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이 살아있는 것

▲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은 왜 예전처럼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거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또 있습니까? 또 있다고 할 만한 이유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선다거나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모르면 수치인 것 같아서 거북했는데 요즘에는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거겠지.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 -본문 中

 사람은 매 순간 늙어가지만 매 순간 늙어간다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그러다가 요즘과 같은 연초에 집중적으로 자신의 늙어감을 한탄합니다. ‘마음’에 등장하는 선생님은 자신이 책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유를 늙어감에서 찾습니다. 늙어감에 따라 몸의 에너지가 줄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 예전보다 쉽게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므로 늙음이란 포기의 다른 말입니다. 늙는다는 말만 들어도 서글픈데 여기에 포기라는 말을 덧붙이는 제가 야속하게 느껴지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에 가치판단이 개입되면 불필요한 감정의 들끓음으로 인해 고통 받기 십상입니다. 늙는다는 사실, 늙으면 포기가 쉬워진다는 사실을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입니다.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책을 읽지만 선생님처럼 아무리 책을 읽어도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힘들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힌다면 우리의 책 읽기는 활력을 잃을 것입니다. 책 읽기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많은 행동들이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싹을 틔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책을 읽고 아무리 좋은 행동을 해도 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마음이 들면 이러한 모든 것을 중단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정답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겠죠.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책 읽기 자체에 의미를 두고 몰두해도 좋고,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책도 읽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저마다의 길을 만드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저마다의 방식, 경험으로 길을 만드는 것

 

 하지만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주인인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음하면 왼쪽 가슴어딘가에 있거나 심장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의 마음, 발의 마음, 엉덩이의 마음, 머리의 마음, 눈의 마음 등 우리 몸 곳곳에는 다양한 마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도 실제로 자신의 마음에 대해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 몸에 있는 다양한 마음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서로 충돌하고 있어 마음이 하나의 정리된 모습으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 일본 문학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2004년까지 1천 엔 권 지폐의 모델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일본의 국민작가입니다. 1867년 2월9일에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위궤양으로 인한 내출혈로 1916년 12월9일 4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마음’의 주인공 K가 자살 후 묻힌 장소인 도쿄 도시마구에 있는 조시가야 묘원에 안장됐습니다.

 ‘마음’은 주인공인 나와 선생님 내외, 선생님의 친구 K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주로 선생님의 마음 상태에 초점을 맞춘 소설입니다. 나는 우연히 만난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껴 선생님 내외와 친분을 쌓습니다. 선생님 내외와 가깝게 지내며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고민도 상담 하고 졸업 후에는 일자리를 소개시켜줄 것을 부탁한 나는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편지 한 통을 받습니다. 그 편지는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나에게 쓴 것입니다. 선생님은 편지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자신의 마음 상태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했으며, 이런 선생님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 책을 의미 있게 읽을 수 하나의 요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네의 편지, 자네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를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그런 뜻을 담은 답장을 쓸까 하고 펜을 들었는데 한 줄도 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네. 어차피 쓸 거라면 이 편지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고, 이 편지를 쓰기에는 아직 시기가 좀 일렀기 때문에 그만두었던 거지. 굳이 올 필요가 없다는 간단한 전보를 다시 친 것은 그 때문이었네.

 그리고 나서 나는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네. 평소에 펜을 드는 일에 익숙지 않은 나는 사건이나 생각이 뜻대로 쓰이지 않아 무척 고통스러웠네. 까딱하면 자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내팽개칠 뻔했지. 하지만 그만둘까 싶어 펜을 놓아도 소용없었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쓰고 싶어졌지. 자네가 보기에는 이게 의무 수행을 중시하는 내 성격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군. 나도 그건 부정하지 않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세상과 거의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고독한 사람이라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의무라고 할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거든. 일부러 그렇게 한 건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의무를 가능한 한 줄여가며 생활해왔지. 하지만 내가 의무에 냉담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네. 오히려 지나치게 예민해서 자극을 견딜 만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자네도 알다시피 소극적인 세월을 보내게 된 거지. 그래서 일단 약속을 한 이상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네. 나는 자네에게 이런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 펜을 들어야 했지.” -본문 中

 

 ▶“좋은 말이라도 진실 없으면 죽은 말”

 

 선생님은 세상일에도 관여하지 않고 주변에 사람도 없는 고독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탓에 좀처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람에 대한 불신은 어릴 적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재산을 관리하던 숙부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숙부가 선생님 부모님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선생님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 조그마한 자극에도 커다란 상처를 받아서입니다. 그렇게 받은 상처를 견뎌내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선생님은 소극적인 삶을 지향했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모습은 선생님 본인의 말과는 달리 오히려 강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파악한 그대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왜곡해서 바라보며 자기부정을 일삼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면 두려워합니다. 자신의 약점이 남에게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선생님은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자신의 모습에 맞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소극적인 삶이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언젠가 자네에게 세상에는 타고난 악인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던 말을, 그때 자네는 나에게 흥분하고 있다고 주의를 주었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인이 악인으로 돌변하느냐고 물었네. 나는 자네의 불만스러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지금 자네 앞에 털어놓자면 나는 그때 숙부를 생각했다네. 평범한 사람이 돈을 보고 갑자기 악인이 되는 예로서, 세상에 신용할 만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예로서 나는 증오와 함께 숙부를 생각했던 거야. 사상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려는 자네에게는 내 대답이 좀 불만스러웠을지도 모르네. 진부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살아 있는 대답이었네. 실제로 나는 그때 흥분하지 않았나. 나는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게 살아 있는 거라고 믿고 있거든. 피의 힘으로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지. 말이 공기에 파동을 전할 뿐 아니라 좀 더 강력한 것에 좀 더 강하게 작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야.” -본문 中

 선생님은 나에게 “차가운 머리로 새로운 말을 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말을 하는 것이 살아 있는 거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죽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심이 담긴 평범한 말을 부모님의 말씀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늘 비슷비슷합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비슷비슷했던 평범한 말씀들이 오히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의 평범한 말씀들은 더욱 강하게 우리를 흔들고 깨달음을 줍니다. 아마 부모님도 진심이 담긴 평범한 말들의 위력을 우리보다 먼저 느끼셨을 것이기에 늘 비슷비슷한 평범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믿는 것과 세상에 드러난 것의 일치

 

 “그와 선생님이 외로움을 느끼는 까닭은 이를테면 본연적인 ‘자아’라고 할 만한 것과 세상이 요구하는 자기상이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정한 자아와 겉으로 드러나는 나 사이의 갈등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근대적 갈등의 핵심이다. 우리가 대개 자아정체성이라고 번역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일본어에서는 주로 자기동일성으로 번역한다. 즉,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자아 이미지와 세상에 드러나는 자아 이미지가 동일한 것, 그것이 바로 아이덴티티인 셈이다.

 자아는 우리가 내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고백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는 마음이다. 우리의 육체로 체험하고 느끼는 어떤 감각의 세계가 아니라 양심이라고 부르는, 세상이 요구하는 잣대와 나 스스로 세워 놓은 잣대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 그 긴장감이 선생님이 고집했던 고독의 실체이다. 마음, 마음이란 발견하지 못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한번 들여다본 이상 나에게 무겁고도 준열한 질문을 던지는 윤리의 맨 얼굴이다.” -강유정 ‘마음이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강유정 문학 평론가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의 마음을 ‘윤리의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자살한 이유를 지나치게 엄격한 선생님의 윤리의식에서 찾습니다. 선생님처럼 지나친 윤리의식 지닌 채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조그마한 잘못에도 남들보다 배는 죄책감을 느끼고 사소한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강한 윤리의식을 지닌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피곤한 사람으로 취급 받으며 융통성 없고 세상물정 모른다는 핀잔을 들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통념이 이러하기에 김기춘, 최순실, 박근혜, 조윤선, 우병우와 같은 이들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온갖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 사실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들을 욕하는 만큼 우리의 윤리의식 수준과 실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윤리의식의 상실로 인해 해방 후 친일파들이 권력의 중심부에서 다시 서게 됐습니다. 6·25가 발발하자 국민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간 이승만,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약 20년간 독재를 일삼으며 국민들을 탄압한 박정희, 국민들을 적으로 몰아 무참히 학살해놓고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전두환 그리고 세월호 침몰시 행적이 묘연했던 박근혜 까지 윤리의식을 상실한 채 휘둘러댄 권력으로 세상은 이제 지옥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이 바뀌지 않는 한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청와대와 서울구치소에 계신 분들께 개인의 치열한 자기고백과 자기반성을 그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일독하시길 권합니다.

김태균<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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