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증상과 환상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 중인 노동자들. 루이스 하인 작.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유하 <오징어>

 

 우리는 왜 피로한가?

 밤바다에 어부들이 집어등을 밝혀놓았다. 불빛을 사랑하는 오징어들은 그 빛이 죽음인지도 모르고 맹렬하게 그물을 향해 뛰어든다. 나는 어떤가, 선두에 선 누군가가 달리면 모두가 따라서 달리다 때론 절벽으로 무리지어 뛰어드는 레밍쥐의 속성을 있지는 않은가. 시인 유하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아름다움, 다수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의심하라고 요구한다. 밝게 유혹하는 현상의 이면에 은폐된 진실을 목도하라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과연 그러한가?” 의심과 의문은 세계와 나를 동등하게 보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의 거대함에 눌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겠다는 결단이다. 따라서 의심은, 인간의 조건이다.

 아이들과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었다. 한병철은 21세기의 사회 병리적 현상들을 깊게 들여다보고 해석한 책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만성 피로’와 `우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는 `넌 할 수 있어!’라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과잉긍정성과 상품성을 만들어내라는 성과를 강조하는 성과중심사회다. 끝없이 성과를 독려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죽을 때까지 일하거나 공부하면서도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못한 채 목적과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을 끝없이 책망하고 자책하며 살아간다. 현대의 또다른 개성은 왜곡된 개인주의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국가 혹은 집단이 잘못되었을 때 자기 의견을 당당히 밝히는 공적 책임감이지, 자기중심적 태도인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조사하고 의견을 피력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쪽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자식 자랑을 하는 부모를 팔불출이라 하지만, 제자 자랑하는 교사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하여, 마음 턱 놓고 청출어람을 증명하는 아이의 글 세 편을 싣는다. 모두 지혜의 숲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아이들이다. 모름지기 글이란 자기 관점을 뚜렷하게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장이 강하고, 근거는 미비하고, 선택한 낱말이 삐죽삐죽하더라도, 멋진 글이다! 글안에 `자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주제와 주장을 책임지려는 당당함이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인기를 얻으려고, 다수의 동의를 얻으려고 두루뭉술 미적지근하게 말하는 태도를 `세련’이라고 포장하는 세계에 새로움- 혁명은 없다. 자기정직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들은 어른보다 대견하다.

박혜진 <지혜의숲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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