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이 틀린 게 아님’을
나는 어디서 배워야 했나?

 #1

 “내일은 반장, 부반장을 뽑을 거니까 반편성에서 10등까지 한 사람들 중에 하고 싶은 사람은 후보로 나오도록. 이상.”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 엄마를 기다리는 나와 장애 학생을 맡게 돼 마음이 무거운 서른 갓 넘은 여선생님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감돈다.

 “선생님, 저…저도 반장 후보로 나가도 돼요?”

 “네가 어떻게?”

 “네? 교무실이 1층에 있으니까 또 휠체어 타고서도 제가 움직일 수 있으니까 반장이 힘들면 부반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몸도 불편한데 뭘 하려고. 넌 안 될 것 같은데.”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방금 전 겪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쳤다.

 “엄마,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지?”

 14살, 내 생애 첫 교복은 입은 날. 차이가 차별이 되는 시작에 불과한 날이었다.

 

 #2

 “장애인이면 특수학교에 가야지 여러 사람 피곤하게 왜 우리 학교에 오고 난리래.”

 한 친구가 구석에서 나를 째려보며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을 한다.

 “뭐?”

 “장애인 주제에 공부해서 뭐한다고. 그리고 니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책도 너무 환상 아니냐? 장애인이면 장애인끼리 결혼 하는거지 비장애인이랑 무슨 결혼이야. 재수 없어.”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려고 안간힘 쓰는 나에게 그 날은 정말 언어 폭력을 겪은 날이었다.

 왜 장애인이면 특수학교라는 이름 붙은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일까?

 특수학교와 일반학교가 뭐가 그리도 다르길래 비장애인이라는 자신들을 우월하게 여기는 걸까? 왜 장애인은 장애인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여전히 나에게 막말을 퍼붓던 그 친구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너는 지금 나를 무시하겠지만 나는 더욱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생각이 건강한 어른이 되어 너의 말이 틀렸음을 반드시 보여줄거다.’

 

 #3

 “모두들 알다시피 새벽이가 몸이 불편하니까 새벽이를 도와줄 사람 있으면 손 들도록.”

 내가 있는 반에 모든 담임 선생님들은 매학기 초만 되면 나에게 도우미 친구를 붙여 주었다. 1년 내내 나는 그 친구와만 짝꿍을 해야 했고 자리 배치도 고정석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우미 친구는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돕겠다고 했지만 나에게 얽매인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나 그 친구의 도움이 불편해도 싫은 내색 할 수 없는 나나 괴로웠다.

 중학교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2학년 때까지 반복되는 담임 선생님들의 과잉 친절이 오히려 나와 친구들 사이 알 수 없는 간격을 만들었고 그러한 학교생활이 적응하기 몹시 힘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도우미 친구를 붙여주는 일도 나에게 고정석을 배정하는 일도 하지 않으셨다. 사물함에서 필요한 물건을 꺼내러 가고 오게 하셨고 나 스스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일깨워주셨다. 청소구역을 정하며 나에게 창틀 청소를 맡겨주셨을 때 그 기쁨은 잊혀지지 않는다.

 

 #4

 ‘내가 정말 장애인이라서 일반학교에 다니는 것이 힘든걸까.’

 1년간 고심하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특수학교로 보내달라고.

 부모님과 나는 몇날 며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나 모른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조금만 더 견뎌보자고 했다. 지금 이렇게 도망쳐버리면 앞으로 부당하고 힘이 들 때마다 세상에서 도망칠 일이 더 많아질거라고.

 장애학생은 교육의 의무 마저 가족에게 책임으로 떠넘기는게 부당해보였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며 학생기록부 작품을 만들어 주기 애쓰면서 통합교육은 그저 특정 교사의 뜻 있는 교육관이 아니고서야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5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년이 지났다.

 종종 특수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을 만나면 일반학교를 졸업한 나를 부러워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학교 안에 선생도 학생도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겠지.

 동료상담 과정을 참여해보니 ‘나는 이렇게 우울한 감정이 밑바닥까지 파고들 때 이 감정을 터놓을 친구가 몇이나 될까.’ 되돌아본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콕콕 아린 걸 보면 감정 해방이 다 되진 않았나보다.

 장마의 시작 여름이다.

 그래도 잘 버티고 살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열렬히 축하한다. 생일.

 달빛에 더 예쁜 나의 벗.

글=새벽



‘새벽’님은 무뚝뚝하지만 언제나 가족들의 기념일을 먼저 기록하고 챙기는 세심한 딸이자, 가끔 손편지로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하는 잔정 많은 친구이고, 꽃, 풍선, 촛불이 없는 프러포즈를 받고 싶은 낭만주의 아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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