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은 뜻 그대로

 ‘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 옳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나가는 사람/ 숱한 시련과 고군분투를 통해/ 걷다가 쓰러져 새로운 꿈이 되는 사람//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박노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

 낡아간다는 것은 또한 그 속에 소중한 순간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을 품는 것. 중첩된 시간의 흔적을 품은 오래된 간판들에는 시간이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다.

 “이 집서 연탄 대줘서 지난 겨울 안 얼어죽었소.”

 그런 말의 꽃밭이 문전에 피어난 연탄가게. 기름에서 가스로 시대가 바뀌는 동안에도 어떤 사람들의 겨울엔 생명이나 같았던 연탄.

 많아야 몇 십 장밖에 연탄을 주문할 수 없는 산동네 비탈길 사람들에겐 아직 문을 연 연탄집은 목숨줄이다.

 매년 다시 틀어야 하던 목화솜을 대신해 등장한 혁명과도 같은 ‘카시미론’.

 당시로서는 첨단의 문물이었으나 이제는 찾는 이 드문 ‘카시미론’이란 말을 대문짝만하게 간판에 건 ‘구례 카시미론’ 주인장 조금용(71)씨. 이 가게에 간판을 올린 날을 기억한다.

 1971년 2월1일, 그로부터 브라더미싱 두 대와 45년을 동거중이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키다 보니 오래된 단골들이 많아요. 손님들 해 주란 대로 다 해준께요. 꼼꼼허게 헌께요.”

 단지 그 뿐 다시 재봉질로 돌아가 묵언정진하는 그이. 말을 섞으면 바늘 땀이 틀어진다 한다.

 간판에 새겨진 전화번호 국번 ‘2’가 이 간판의 역사를 말한다.

 큰아버지 서경백씨의 뒤를 이어 ‘흥성시계점’(군산)을 지키는 서상준(70)씨. 스무 살 넘어서부터 50년이 다 되는 세월 동안 시계의 부속을 바꾸고 시계 유리를 갈고 태엽을 감았다.

 “군산 옥구는 내가 고쳐줘야 시계 차.”

 그이의 자부심은 그런 것이다.

 지금이야 흔한 것이 사진. 군산 ‘월명사진관’ 나정식(76)씨가 사진관을 열었을 때 그곳엔 학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가차이 군산여상 학생이 주간 야간 4천5백명쯤이야. 다달이 주산·부기 급수 시험을 보는데 수험표에 사진을 붙여야 했어. 수학여행가문 사진사 여럿이 따라가. 설악산 흔들바위 미는 장면을 줄서서 찍어.”

 전성기였다. 백일사진부터 회갑사진까지 한 가족의 역사를담던 동네사진관. 세월 흘러도 가족사진 속의 가족들은 여전히 풋풋하고 젊은 얼굴이다.

 구례 ‘동아서점’의 역사는 45년, 간판의 나이는 40이라 증언하는 주인장 박기영(75)씨. 지게 지고 가면서도 책을 보던 청년이었다.

 “더러 책을 훔쳐가는 애기들도 있었제. 그래도 친구들이 알문 우세스런 일인께 그 애기를 위해서 모른척을 했지.”

 책 좋아하는 마음을 차마 나무랄 수 없이 살아온 그이의 포부는 “인생을 서점으로 마치는 것”이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조선시대 무역상인 임상옥의 장사철학이 그러했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 물과 같은 재물을독점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재물에 의해 망하고, 저울과 같이 바르고 정직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파멸을 맞는다는 것.

 전주 남부시장엔 ‘국밥은 팔아도 나라는 팔아먹지 않는다’고 출입문에 붙여놓은 국밥집(‘객주’)도 있더라만, 사리사욕으로 나라를 들어먹은 큰도둑놈들한테야 언감생심 닿기나 할 말이랴.

글=남인희·남신희 ‘전라도닷컴’ 기자

사진=박갑철 ‘전라도닷컴’ 기자·최성욱 다큐감독



※이 원고는 월간 `전라도닷컴’(062-654-9085)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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