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길에 버려지지 않고
할머니·할아버지와 살고 싶어요”

 함박눈이 펑펑 내립니다. 사부작 사부작 눈 내리는 소리가 꿈결인 듯 정겹습니다. 들컹 들컹 삐그득. 마당 한쪽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비닐하우스 문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감기려는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립니다. 지금 나의 잠자리는 주인할머니네 집의 현관입니다. 날이 추워 옥상에서 내려왔죠. 거기에서 신발들을 깔고 누워 잡니다. 오늘은 날이 추워 구운 조기대가리를 반찬으로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당불이 켜지자마자 얼른 들어와 자릴 잡았습니다.

 참 제 소개를 해야겠네요. 내 이름은 ‘메리’입니다. 다섯 살 된 개입니다. 암컷이구요. 예전에는 주인집 안방에서 그 집 아이들이랑 같이 살았어요. 새하얀 털에 윤이 자르르 흐르는 제법 귀여운 애완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이었죠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천방지축 겁 없이 돌아다니다 주인도 잃고 집도 잊어버려 유기견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시장통을 쓸고 다녔습죠. 그래서 지금 내 털은 거의 잿빛에 가까워요. 설상가상으로 반년 이상 목욕 한 번 하지 못 했어요. 그래서 내 몸에서는 내 밥그릇에서 맡을 수 있는 생선 고린내와 흡사한 냄새가 나지요.

 

▲ 저는 5살된 개…어느날 유기견 됐어요

 

 이 집에 어떻게 왔냐구요? 혓바닥이 쭉 주~욱 늘어나던 무더운 여름날로 기억합니다. 장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할머니의 장바구니에서 나는 생선냄새를 따라 이곳까지 왔어요. 그런데 그날 할머니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삼복더위에 지쳐 그토록 먹고 싶었던 삼계탕 국물에 밥을 말아 주셨지요. ‘옳다쿠나!’하고 이곳에 눌러 앉아 살고 있어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할머니는 저를 쫓아내지 않으셨어요. 할머니는 나에게 아침밥 저녁밥 두 끼를 꼭 챙겨주십니다. 낮에 배가 촐촐해질 때면 고구마나 뼈다귀를 주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주 무서워요.

 “기어 들어온 놈한테 뭣 흐로 밥을 줘 쌌냐? 생긴 것도 볼썽 사납구만, 저 개새끼 병든 모양이구만. 쯧쯧.”

 할아버지만 보면 나는 지금도 오금이 저립니다. 나는 마당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다가도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은행나무 밑으로 얼른 숨어 버립니다. 나무 밑에다 할머니가 쌀푸대를 한 장 깔아 놓아서 그럭저럭 지낼 만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저를 싫어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이 집에 막 들어와 눌러 앉을 때, 기어 들어온 주제인 내 처지를 망각하고 옛날 잘 나가던 애완견 호시절로 생각하고 엉뚱한 짓을 좀 했습니다. 해가 지고 밤이 으슥해지면 사방은 고요해지고 내 주변에는 적적한 기운만 감돕니다. 저는 밀려드는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외로움이 엄습하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네 거실로 사뿐 사뿐 들어가게 됩니다. 텔레비전을 보시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꼭 “메리야! 얼른 들온나”하시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거실에 발을 들여놓기가 바쁘게 “요놈의 개새끼가 어딜 들어와!” 할아버지의 거친 고함소리와 함께 파리채가 날아와 사정없이 나의 등짝을 내리칩니다. 놀란 나는 후다다닥 필사적으로 미닫이 문을 향해 도망칩니다. 그러고 나면 내 처지가 퍼뜩 떠오르고 나의 실수를 깨닫게 됩니다.

 

▲옥상에서 잠자기 할머니만 아는 비밀

 

 그렇다 해도 내 몸속에 흐르는 고귀한 혈통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 자르듯 뚝딱 내동댕이 칠 수가 없었습니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어진다고 배부르고 등이 따수워지자 그 알량한 고귀한 혈통이 땅바닥에 등을 누이고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땅한 잠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가 옥상으로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 천천히 계단을 밟으며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예전에 주인이 아파트3층에 살았습니다. 그 주인은 나를 데리고 운동 삼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서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때 단련이 되어서 이정도의 계단은 누워서 떡 먹기지요. 저 죽지 않았어요! 아직 꼿꼿합니다!

 옥상에는 호박오가리. 고추, 토란대, 감자대등이 장판위에 가득 널려져 있었어요. 옥상에 올라가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안식처였습니다. 무엇보다 공기가 아래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샤워하고 나서 막 드라이바람을 쐬는 기분이랄까? 옥상에서 바람을 맞으면 머리에서 꼬리까지 내 털끝이 다 상쾌해집니다. 그날 이후 나는 장판 한쪽을 비비고 들어가 거기에서 자고 아무도 모르게 일찌감치 마당에 내려와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달게 자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 사뿐히 내려 밟던 계단에서 할머니와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아직은 어둑한 이른 아침, 대문에서 신문을 들고 오시던 할머니는 옥상에서 내려오는 나를 보고 내가 장한 건 지, 신기한 건 지, 요상한 건 지, 말을 건네셨지요.

 “오메, 요것아. 그기서 자고 내려오냐“”

 내가 옥상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는 사실은 할머니만 아는 비밀입니다. 물론 날이 추워지면 옥상에서 내려와 현관에서 잠을 자며 겨울을 납니다.

 나는 똥개처럼 아무거나 먹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저를 보고 한 마디 합니다.

 “애기도 아니고 고 놈 되게 깨까닥스럽네.”

 된장국, 누룽지, 감자, 날생선 이런 건 질색입니다. 튀김, 생선구이, 우유, 닭국, 삼겹살 이런 건? ‘굿(good)’이에요. 좋아합니다. 할머니는 제가 밥을 먹을 때 싹싹 핥아먹는 음식과 남기는 음식을 눈여겨 살펴보다가 제 식성을 금방 알아 냈지요. 그 다음 부터 바로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얻어다 주시거나 남겨주시기도 하지요. 갑장친구들과 계모임이 있는 날 집에 돌아 올 때면 삼겹살 다섯 점을 화장지에 꼭꼭 싸다 주시지요. 손주들이 먹다 남은 치킨 뼈다귀도 당연히 나의 몫이지요.



▲고양이들 몰려들어 집이 난장판

 

 그런데 요즈음 우리집 저녁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제가 미처 먹지 않아 남아 도는 밥냄새를 맡고 온동네 고양이가 우리집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뒷집에는 넓다란 감나무 밭이 있습니다. 거기에 집나온 고양이들이 하나 둘 모여 살더니 계속 마리수가 늘어나 지금은 열 마리는 족히 되나봅니다. 내가 밥을 남기면 난리가 나지요. 그 고양이들이 서로 밥을 차지하려고 할퀴고 물어뜯고 우르랑거리고 한바탕 전쟁이 납니다. 나는 느긋하게 고양이들이 하는 꼴을 바라보다 ‘니들 맘대로 하세요’ 내버려두고 옥상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힘이 없어 시레기 한쪽도 먹지 못한 고양이가 허기에 지쳐 아기소리를 내며 고르랑거리면 나는 깜짝 놀라 잠을 못 이루지요. 그런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이웃해 살다보니 다음날이면 뒷집의 고양이들과 담벼락이나 뒷밭에서 또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내가 고마운 줄도 모릅니다. 어젯밤의 일은 까맣게 잊고, 나를 소 닭 보듯 하며 지들끼리만 짝을 지어 도도하게 뒷발을 들고 행진하는 꼴을 보자니 울화통이 치밉니다. 내가 짖어대기라도 했으면 할머니가 달려 나와 그놈들을 쫓아버렸겠지요. 지들이 누구 덕분에 먹고사는데! 내 앞에서 감히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승용차 소리입니다. 서울이나 광주에 사는 아들 딸들이 왔다는 신호지요. 할머니네 아들 딸들이 모이면 마당에서 드럼통을 쪼개 만든 화로를 피워요. 고기도 굽고 술도 마시며 왁자지껄 아주 즐거워 보여요.

 제가 제일 기다리는 사람은 막내아들집에 세살배기 준이입니다. 준이는 내가 은행나무밑에 숨어도 금새 찾아내고는 쭈그리고 앉아 나를 보고 까르르 웃습니다. 내가 파밭에 웅크리고 숨으면 거기도 금방 찾아내 달려와서 내 털을 만지며 “메에야 메에리야” 알듯 말듯 제 이름을 부르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이 마당에서 모기불도 피우고 고기도 구우며 놀 땐 저만치 떨어져서 내 몸을 감추고 그들의 이야기와 기분만 느끼려고 합니다. 내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고 내 털이 지저분해서 식구들이 밥맛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준이가 나를 찾으면 어쩔 수 없이 마당가에 와서 앉지요. 준이는 삼겹살이랑 새우를 구워 은박접시에 담아와 “메에야 머어 먹어”하며 밀어줍니다. 할아버지는 또, “에이, 이놈의 개” 하시며 눈을 부릅뜨고 발을 쿵! 땅에 구르시지만 저는 이날만은 겁먹지 않아요. 바로 준이가 있거든요 준이 아빠도 제 편이에요. 이날은 제 편이 많아요. 안 먹어도 배부르지요. 그렇지만 이런 날은 늘 포식하게 된답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느른하게 잠을 자도 되지만 아침 일찍 마당 텃밭에 나와 화단을 둘러보는 할머니의 둘째 따님을 따라 나오지요. 꼬리를 살랑거리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다가 배추밭고랑에서 툭 튀어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하지요. 눈이 마주치면 둘째 따님은 “메리야, 할머니말 잘듣고 집도 잘봐라. 착하지?” 부탁합니다. 나는 내 맘속으로 고개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주억거리며 “예, 예, 멍! 멍!”하지요.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것은 일 년에 서너 번쯤 되는 것 같아요. 한 번 모이면 하루 이틀 집이 시끌벅적 하지요. 일요일 오후, 모두 자기보금자리로 돌아가면 집에는 또 고요한 바람과, 햇빛과 지루한 시간만이 똬리를 튼 채 무료한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해가 지면 할머니는 마당에서 빨래를 가득 걷어 팔에 걸쳐들고 현관으로 들어오십니다. 흩어진 신발들을 다시 한 번 가지런히 놓으시고 거실로 들어가십니다.

 할머니는 아무리 빨라도 9시까지는 마당불을 켜두고 끄지 않아요. 집 앞의 골목에 불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밝히기도 하고 또, `혹시 누가 밤에라도 오려나?’ 하는 기다림도 조금은 있겠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6시면 저녁식사를 끝내고 숭늉을 드시며 텔레비젼을 보십니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며 틈틈이 할아버지의 돋보기를 쓰고 콩에 돌을 고르시거나, 밤쌀 껍질을 벗기시거나, 이것저것 내년에 뿌릴 씨앗을 다듬기도 하십니다. 날이 추워지자 얼마 전부터는 너른 거실에 있으면 등이 시리시다며 안방에서 식사도 하고 텔레비전도 안방에서 보십니다. 알뜰하신 할아버지는 두식구가 살면서 넓은 거실에 불을 들이면 허실이 많다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하얀눈님, 저의 꿈은 정말 소박합니다”

 

 거실에 불빛이 일찍 사라지고... 안방은 나와 거리가 상당합니다. 텔레비전소리도,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요. 그러니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도리밖에요.

 오늘처럼 사부작 사부작 눈이 쉴 새 없이 내리면 “삐리리릭 삐리리릭” 전화벨 소리가 연달아 울려댑니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아들딸들이, 손주손녀들이, “방은 따뜻한가요?” “감기조심하세요!” “할머니,군고구마랑 홍시랑 찐밤이랑 먹고싶어요”하며 안부를 묻는 전화겠지요.

 초저녁잠이 많은 할머니는 한숨 자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아이들의 안부전화를 받다 어느 틈에 졸음이 사라진 할머니는 거실에 나와 창밖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잠시 보다 감홍시바구니를 챙겨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십니다. 할아버지도 일어나 앉아 시원한 감홍시 하나를 집어 들고 무언가를 찬찬히 생각하다가 백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돋보기를 쓴 다음 백지에 차근 차근, 하나 하나, 무엇인가를 가득 써내려 갑니다.

 하나, 가족모두 건강하고 하는일 잘 되거라.

 둘, 가족모두 화목하게 살아라.

 셋~. 넷 ~. 다섯~.

 나도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을 내리 감으며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에 할아버지처럼 새해 소원을 빌며 단꿈을 꿉니다.

 `하얀눈님, 저의 꿈은 정말 소박합니다. 다시는 길에 버려지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언제까지나 함께 살고 싶어요’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정혜원<살레시오여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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