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범이’의 받아쓰기 ‘빵점’ 탈출 프로젝트
“몰라도 돼! 모르는데 질문도 않는 것이다”

 내가 준범이를 처음 본 건 갓난아기 때였다. 그런데 이 곳에서 학원을 시작하고 처음 문을 연 것은 준범이가 태어나기 3년 전이었고, 그때부터 나와 준범이 아빠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고 할 수 있다. 준범이 아빠뿐만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준범이 고모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와 준범이의 인연은 준범이 나이에 3년을 더하면 얼추 계산이 맞아 떨어진다. 준범이 나이가 올해 10살이니 준범이네와는 13년 동안 이곳에서 서로 이웃하며 살아왔다. 학원에서 열 걸음이면 닿는 곳이 준범이네 마트이다. 이 마트는 준범이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마트인데 준범이 아빠는 이 곳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준범이 할머니와 고모까지 모두 이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이 마트는 일종의 가족회사라 할 수 있다.

 이 마트는 편의점처럼 연중무휴로 24시간 내내 운영하지는 않지만 인적이 드문 심야시간만 제외하고 하루 20시간 이상 문을 열어 놓는다. 네 명의 가족 직원이 적절하게 시간을 나누어 가게를 지키고 있다.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문을 연다. 이른 아침 공판장에 가서 그날 팔 야채를 떼어 오는 일도 두 분의 몫이다. 오전 나절 가게를 맡는 일까지 마치는 낮 12시가 되면 준범이 아빠와 교대한다. 준범이 아빠가 배달을 가거나, 손님이 많아 준범이 아빠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할머니는 다시 나와 계산대를 맡는다. 12시에 일을 시작한 준범이 아빠는 저녁 9시쯤에 밤잠이 없는 준범이 고모와 교대한다. 그리고 새벽 한 두시쯤 다시 가게로 나와 고모와 함께 문을 닫는다. 낮참에 푹 자둔 고모는 오후 6시쯤에 마트에 나와 준범이 아빠랑 같이 일하다가 밤 9시쯤 부터는 혼자 새벽 한두 시까지 말똥말똥 가게를 지키다가 준범이 아빠가 다시 돌아오면 함께 가게문을 닫는다. 그러면 마트의 기나긴 하루가 끝난다. 이제서야 한 바퀴가 돌아간 것이다. 준범이네 가족은 마치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처럼 매일매일 이렇게 바퀴를 굴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 20시간 마트 운영하는 가족직원들

 

 준범이네가 예전부터 이렇게 온 가족이 마트에 매달렸던 것은 아니다. 2~3년 전만 해도 야채만 담당하는 이모가 있었고, 배달을 맡아서 하는 알바 삼촌도 함께 근무 했었다. 그런데 주변에 마트가 서너 개 더 생기는 바람에 매출이 뚝 떨어져 더 이상 직원들을 고용할 여력이 없어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어린 준범이와 준영이를 뺀 나머지 어른 네 명이 총출동하게 된 것이다. 돌아가는 마트의 바퀴에 준범이 엄마가 빠져 있는 것에서 짐작하듯 준범이 부모는 3년 전 이혼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거들어 준범이와 준영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 크다. 준범이네 집은 근처에 있는 아파트다. 그러나 그 아파트에서는 밤에 들어가 잠만 잘 뿐이고 나머지는 가게 3층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거의 해결한다. 밥 먹고, 숙제 하고, 옷 갈아입고, 간식 먹고, 노는 것까지 할머니 집에서 한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와 아직 결혼 전인 고모의 일이 많아졌다. 가게는 가게대로 자기가 맡은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또 엄마 대신 수시로 초등학교 1학년 준영이와 3학년 준범이까지 보살펴야 하니 몸이 열 개 라도 부족할 판이다. 어쩌다 가게가 바쁘게 돌아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살필 틈이 없다. 마트를 계속 돌리려면 쉬는 시간엔 잠도 자두어야 해서 아이들 숙제를 봐준다거나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온 가족이 이 고생하는 것은 애들 잘 키워서 잘 되게 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의 하나일 것인데 온 식구가 일에 치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정작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니 지금 가래로 막을 일을 나중에는 써레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 간식은 과자가 전부였고, 차분히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숙제 때문에 선생님께 전화 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준범이는 3학년이 되었지만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하고 엉망이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탓인지 준영이는 지금도 자면서 이불에 오줌을 누는 등 심각한 상태였다. 엄마의 부재로 상처 입은 두 아이는 바쁜 가족들의 일상 때문에 빈 아파트에서 둘이 있을 때가 많았고, 날이 저물어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하릴없이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준범이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얼굴에 귀티가 자르르 흐르고, 마트나 길에서 마주치면 할머니는 항상 준범이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준범이가 부모사랑은 물론이고 조부모님 사랑까지 넘치게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이러한 속 깊은 내막을 알았는데, 그 동안 얼굴만 보고 판단한 나의 경솔함에 청와대의 ‘그 분’처럼 자괴감이 들었다.

 

받아쓰기 ‘그냥 100점’서 0점 급전직하

 

 지난해 3월에 준범이가 우리 학원에 왔다. 찌질찌질 울면서 아빠를 따라 학원에 왔는데 새로운 환경에 겁을 내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이 준범이를 옆에 앉게 하고 공부도 도와주자 금방 친해지더니 3~4일 후에는 씩씩하게 제일 먼저 학원에 와서 친구들을 기다리곤 했다. 읽는 것은 막힘이 없었는데 쓰기는 엉망이었다. 받침이 있는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모두 소리 나는 대로만 쓰고 있었다. 책가방에는 알림장도 없었고 일기장도 없었다.

 그런데 받아쓰기 노트를 보니 모두 100점이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준범이에게 물어 사정을 알아보니 받아쓰기 시험을 보면 준범이는 선생님이 주는 정답을 그대로 베껴 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무조건 100점을 받은 것이었다. 글을 제대로 모르는 준범이를 배려한 선생님의 마음은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준범이에게 엉뚱한 생각을 품게 했다. 총명한 편인 준범이는 수학계산은 빠르고 정확하게 했다. 그렇지만 쓰기는 문제가 많았는데 준범이는 우리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다.

 “괜찮아요. 나는 받아쓰기 안 해도 항상 100점이에요. 공부 안 해도 되요. 선생님이 저는 계속 100점이래요”라고 으스대며 태연하게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문제가 점점 커질 것 같아 준범이 아빠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고 조언했다.

 “선생님이 그냥 100점을 주니까 공부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께 공정하게 채점하셔서 맞힌 문제가 없으면 0점 처리 해달라고 해 주세요.”

 준범이 아빠는 쑥스러운 표정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잘 알았습니다.”

 수요일, 준범이 받아쓰기가 있는 날이다. 나는 수업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트에 가서 준범이를 기다렸다. 자기를 데리러 집에까지 오는 내가 반가웠는지 내 손을 덥석 잡고 활짝 웃었다. 이내 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날아갈 듯 경쾌하게 발을 놀리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준범이의 기분을 망치는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범아, 오늘 학교에서 본 받아쓰기 노트 좀 볼까“ 오늘도 100점 맞았지? 오늘도 잘했으면 아이스크림 사줘야지….”

 순간 표정이 바뀌며 난처해하던 준범이가 노트를 꺼내 나에게 건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매번 100점만 받다가(“) 느닷없이 빵점을 받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창피한지도 모르고 홀짝홀짝 서럽게도 울어 댔다.

 만점에서 빵점으로 점수가 급락한 준범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은 울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받아쓰기 숙제가 틀린 문제를 열 번씩 써오는 것이어서 그것 또한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울음을 그친 준범이는 눈물을 삼키며 조막손이 곱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100개의 문장을 쓰고 또 썼다.

 

전래동화책 읽고 일기 써보기

 

 그날부터 준범이와 나만의 비밀스런 ‘받아쓰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준범이의 받아쓰기 실력이 들통 나면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다. 아이들이 오기전에 한 시간씩 몰래 하기로 하고 전래동화책 읽기부터 시작했다. 내가 한줄 읽은 다음 준범이에게 따라 읽게 했다. 그 다음에는 준범이한테 혼자 읽어 보라고 했다. 읽는 것은 잘했기 때문에 글자를 정확하게 보게 했고, 자기가 내는 발음을 듣게 하면서 글자가 어떻게 소리나는지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세 번째로 방금 읽은 전래동화를 내용으로 일기를 같이 써 보았다. 내용을 말로 하는 것은 줄줄줄 청산유수인데 글씨가 틀릴까봐 그런지 딱 두 줄만 썼다. 글씨를 잘 못 써도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한 번 말하고 싶은 대로 써 보게 했더니 맞춤법에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지는 바람에 진득하게 동화책을 읽을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일기를 쓰고 나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두 개만 고쳐주었다. ‘~했습니다’와 ‘같이’처럼 준범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소리나는 대로 쓰는 말들을 꼭 두 개씩만 바로 잡아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올바르게 쓰는지 반드시 확인했다. 그리고 받아쓰기 시험을 치기 하루 전인 화요일에는 열 일 제치고 받아쓰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예상문제를 뽑아 모의 받아쓰기 시험도 치렀다. 아직은 겨우 한두 문제를 맞혀 10점이나 20점이 고작이었지만 지신의 힘으로 획득한 점수라서 그런지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 후 준범이가 드디어 빵점에서 탈출했다. 비록 10점이었지만 받아쓰기에서 처음으로 받은 점수를 칭찬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 날 나는 3학년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쏘아주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10점은 너무 낮은 점수였다. 급한 마음에 어려운 글자부터 익히다 보니 노력에 비해 효율이 높지 않았다. 기본부터 다시 차분하게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나는 서점에 가서 유치부 한글떼기 전과정을 구해왔다. 물론 준범이 학령에 맞는 동화책도 꾸준히 읽혔고, 독서일기도 개발세발에 아직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토해내는 이야기가 점점 많아져 한쪽을 가득 채웠다. 매주 화요일엔 어김없이 받아쓰기 준비를 했다. 순식간에 50점을 돌파했다.

 여름방학이 시작 되었다. 시간이 차고 넘치는 준범이는 한글공부 3종세트를 날마다 학원에서 했다. 아침 일찍 학원에 등원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매일 동화책읽기, 일기쓰기, 유치부 한글공부하기까지 다하고 중학생들과 함께 집에 돌아갔다. 어떤 때는 이미 한나절 동안이나 공부였지만 태권도 끝나는 밤 9시에 다시 학원에 불쑥 들어와서 동화책을 읽다가기도 하고 노트에 일기를 쓰기도 했다.

 준범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은 ‘아껴라 아껴 영감님과 뭐든지 아껴 영감님’이다. 수십 번 읽고 또 들여다 보다가 급기야 내용을 통째로 다 외워버려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자린고비 영감님 두 분이 구두쇠 경쟁을 하는 내용인데 자기도 자린고비 영감님처럼 얼마나 아낄 수 있나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말해 흐뭇했다.

 

자신감 충만 90점 달성, 공동반장에 선출도

 

 여름방학 동안 더 똘똘 해진건지 아니면 예전부터 야무졌는데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2학기가 되자 준범이는 자신감이 차고도 넘쳤다. 공동반장에 선출 되었고 받아쓰기도 단박에 90점을 받아왔다. 이번엔 준범이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쏘았다. 10권이 넘던 유치부 한글떼기는 진작에 마쳤고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 읽기와 사회 과학까지 제 수업시간에 본궤도로 돌아와 친구들과 공부하게 됐다.

 지금도 준범이는 어려운 것은 잘 읽으려 하지 않아 약간의 어려움은 있다. 또한 질문을 너무 많이 해 수업흐름을 끊기도 하지만 나는 대환영이다.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모르면서도 질문도 하지 않고 아는 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준범이는 나와 선생님들께 틈만 나면 하는 질문이 있다.

 “제가 그렇게 예뻐요?”

 그동안 유보했던 질문에 답한다,

 “그래. 준범아. 눈은 길게 쭉 터져있고 입은 야무지고 코도 납작한 게 영락없는 개구쟁이 준범아. 너 진짜 예쁘다.”

 바람이 차다. 날이 저물어 운동장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런데 잠시 뒤 자전거 짐칸에 준영이를 태우고 힘주어 페달을 밟는 준범이가 보였다. 바쁜 일상에 쫓긴 어른들이 미주알 고주일 챙겨주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난관을 극복하고 이제 11살 소년이 되어 이 차가운 바람속을 달려가고 있는 준범이가 더없이 예쁘게 보였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정혜원 <살레시오여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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