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장애인 대학 교수 정유선 씨 만난 사연

 8년 전 이른 봄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그 빈자리가 장녀인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엄마랑 함께 살던 집에서 동생들과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살아가기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잔인하고 무서웠다. 밥을 먹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복받쳐 울었고, 이유모를 무서움이 엄습했다. 그 집에서 일주일 넘게 살다가 결국 동생들과 서울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고 동생들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고, 필자는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날마다 낯선 도시속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힘겹게 서울생활을 하다가 어떤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인지 다시 광주로 이사를 했다. 이전보다는 동생들과 내가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임용시험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독서실에서 점심과 저녁으로 먹을 도시락을 손수 준비하여 아침 일찍 독서실 열람실 불을 켜는 일은 내 하루의 첫 일과였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의 소개로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정유선이라는 이름의 저자가 뇌병변 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에 유학을 가고,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서 AAC(보완대체의사소통보조기기)를 활용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당시 특수교사가 꿈이었던 나에게 그 책의 내용과 정유선이라는 사람은 기쁜 희망이었고. 빛이기도 했다. 나의 새로운 롤모델로 삼았던 계기도 그때부터였다. 그 책을 읽은 지 오래 되어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순 없지만, 책의 내용 중에 저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장애 때문에 남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약간 떨리고 위축돼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한다는 부분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 ‘두렵고 위축됨’은 더 선명해지곤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날 이상하게 생각할까?”,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등의 걱정들이 내 머릿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또한 책의 내용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학원 담당 교수의 정유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마인드였다. 그녀의 담당 교수는 항상 정유선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AAC를 활용하여 학생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제안까지 한다. 오로지 제자의 강점을 존중하고 그것을 키워주려는 그 담당 교수의 발상과 아낌없는 지원은 힘들었던 내 영혼과 심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처럼 그 사람이 잘 하는 부분을 존중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곧 진정한 교육자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12월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알고 보니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일하는 간사님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12월29일에 ‘의사소통 권리 결과보고대회를 개최하는데, 광주시교육청과의 중등 특수교사 임용시험 불합격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 판결을 받은 당사자로서 그 자리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정유선 교수님도 그날 오시는데, 나의 이야기를 아시고 나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는 초대 사실에 나는 굉장히 흥분됐고, 마냥 기쁘고 설레었다.

 29일 이른 아침, 열차를 타러 가기 전에 미용실에 들렀다.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날이기에 단정하고 예쁘게 머리를 만지고 싶었다. 머리를 하고 서둘러 송정역으로 향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져 생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용산역에 도착하자마자 초대 장소로 갔다. 허기진 배를 김밥으로 채우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정유선 교수님도 보고대회 장소로 오셨다. 멀리서 교수님을 바라보아도 심장이 떨렸다.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인권팀장님과 함께 교수님이 있는 자리로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 숙여 반갑게 인사를 드리자, 교수님께서도 나를 기쁘게 맞아주셨고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품이 있으셨고 말씀도 우아하게 잘 하셨다. 목소리도 완전 가늘고 예쁘셨다. 그야말로 매력이 넘치시는 분이셨다.

 

‘자신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요!’

 보고대회가 시작되기 전, 교수님과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교수님께서는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이 많았냐고, 어려운 싸움에서 끝까지 견뎌내고 노력한 것 정말 대단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먹먹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간에 겪은 고난의 파도가 온몸으로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시간에도 광주에서 중요한 일이 있어 보고대회 중간에 다시 열차를 타러 용산역으로 가야 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짐을 챙겨 교수님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교수님께서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을 내게 표현하시고, 나를 다시 한 번 안아주셨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져 앉아계셨던 교수님의 어머님께 나를 친근하게 소개해 주시고, 이제 광주로 가야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과 교수님 어머님 그리고 나 셋이서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교수님의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정말 장하다고 하시면서 내 모습이 예쁘다고 말해주셨다. 어머님께서는 나를 그냥 보내기가 아쉬우셨는지 교수님의 아버님께도 나를 인사시켜주셨다.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바로 역으로 향했다. 기적 같은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광주로 가는 열차를 타고 가면서 교수님께서 내게 남긴 메시지를 떠올렸다. “혜정 씨가 자신의 위치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잘 해나간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될 것이고, 조금씩 변화해 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혜정씨 자신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겨요! 그리고 언제든 메일 줘요!”

 마치 아끼는 사람에게 귀한 것을 건네주듯이 정유선 교수님께서는 영어로 된 ‘명함’을 지갑에서 재빨리 꺼내 나에게 주셨다. 그 작은 명함에 담진 기적의 메시지가 지금 더 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조만간 교수님께 나의 기쁜 소식을 메일로 전해드릴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혜윰



혜윰님은 ‘생각’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입니다. 혜윰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잘 살길 소망하는 장애인권 활동가입니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생기발랄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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