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게 닦인 길들, 시는 스러지고…

 간밤에 비가 내린다. 아침 안개를 기대했다. 차를 달리고 싶은 곳은 세 곳이다. 하지만 몸이 하나니 골라야한다. 진뫼다.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고향, 명예 이장 김도수 선배의 고향이다. 차는 어느덧 달빛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약간의 안개 기운이 보인다. 순창 즈음 안개가 더욱 짙어야하는데 오히려 맑아졌다. 선택의 실패다. 기왕 나선 길 전주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새로 난 길은 풍경을 생략한다. 나그네는 그런 풍경에 집착한다. 순창에서 임실 넘어선 고개에서 이상한 기미를 발견했다. 북방에 있어야 할 자작나무가 나 보란 듯이 서있다. 족히 500여 그루 남짓한 나무들의 도열. 그 앞에서 강원도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을 떠올린다. 모든 산은 일가친척이라는 것. 그럼에도 기후의 차이는 숲의 생태를 다르게 하는데 약간의 고지대가 북방의 나무를 이곳으로 초대할 수 있었을 터이다. 바람 한 점이 노랗게 물든 자작의 잎새를 흔들고 간다. 이 숲을 보며 다른 숲을 그리워하는 부질한 마음을 접고 길 위에 올라섰다.

 

 자작나무 500여 그루 도열

 

 섬진강 댐이 겨우 뿜어주는 물줄기 위에 간밤에 비가 더해져 강물은 탁하면서도 비장하게 흘러간다. 너럭바위 위에 왜가리 한 마리 물끄러미 앉아있다. 물줄기 타고 피라미들 헤엄쳐 올 테지만 아무런 관심 없다. 고개를 들어 하늘 한번 보고 멍하니 바위만 탐하고 있다. 옛 선비들은 이 모습을 보며 관조를 통한 세속에 초월을 상상했다. 시인 황지우는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라는 시에서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이라고 노래했지만 섬진강의 왜가리는 검은 색의 바위를 더욱 탄탄한 잿빛의 화석으로 만들고 있다. 저 바위 위에서 곰살 맞은 아이들 다이빙도 했을 것이고, 꽃가래 잡아 말리기도 했고, 어름지치다 물에 빠진 운동화 말리다 태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못 볼 풍경이다. 구곡순담이라고 이야기하는 장수마을의 자부심 뒤에 아이들 발걸음 소리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처량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뒤로하고 진뫼에 들어선다. 차를 놓는다. 저 신성한 당산에 차를 둘 수 없어 멀찌감치 놓고 한걸음 한걸음 당산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아직 젖은 돌들은 사람이 앉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고 못된 놈 징치하고 셋거리 나눠먹고 군대 가는 놈 잘 가라 다독거리며 눈물 훔치던 그 당산의 넉넉함에 젖어든다. 아직 완연한 가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짓궂은 날씨는 가을을 훔쳐 간 듯하다. 당산너머로 마을을 본다. 시인의 집은 더욱 우뚝하다. 시인이 못돼서 부럽기만 한데 한편으로는 세상의 시인 집은 다 도드라지게 부각했으면 좋겠다. 하늘에 별이 있다면 인간의 마을엔 시를 쓰는 사람이 지상의 별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마을을 거쳐 간 박남준, 안도현, 이원규 시인들 그들이 가졌던 방 한 칸도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겹쳐진다.

 마을과 강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본다. 다리는 불어난 물이 삼켜버렸다. 하지만 저 안에 ‘자율’이라고 쓰여 진 바위도 있을 것이고 물의 깊이를 가늠하던 바위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 바위 찾아 온통 헤맸을 김도수 이장의 빛나는 활약도 다시 생각해본다.

 

 박남준·안도연·이원규 그들의 방도 빛났으면

 

 다시 길 위에 선다. 물굽이가 강파르게 휘돌아가는 암벽은 적벽처럼 붉게 빛난다. 맞은편 소나무 곁에는 목재데크가 설치되어있다. 그러고 보니 진뫼에서 천담까지는 비포장이었고 그곳 초등학교에 수업을 하러 매일 걸었던 김용택 시인은 흐르는 물줄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막 피어오른 꽃송이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에게서 튀어 오르는 자갈길에서 시를 주웠을 것인데 그 자취를 찾을 길 없다. 섬진강 자전거길, 시인의 길, 도보 길의 조성이 경관을 파먹고 풍경을 해치고 사유를 거둬갔다. 이 나라의 관광 열풍은 본원을 지우고 화장 빨로 상처를 입히는데 혈안이다. 관광은 본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인데 어쩌자고 아름다운 풍경위에 자본을 덧입혀 위해를 가하는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인 듯 한 라이더 두 명이 지나간다. 그 모습이 산천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나도 서서히 차를 몰아 천담 마을로 향한다. 이맘때면 천담초등학교와 마을 사이 비탈길에 구절초 활짝 피고 들판의 감나무는 태양보다 더 붉게 빛나는 시절이다. 차를 멈추고 감나무를 향해 카메라를 응시한다. 포커스가 열매에 닿으면 주변의 풍광이 소멸된다. 포커스가 주변의 풍광을 담으면 감은 그 색이 바래진다. 무대 위의 주인공과 조연 그 사이의 갈등은 우리 삶 모든 곳에 존재함을 다시 느껴본다.

 밭에 나오신 할머니 한분 나의 이상한 짓을 멀끄러미 바라본다. 살짝 묵례를 하고 구절초를 찾는다. 보이지 않았다. 꽃만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줄기조차도 없다. 몸에 좋은 약초라고 방송에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살짝 얄미워진다. 산야에 하얀 민들레도 둥굴레도 쇠뜸부기도 할미꽃도 운명 속으로 사라진 게 그네들 덕분인 것 같다. 화순 도암에 도장리 마을의 어르신들이 조개바위보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물을 다 빼지 않고 첨벙거리며 고기를 잡던 모습이 상기된다. “어르신 물 다 빼블제.” “씨는 냄겨 놔야제.” 그런 농부의 소박한 정신이 관광객을 들여오면서 사라졌을 터이다.

 

 ‘아름다운 시절’의 비극을 간직한 곳

 

 천담마을 모정에서 잠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린다. 마을과 강가 사이에 방앗간이 있었다. 미군에게 몸을 맡겨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본 창희의 참담한 눈빛이 생생하다. 역설의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방앗간 씬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촬영 후 사유지인 방앗간은 사라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구담마을을 향해간다. 이유 없이 죽은 창희를 위해 동네친구들은 상여를 띄운다. 창희의 무덤은 구담마을 당산나무 곁에 만들어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창희의 엄마는 당산나무를 지나며 자식의 무덤에 눈길을 끝까지 돌리지 않는다. 영화를 보던 내 눈에 눈물 한바가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에 가장 비극적이고 가슴을 휘비던 장면이었다. 이렇게 천담과 구담마을의 천연스러운 풍광은 1950년대의 삶과 풍경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 차는 구담마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싸리골에서 구담을 우러러보는 곳에 멈췄다. 봄이면 매화나무로 꽃대궐을 이루는 마을, 여름이면 밤나무 꽃으로 꿀벌들을 모아내는 마을, 가을이면 당산 숲에 샛노란 단풍이 온 동네를 감싸는 마을이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섬진강을 거스르지 않는 징검다리가 있다. 커다란 바윗돌이 그 마을과 이 마을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겨울이면 그 노둣돌위에 어르신들이 소금을 뿌려둔다. 얼음 얼지 않고 미끄러지지 말라는 정성이다.

 ‘아름다운 시절’ 상영 후 소설가 김훈과 시인 김용택이 한겨레21 이상수 기자를 따라 이 풍경에 편입된 적이 있다. 내 지척에 있는 곳이면서 생소했던 이곳을 나는 2000년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이후 해 거르지 않고 계절도 거르지 않으며 찾았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풍경이다.

 다시 방향을 바꾼다. 구담과 싸릿재에서 활처럼 물굽이를 튼 강물이 널찍한 소를 만든 곳이다. 미루나무 두 그루 강물에 제 얼굴 담고 있다. 짓궂은 바람이 인화된 미루나무를 지워낸다. 어느 해 밤 그 강물에 수없이 박혀있는 별들을 본적이 있다. 나는 양림동의 화가 한희원 선생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시인인 선배는 “아따 누가 사금파리 뿌려븟다냐.”라고 이야기 했다. 타인의 생각을 가져다쓰는데 일상적인 나와 스스로 언어를 조탁하는 시인사이에 간극은 너무나 멀었다.

 

 시가 10억 요강바위를 지켜낸 내력

 

 섬진강에서의 깨달음은 나에게 더 많은 책을 읽게 했고 어느 때고 책을 놓지 않게 했다. 그 생각 뒤로하고 장구목으로 향한다. 시가 10억을 넘어서는 요강바위가 있는 곳이다. 못된 사람들이 마을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바위를 뽑아가 경기도 광주에서 10억 원에 어느 집 정원으로 들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이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법정소송을 거쳐 마을로 다시 가져온 내력이 있다. 김훈의 수필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일화는 중학교2학년 교과서에도 등재되어있다. 번번히 보아왔던 요강바위를 멀찌감치 바라본다. 상단부에 튀어나온 자태가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 마을을 상징했고 수호했던 것들까지 얄팍한 상혼들이 치대어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진뫼에서 천담,구담,싸릿재,장구목을 건너오는 사이 18년간의 이 길에 대한 내 시선과 관점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있음을 확인해본다. 진부하리만큼 변화하지 않는 내 독법에 넌더리를 치기도하지만 저렇듯 변해가는 강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익숙해져가는 것이 너무 아프다. 장구목을 나오는 길 차는 강변을 지르고 산목에 구멍을 뚫은 적성터널을 지나 세차게 일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배신의 가을에 내가 살고 있다.

글·사진=전고필 <여행전문가>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