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림 당해도 어지간해선 눈 꿈적 않던
긍정적 마인드의 아름다운 비상

▲ 요리사자격증 세 개를 따고 일본 연수도 다녀온 재경의 목소리. 먼 기억 속의 옥토가 이렇게 야무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재경’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있는데도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동생뻘 되는 한참이나 어린 초딩 저학년들마저도 버젓이 “옥토야!”하고 부른다. 더욱 우습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그 애 자신도 누가 그 호칭으로 부르면 망설임없이 “옙!” 하거나 “왜?”하며 `영 점 일’ 초안에 대답 할 만큼 그 별명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옥토는 영어 `옥토퍼스(문어)’를 줄여 붙여준 그 애의 별명이다. 유난히 이마가 넓은데다가 눈은 자그마하게 움푹 파였고, 코는 어딘가에 묻혀 희미하고 키도 아주 작은 여자아이다. 하루에한두 번은 큰소리로 고함치며 남자아이들과 싸운다. 결국 학원이 떠나 갈듯 엄청나게 큰 통곡소리와 함께 싸움을 끝내곤 한다. 그렇지만 집에 갈 땐 `방금 싸우고 대성통곡하던 그 애 맞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정도로 밝고 명랑한 웃음으로 인사하며 손을 흔든다.

 굴러가는 자갈만 보아도 웃음이 나온다는 나이 `이팔은 십육 세’ 열 명의 남자 아이들! 지나가다 옥토를 발견하면 날아가는 새의 똥구멍이라도 본 것처럼 반색하며 놀리고 괴롭히지만 옥토는 언제나 씩씩하다. 코를 벌름거리며 으르렁 으르렁 맞싸운다.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소리에 놀라 싸움을 말리러 가면 눈치가 빠른 남자애들이 얼른 눈을 내리깔고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다가 슬쩍 꼬리를 내리고는 위장하려고 옥토와 친한 척 맘에는 전혀 없는 행동을 한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옥토는 득의만만하다. 남자애들을 향한 고함소리는 높아만 지고, 상황은 역전, 이번엔 옥토가 그들을 놀리면서 그동안 당한 일들을 고자질한다.

 

 그 아이의 별명은 `옥토퍼스’(문어)!

 

 남자애들을 타이르려고 옥토에게 못 살게 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물론 10대 아이들의 정신세계도 궁금했다. 공부 못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단다. 그런데 못 생긴 건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단다. 어쩌란 말인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못 생긴 게 옥토의 책임이냐? 저라고 그렇게 태어나고 싶었겠냐? 근엄하게 덧붙인다. 인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하지 한 낱 껍데기에 불과한 외모가 무슨 소용이냐? 입에 침이 마르게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 때뿐, 소귀에 경 읽기, 똑 같은 일이 날마다 일어난다.

 그런데 옥토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학원에 나타나는 그 시각이다. 옥토는 날마다 껌을 한 통씩 사 들고 학원에 온다. 그 껌을 하나씩 `씨리(모조리)’ 돌리는 취미가 있다. 껌을 나누어 주면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고 나눔의 미학도 실천한다. 껌을 씨리 돌리다 보면 부족해서 껌을 먹지 못하는 애들이 꼭 두 세 명은 생긴다.

 바로 지금이 옥토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그 애들이 옥토에게 통사정을 한다. 어제까지 치고 박고 싸우던 것들이 온갖 애교를 다 떤다.

 “오옥~토오야앙! 오늘은 왜이렇게 예쁘냐?”

 “운동화, 졸라 이쁜 것 신었네! 운동화가 이쁘니 키도 엄청 커 보인다”

 “이따 영어단어 시험 때, 내가 채점하게 되면 몇 개 고쳐서 맞은 걸로 해주께. 나도 껌 하나만 사주라 응 응~”

 참 나, 눈꼴시러버서, 내 명에 못 살지. 옥토는 더욱 가관이다. 자기를 `AOA’의 설현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잔뜩 콧바람을 넣고는 “그래 알았어, 얼른 사올게 좀만 기다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바람소리 날리며 마트로 달려간다.

 옥토에겐 누구나 다 친구다. 모든 아이들의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참견한다. 아이들의 모든 것(공부는 빼고)이 옥토의 관심사다. 누가 옷을 새로 사 입어도, 어떤 친구가 안경테를 바뀌어도 금방 알아차린다. 혼자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양 아주 재빠르게 선생님들께 제보한다.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치는 그런 태도로 선배나 동급생에게는 말 할 것도 없고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조차도 미움을 받는다. 공공의 적,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버린 옥토. 초등1학년 꼬맹이들도 옥토가 앉은 책상은 피한다. 옥토가 쓰던 영어사전은 손도 대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 사소한 일에도 간섭·참견

 

 옥토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 어느 정도 자란 후 기억이 생기던 시절부터 겪었던 일이다. 그래서 단련이 되었다. 놀림을 당해도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꿈적 안한다. 모진 비바람을 뚫고 자란 잡초같다. 옥토는 다니는 학교에서도 유명하다.

 복도에 옥토가 나타나면 모든 아이들이 일사분란하게 복도 양옆으로 바짝 붙어버린다. 그 모양이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 같다. 이 학교에서 복도중앙으로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옥토와 교장선생님 둘 뿐이다. 옥토에게 껌을 나누어 주는 것 말고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책 모으기다.

 언젠가 학교에서 축제기간에 바자회를 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음식을 사 먹으며 돈을 소비했다. 그런데 우리의 옥토는 군침을 삼키면서도 선배들이 쓰다 만 500원짜리 자습서를 무려 여덟 권이나 샀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과 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옥토는 10%정도(상위가 아니라 하위 10%에 들어간다)에 드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당연히(?) 책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 가방에 가득 책을 담아도 부족해 일류 여대생처럼 손에도 가득 책을 들고 다닌다. 그런데도 책이 부족한 지,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을 그리 많이 사는 것을 보자니, 그의 취미를 빼고 나면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봄, 가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 새 책으로 공부를 하는 날이면 옥토는 기분이 너무 좋아 항상 싱글벙글이다. 새 책에서 풍기는 잉크 냄새를 특히 좋아한다. 아이들 대부분은 새 책이든 헌 책이든 교과서는 학교에 두고 다닌다. 그런데 옥토는 새로 받은 책은 아무리 무거워도 책꽂이에 꽂지 않고 기어이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정작 다음날 수업에 필요한 책은 깜박하고 집에 두고 와 죽도록 혼나기가 일쑤다. 옥토는 책에 실린 콘텐츠가 아니라 책 자체를, 특히 새 책의 책장을 넘길 때 퍼지는 잉크 냄새를 그토록 좋아한다.

 책을 좋아했지만 옥토가 그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상급학교는 전문계 고교 뿐이었다. 옥토는 전문고교의 요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6년이 지났다.

 제법 훈훈한 바람이 긴 겨울을 밀어내고 새 학년이 시작되어 수업준비로 바쁜 어느날, 옥토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정규학교의 선생님이든 학원의 선생이든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의 안부전화와 상급학교 진학소식은 정말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전문대 진학 요리사 자격증 3개나 취득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더 걱정이 되듯,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 보다 문제를 일으키고 속깨나 끓였던 아이들의 소식이 더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연락도 자주하는 편이어서 정이 더 많이 간다.

 고교 진학 후 이 동네에서 이사 가는 바람에 연락을 못했단다. 전화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흐르고 말았단다. 그렇게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버리자 학원을 지금도 하고 있는지 자기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잡다한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했단다.

 그러다가 다시 몇 년이 흐르고 얼마 전 학원근처에서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간판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단다. 일요일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 왔단다. 혹시나 하고 114에 학원이름을 문의해 전화번호를 얻었단다.

 벌써 전문대 졸업하고 요리자격증 따서 서울시내의 한 호텔에서 수습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그 아이의 차분하고 당당한 말투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키는 많이 컸냐는 질문에 155라고 답하며 덧붙인다.

 “근데 우리 엄마보다는 더 크니까 성공한거예요. 까르륵.”

 나도 무심결에 “그래 옥토 성공했네” 하다가 아차 싶어 눈을 반쯤 감고 옥토의 이름을 퍼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미안 네 이름을 불러야 되는데 옥토라 해서 미안하다. 재 ~ 재 그으래. 재경아! 예전엔 많이 속상했지?”

 겨우 떠오르는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예전에 아이들이 놀릴 때 속마음은 남자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수긍이 갔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그저 듣기 좋으라고 건성으로 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데 그 애의 다음 말은 의외여서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그 때 저는요. 시골에서 막 전학 왔었잖아요. 언니도 오빠도 없고 혼자라서 힘들었어요. 학원 친구들이 별명 부르고 놀려도 그리 싫지는 않았어요. 혼자인 것보다는 낫잖아요. 나도 다른 애처럼 예뻐지고 싶기는 했죠. 엄마한테 스무 살만 되면 상꺼풀 수술이랑 코 높이는 수술 해달라고 맨날 졸랐어요. 엄마는 스무 살 되면 소원 들어 줄 테니 대신 꼭 대학가야한다고 다짐을 받았어요.”

 나는 쌍커풀이 진 그 애의 눈과 우뚝 솟은 콧날을 그려 보며 웃음을 지었다. 대학은 갔냐는 질문에 대답이 이어진다.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오후에 요리학원 다니고 진짜 열심히 시험 준비 했어요. 전문대 졸업전에 요리사자격증 세 개 딴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작년에 교환학생으로 일본 보내줘서 1년 연수도 갔다 왔어요. 일식 요리도 그 때 익혔어요.”

 

 건강하고 발랄하게…코의 높이 뭐 대수랴!

 

 전화선을 타고 오는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먼 기억속의 옥토가 이렇게 야무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이가 울 때마다 속상했을 부모님의 마음도 이제야 헤아려 진다. 왕따를 당한 딸의 처지를 따지던 당시에는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어 의도적으로 대화를 회피한 적이 많았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먹고 살기에도 바빠서 아이를 호화스럽게 차려 입히지는 못했지만 항상 몸가짐은 단정했고 싸구려 옷이지만 깨끗하게 빨아 깔끔한 편이었다.

 “선생님, 저 스무 살에 쌍커풀 수술해서 지금은 예전보다 눈은 커요. 코는 생각중이에요. 예전엔 제가 못생겼다고 쓸모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옥토가 코까지 수술하면 옥토가 아니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쌍커풀의 옥토는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터지는 웃음을 꾹 참으며 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궁금해졌다.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니?”

 “친구도 많아요. 제 별명 말하면 친구들이 다 배꼽 잡아요. 그래도 전 옥토가 싫지 않아요. 어려서는 그 별명 때문에 많이 울었지만 결국 그 별명 때문에 노력하게 됐어요. 너무 말이 많았지요? 설날 집에 내려가서 선생님 찾아 갈게요.”

 재경이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미래에 코의 높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름다운 옥토의 비상을 꿈꾼다. 건강하고 발랄하고 자신에 찬, 코가 납작한 우리 옥토! 빨리 만나고 싶다.

홍은숙<웃음꽃도서관 소피움 연구원>

일러스트=정혜원<살레시오여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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