. 보기엔 상남자 스타일들로 술을 좋아하게 생겼는데 안 먹는다니 특이했다. 주로 거리에서 다루는 메인 요리는 양꼬치 요리다. 이곳에 와서 비로소 본고장 양꼬치 요리를 맛 본 기분이다. 직접 도축한 양 한마리를 걸어놓고 거기에서 고기를 나무꼬지에 끼워 굽는데 10위엔(2000원)정도면 살 수 있다. 한입 씹어 먹는 맛이 기가 막혔다. 이래서 `양꼬치 양꼬치 하나보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술집에서 파는 작은 양꼬치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이미 한국 사람들은 여기오면 꼭 술 찾는다고 한 말이 생각 날 만큼 `이 안주에 소주 한 잔 했으면’ 싶어지는 맛이었다. 이 밖에도 석류쥬스, 회오리감자, 꽃게꼬치, 오징어꼬치 등 우리나라 관광지에서도 파는 꼬치 요리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거리였다. 기념품들도 잘만 흥정하면 싸게 살 수 있는 즐겁고 활기찬 곳이었다.

 

 ▶13왕조 쇼

 이곳 서안은 물론 황하가 지역 경계를 따라 흐르는 문명의 불상지로서 원시시대에 모계중심 사회로부터 출발한 곳이고, 진시황 때부터 수도로서 거의 5000년간 수나라 당나라 때까지 13왕조가 탄생하고 명멸한 유서 깊은 곳이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경주정도라고 할 만큼 옛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지금의 지배층인 공산당의 주요 본거지이기도 했다. 팔로군 암거에는 안에 깊은 동굴이 외부까지 파져있어 과거 국공대립시대의 한 자화상을 보여주기도 하는 중국 역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화청지의 장한가와 더불어 13왕조 쇼가 유명하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기예쇼와 실크의 고장인 만큼 당나라 때 꽃 핀 실크 옷을 입은 무희들의 궁전패션쇼가 주를 이룬다. 기예쇼에서는 주로 전쟁과 당현종과 양귀비같은 사랑 이야기를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표현한 쇼이다. 저녁에 공연하지만 여기도 한국사람 반 중국사람 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쇼의 질에 비해 시설이나 질서는 엉망이었다. 좀 더 넓고 쾌적한 극장에서 한 세 시간 정도 공들여 만들어 오페라 같은 공연으로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은 잘 하면서 왜 이런 세밀한 부분에는 신경을 못 쓸까 조금 아쉬웠지만 그랬다면 또 비싸서 못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첫 해외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아예 중국에 살고 싶다고까지 했다. “글쎄 다른 나라도 더 돌아보고 해야 할 말 아닐까?”하고는 말했지만 일단 이번 여행이 꽤 성공적이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나 역시 여러 나라를 가보았지만 역동성과 친근감 면에서 중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는 것 같았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비슷한 풍속 그리고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언어장벽만 넘는다면 살기에 그리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서양에 가보면 `여기서 살면 차별받고 고립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정반대였다. “일단 동의한다. 그럼 더 열심히 공부해라. 꿈이 있다면 학생은 무엇보다 공부가 우선이다. 이것도 공부의 일종이었다고 생각해라”라고 오랜만에 자신 있게 공부타령을 좀 했다. 40℃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도 원하던 곳 모두 잘 다녀왔고 건강하고 즐겁게 보낸 것이 무엇보다 값진 성과였다. 역시 관광은 체력이다. 견문은 말보다 내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레 넓혀졌을 것이다. 중국이 갑자기 내 몸처럼 다가왔다.

최종욱 <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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