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원 피해자 방치한 우리사회 자화상

▲ 지난달 22일 광주시청 앞에서 진행된 `가교행복빌라 Shut Down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발라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겨 들어봤음직한 조성모의 ‘가시나무’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누군가는 멜로디가 주는 서정에 흠뻑 젖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속에 내가 많다는 것은 바쁜 일상의 여러 역할들 속에서 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네의 자화상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가시나무’의 그러한 이미지들을 허물어버린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바로 ‘도가니’입니다.

 ‘도가니’, 어린 청각장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인화학교의 교직원들의 비인간적 인권 유린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내용이 너무도 끔찍해서 영화의 과대포장이겠거니하고 느낀 관객들도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 내용들은 어린 학생들이 참고참고 또 참아야 했던 우리 사회 변두리의 광기어린 일상들이었습니다. 그 광기어린 한 장면, 어리고 어린 여학생이 교장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때 라디오에서는 조성모의 ‘가시나무’가 흘러나옵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어쩌면 이 첫 소절은 반성하는 기미보다는 잘못한 이의 변명 아니 궤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궤변으로 교장은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는 괴물이 되어버리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덮어버리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주지는 않았을까요? 그러나 교장이 받은 면죄부는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왜곡된 시선으로 거짓을 옹호하는 종교인들, 사익에 굴복해 피해자들을 져버린 검사, 부조리한 법에 숨어버린 판사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병폐가 사람들로부터 엄한 비난을 받아야 할 교장 무리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므로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었던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준 면죄부

 

 그러나 ‘도가니’에서 다룬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면죄부는 결국 변두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부여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언론에서 보도하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도가니’의 실제 배경이었던 광주 인화학교와 인화원(청각장애인시설)의 폐교·폐쇄 처분을 이끌어낸 것은 사회 정의의 쾌거라고 항변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무엇보다 중요한, 그 시설에서 생활한 이들의 상처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후의 삶을 함께 얘기해보는 과정이 미흡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을까요? 고작 다른 시설들로 분산 수용하는 것이 끝이었으니…. 그러나 그렇게라도 인화원의 참혹한 시절은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러한 우리 사회의 안일한 기대는 또 다른 참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인화원의 피해자들을 분산 수용한 ‘가교행복빌라’라는 한 장애인시설에서 또 다른 인권유린이 몇 년간 자행돼온 것입니다. 이용자들을 향한 폭언과 폭행은 일상의 놀이 정도로 인식되었고, 법인 대표가 기르는 개를 정부보조금으로 ‘간지(개 이름이기도 함)’나게 대접해주면서 이용자들에게는 상한 음식을 간식으로 제공하려고 했다는 점만 봐도 인권유린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완력을 동원해 강제로 자르고, 무더운 여름엔 단체 냉방으로 작은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고, 추운 겨울밤엔 이불 한 장이 이용자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난방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용자들의 정상적인 삶을 짓밟으면서까지 아낀 보조금으로 법인 대표의 배만 불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열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학대와 비위 사례는 시쳇말로 차고 넘쳐납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가해자들의 잘못이겠지만 그들에게 몇 년간 면죄부를 준 것은 인화원 사건을 처벌만 하고 방치해버린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지 않을까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더 언급하자면, ‘가교행복빌라’가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고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용자들의 욕구를 조사하고 조사한 것을 토대로 생필품을 구매하여 전달해주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관심, 진실로 다가가기 위한 첫 열쇠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용자들의 금전으로 구매한 새 옷은 대표이사가 갖고 본인이 입던 헌 옷을 이용자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인지 능력이 낮은 이용자들을 상대로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행태가 오랫동안 자행되어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 모독·금전 횡령의 진실이 왜 감춰졌을까요? 그것은 지도·점검이 수박 겉핥기식에 불과했으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무관심이란 면죄부를 남발하였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그런 까닭에 중요한 것은 인권침해와 횡령 사례에 대한 일시적인 분노보다는 장애를 안고 있는 이용자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지속적인 관심을 내비치는 것입니다.

 관심, 그것은 진실로 다가가기 위한 첫 열쇠이며, 사람들을 잇는 데 가교 역할을 합니다. ‘가교행복빌라’의 감춰진 진실 역시 공익제보자들의 관심어린 협조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적절한 처분이 내려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피해자들의 아픔과 삶에도 당국과 시민 사회가 진정어린 관심을 보이고 장애인이 수용의 차원을 벗어나 생활인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교행복빌라’의 피해자인 장애인들은 인지능력이 낮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가가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분명 동질적인 부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친구를 살뜰히 챙겨주고, 노래가 나오면 춤이 자연스레 나오고…. 그런 모습으로 우리의 삶은 서로 맞닿아 있을 테지요. 거기에 필요한 건 사람이고자 하는 ‘양심’과 사람을 대하고자 하는 ‘관심’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잇는 ‘진심’입니다.

조선남 <한마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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