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게 닦인 길들, 시는 스러지고…
자작나무 500여 그루 도열
섬진강 댐이 겨우 뿜어주는 물줄기 위에 간밤에 비가 더해져 강물은 탁하면서도 비장하게 흘러간다. 너럭바위 위에 왜가리 한 마리 물끄러미 앉아있다. 물줄기 타고 피라미들 헤엄쳐 올 테지만 아무런 관심 없다. 고개를 들어 하늘 한번 보고 멍하니 바위만 탐하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 모습을 보며 관조를 통한 세속에 초월을 상상했다. 시인 황지우는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라는 시에서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이라고 노래했지만 섬진강의 왜가리는 검은 색의 바위를 더욱 탄탄한 잿빛의 화석으로 만들고 있다. 저 바위 위에서 곰살 맞은 아이들 다이빙도 했을 것이고, 꽃가래 잡아 말리기도 했고, 어름지치다 물에 빠진 운동화 말리다 태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못 볼 풍경이다. 구곡순담이라고 이야기하는 장수마을의 자부심 뒤에 아이들 발걸음 소리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처량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뒤로하고 진뫼에 들어선다. 차를 놓는다. 저 신성한 당산에 차를 둘 수 없어 멀찌감치 놓고 한걸음 한걸음 당산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아직 젖은 돌들은 사람이 앉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고 못된 놈 징치하고 셋거리 나눠먹고 군대 가는 놈 잘 가라 다독거리며 눈물 훔치던 그 당산의 넉넉함에 젖어든다. 아직 완연한 가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짓궂은 날씨는 가을을 훔쳐 간 듯하다. 당산너머로 마을을 본다. 시인의 집은 더욱 우뚝하다. 시인이 못돼서 부럽기만 한데 한편으로는 세상의 시인 집은 다 도드라지게 부각했으면 좋겠다. 하늘에 별이 있다면 인간의 마을엔 시를 쓰는 사람이 지상의 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마을을 거쳐 간 박남준, 안도현, 이원규 시인들 그들이 가졌던 방 한 칸도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겹쳐진다.
마을과 강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본다. 다리는 불어난 물이 삼켜버렸다. 하지만 저 안에 ‘자율’이라고 쓰여 진 바위도 있을 것이고 물의 깊이를 가늠하던 바위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 바위 찾아 온통 헤맸을 김도수 이장의 빛나는 활약도 다시 생각해본다.
박남준·안도연·이원규 그들의 방도 빛났으면
다시 길 위에 선다. 물굽이가 강파르게 휘돌아가는 암벽은 적벽처럼 붉게 빛난다. 맞은편 소나무 곁에는 목재데크가 설치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진뫼에서 천담까지는 비포장이었고 그곳 초등학교에 수업을 하러 매일 걸었던 김용택 시인은 흐르는 물줄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막 피어오른 꽃송이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서 튀어 오르는 자갈길에서 시를 주웠을 것인데 그 자취를 찾을 길 없다. 섬진강 자전거길, 시인의 길, 도보 길의 조성이 경관을 파먹고 풍경을 해치고 사유를 거둬갔다. 이 나라의 관광 열풍은 본원을 지우고 화장 빨로 상처를 입히는데 혈안이다. 관광은 본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인데 어쩌자고 아름다운 풍경위에 자본을 덧입혀 위해를 가하는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인 듯 한 라이더 두 명이 지나간다. 그 모습이 산천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나도 서서히 차를 몰아 천담 마을로 향한다. 이맘때면 천담초등학교와 마을 사이 비탈길에 구절초 활짝 피고 들판의 감나무는 태양보다 더 붉게 빛나는 시절이다. 차를 멈추고 감나무를 향해 카메라를 응시한다. 포커스가 열매에 닿으면 주변의 풍광이 소멸된다. 포커스가 주변의 풍광을 담으면 감은 그 색이 바래진다. 무대 위의 주인공과 조연 그 사이의 갈등은 우리 삶 모든 곳에 존재함을 다시 느껴본다.
밭에 나오신 할머니 한분 나의 이상한 짓을 멀끄러미 바라본다. 살짝 묵례를 하고 구절초를 찾는다. 보이지 않았다. 꽃만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줄기조차도 없다. 몸에 좋은 약초라고 방송에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살짝 얄미워진다. 산야에 하얀 민들레도 둥굴레도 쇠뜸부기도 할미꽃도 운명 속으로 사라진 게 그네들 덕분인 것 같다. 화순 도암에 도장리 마을의 어르신들이 조개바위보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물을 다 빼지 않고 첨벙거리며 고기를 잡던 모습이 상기된다. “어르신 물 다 빼블제.” “씨는 냄겨 놔야제.” 그런 농부의 소박한 정신이 관광객을 들여오면서 사라졌을 터이다.
‘아름다운 시절’의 비극을 간직한 곳
천담마을 모정에서 잠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린다. 마을과 강가 사이에 방앗간이 있었다. 미군에게 몸을 맡겨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창희의 참담한 눈빛이 생생하다. 역설의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방앗간 씬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촬영 후 사유지인 방앗간은 사라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구담마을을 향해간다. 이유 없이 죽은 창희를 위해 동네친구들은 상여를 띄운다. 창희의 무덤은 구담마을 당산나무 곁에 만들어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창희의 엄마는 당산나무를 지나며 자식의 무덤에 눈길을 끝까지 돌리지 않는다. 영화를 보던 내 눈에 눈물 한바가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에 가장 비극적이고 가슴을 휘비던 장면이었다. 이렇게 천담과 구담마을의 천연스러운 풍광은 1950년대의 삶과 풍경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 차는 구담마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싸리골에서 구담을 우러러보는 곳에 멈췄다. 봄이면 매화나무로 꽃대궐을 이루는 마을, 여름이면 밤나무 꽃으로 꿀벌들을 모아내는 마을, 가을이면 당산 숲에 샛노란 단풍이 온 동네를 감싸는 마을이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섬진강을 거스르지 않는 징검다리가 있다. 커다란 바윗돌이 그 마을과 이 마을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겨울이면 그 노둣돌위에 어르신들이 소금을 뿌려둔다. 얼음 얼지 않고 미끄러지지 말라는 정성이다.
‘아름다운 시절’ 상영 후 소설가 김훈과 시인 김용택이 한겨레21 이상수 기자를 따라 이 풍경에 편입된 적이 있다. 내 지척에 있는 곳이면서 생소했던 이곳을 나는 2000년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해 거르지 않고 계절도 거르지 않으며 찾았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풍경이다.
다시 방향을 바꾼다. 구담과 싸릿재에서 활처럼 물굽이를 튼 강물이 널찍한 소를 만든 곳이다. 미루나무 두 그루 강물에 제 얼굴 담고 있다. 짓궂은 바람이 인화된 미루나무를 지워낸다. 어느 해 밤 그 강물에 수없이 박혀있는 별들을 본적이 있다. 나는 양림동의 화가 한희원 선생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시인인 선배는 “아따 누가 사금파리 뿌려븟다냐.”라고 이야기 했다. 타인의 생각을 가져다쓰는데 일상적인 나와 스스로 언어를 조탁하는 시인사이에 간극은 너무나 멀었다.
시가 10억 요강바위를 지켜낸 내력
섬진강에서의 깨달음은 나에게 더 많은 책을 읽게 했고 어느 때고 책을 놓지 않게 했다. 그 생각 뒤로하고 장구목으로 향한다. 시가 10억을 넘어서는 요강바위가 있는 곳이다. 못된 사람들이 마을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바위를 뽑아가 경기도 광주에서 10억 원에 어느 집 정원으로 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이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법정소송을 거쳐 마을로 다시 가져온 내력이 있다. 김훈의 수필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일화는 중학교2학년 교과서에도 등재되어있다. 번번히 보아왔던 요강바위를 멀찌감치 바라본다. 상단부에 튀어나온 자태가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 마을을 상징했고 수호했던 것들까지 얄팍한 상혼들이 치대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진뫼에서 천담,구담,싸릿재,장구목을 건너오는 사이 18년간의 이 길에 대한 내 시선과 관점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있음을 확인해본다. 진부하리만큼 변화하지 않는 내 독법에 넌더리를 치기도하지만 저렇듯 변해가는 강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익숙해져가는 것이 너무 아프다. 장구목을 나오는 길 차는 강변을 지르고 산목에 구멍을 뚫은 적성터널을 지나 세차게 일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배신의 가을에 내가 살고 있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