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는 편견에 맞서게 한 한 마디

 엄마가 필자에게 한 말이 내 귓가에 매순간 맴돈다. “세상은 네가 살아가기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너는 더 그럴 거야. 몸이 자유롭지 못 하잖아.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널 다르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잘못된 잣대로 바라보거든. 마음 단단히 먹어.” 어릴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동네 친구들이 나를 그저 다른 모습 그대로 바라봐주었기 때문에 삐뚤이 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옛날엔 내 별명이 참 싫었는데 지금은 싫지 않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에는 장애라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건 사실이다. 내가 세상 빛 본지 채 100일도 되기 전에 열병을 앓았다. 그때는 할머니 말씀이 생활의 지혜라고 믿고 있던 때라 그 말대로 따라하다 계속 더 심해져서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병원 의사 말에 엄마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무슨 말을 했냐면, “이 아이를 너무 늦게 데리고 오셨네요. 어머니 조금만 일찍 데리고 오셨다면 치료가 가능했을 텐데 참 안타깝네요. 지금은 뇌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는 길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뇌성마비 진단을 내려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님 앞으로 강해지셔야 합니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잘 지켜보시고 아이의 발달 과정의 따라 뇌신경 손상 정도를 알아야 아이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호흡하며 살아가게 해준 선생님

 이런 말을 들었으니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자식을 낳으면서 부모님 입장을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식이 평생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세상의 편견들과 싸워가며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끝없이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부모님. 어찌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모님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식의 장애를 그저 눈 뜨고 바라봐야 하고 자신들이 못 지켜줬다는 자책감 때문에 더 아파했을 것이다.

 유년 시절에 나는 병원과 집을 오갔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긴 너무 어릴 때니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에 있는 지체장애아 전문교육기관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위축되고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많았다. 그때는 시대상으로 장애인들은 동정의 대상이나 편견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안에 갇혀 살거나 시설에 보내지거나 거리에 나오면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한적 많았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나의 몸이 싫어지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사춘기는 반항과 방황의 시절로 망가뜨리는 시기였다. 정상적인 아이들이 사춘기 상황을 어렵게 넘기는데 장애로 인해 사람들의 편견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남들과 다른 상황이 더욱더 인정하기 싫었던 건 아니었던가 싶다.

 신체적 조건이 나에게는 억압이 되어간다는 마음에 자폭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중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나갈 때쯤 선생님이 교무실로 조용히 부르시더니 나를 붙잡고 이런 말을 하셨다. “너 서울 지하철역 안 가봤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많아. 그 사람들은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왜인지 알아? 그 사람들은 꿈을 꿀 수도 없고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야. 마음을 닫고 살아가기 때문이지. 넌 아직 시작도 안했잖아. 넌 앞으로 무궁무진해. 아직 안 늦었어. 넌 겨우 17살이잖아. 물론 선생님도 네 나이 때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흔들리고 힘들어 한 적 있어. 장애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너는 더 막막하겠지.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싸워야 하고 말이지. 선생님은 너를 이해하고 공감하긴 힘들어. 다만 짐작할 뿐이야. 하지만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 혼자라는 생각은 마. 선생님 늘 여기서 기다릴게. 마음 내킬 때 와. 알았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낡은 책 한권을 내밀었다. 그 책은 윤동주 시집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 시집을 읽으며 작가라는 꿈을 가졌고 지금도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지금 나를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신 그분들께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장애는 극복 안돼…너무 쉽게 말하지 않길

 사람들은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장애는 극복하는 것일까? 장애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장애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극복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서른여덟 해 동안 나는 장애를 극복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누군가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가 있고없고 간에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그들에게 이말 한마디 하고 싶다.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치라고 그래야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 말이다. 자살률 세계 1위인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과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소한 관심 한번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해원



‘해원’님은 현재 행복한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속에 살아가는 중증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 운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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